항목 ID | GC001019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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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岦 |
이칭/별칭 | 여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홍갑 |
성별 | 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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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 | 1574년 |
몰년 | 1629년 |
본관 | 영일(迎日) |
자 | 여수(汝秀) |
묘지 |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 |
[정의]
조선 전기 성남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여수(汝秀)이다. 정세경(鄭世卿)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항(鄭沆)이고, 아버지는 돈녕부 주부 정경순(鄭景淳)이며, 어머니는 청풍김씨(淸風金氏)로 김희경(金僖卿)의 딸이다. 부인은 남양홍씨(南陽洪氏) 별좌 홍곤(洪坤)의 딸이다.
[활동사항]
1600년(선조 33) 별시(別試) 문과(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 해에 예문관 검열(檢閱)이 되고, 사간원 정언·헌납·사헌부 지평을 거쳐 이조좌랑에 이어 이조정랑으로 승진하였다. 이듬해 임진왜란 때 소실된 역대의 실록 재간에 참여하였으며, 부교리를 거쳐 1607년에 다시 이조정랑이 되었다. 1611년(광해군 3)에 집의·사간 등을 지내고, 이어 겸보덕, 사인, 전한을 역임하였다. 집의에 재직하던 중 광해군이 임숙영(任叔英)의 직언에 노하여 관직을 삭탈하자 이에 대하여 여러 번 극간하였다. 1613년 승지가 되었으며, 1616년에는 『선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618년 병조참의가 되었고, 이어 형조참의에 등용되었다.
1621년 황연도관찰사(黃延道觀察使)가 되었으며, 뒤에 강원도와 충청도의 관찰사가 되어 이도(吏道)를 청신하게 하고 숙폐를 시정하였다. 1623년 인조가 즉위하자 도승지로서 광해군 때 제주적소(濟州謫所)에 안치되었던 연흥부부인(延興府夫人)을 모시고 돌아와 인목대비(仁穆大妃)로부터 보검을 상으로 받았다.
1624년(인조 2) 2월에 일본 도쿠가와(德川家光)의 습위식(襲位式)에 축하사로 일본에 건너가서 포로로 잡혀갔던 146명을 데리고 돌아와 공조참판 겸 도총관이 되었으나, 중풍으로 죽었다. 슬하에 딸 하나만을 두어 사후에 외손봉사하게 되었다.
[묘소]
묘소는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 48번지에 있으며, 좌참찬 임상원(林相元)이 찬하고 강원도관찰사 유이복(柳以復)이 쓴 비문이 남아 있었다. 1980년대까지 도굴된 묘소를 볼 수 있었으나 비석, 상석, 망부석, 문관석 등 석물이 모두 도난당했고, 수도국정수장에 수용되어 정수장이 설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