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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2012
한자 丁胤禧
이칭/별칭 경석,고암,순암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성남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홍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531년연표보기
몰년 1589년연표보기
본관 나주(羅州)
관직 이조좌랑직

[정의]

조선 전기 성남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경석(景錫), 호는 고암(顧菴) 또는 순암(順庵)이다. 아버지는 찬성과 관찰사를 지낸 충정공(忠貞公) 정응두(丁應斗)이고, 조부는 찬성을 지낸 공안공(恭安公) 정옥형(丁玉亨), 증조부는 정수강(丁壽崗)이다. 어머니는 군수 송세충(宋世忠)의 딸이고, 부인은 정형(鄭衡)의 딸이다.

[활동사항]

1552년(명종 7) 생원시와 진사시 양과에 합격하였으며, 1556년(명종 11) 문과 알성시(謁聖試)에서 갑과 1등으로 급제하였다. 또 1566년에 치른 중시(重試)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내었다.

문과에 급제한 이듬해 사간원(司諫院) 정언(正言)을 제수 받았으며, 1558년(명종 13)에는 병조좌랑, 이조좌랑직에 연달아 진출했고, 그 이듬해 인사 담당 업무를 정실에 치우치게 했다는 탄핵을 받아 잠시 체직되기도 했다. 그 후 1559년(명종 14) 홍문관 수찬으로 복귀하였으며, 이후 사헌부 지평으로 옮겼다. 이 때 득세한 척신 이양(李樑)과 일을 도모할 때가 많아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기도 했으나, 명종 임금으로부터 사가독서(賜暇讀書)의 은혜를 입기도 했다.

1561년(명종 16)에 홍문관 부교리에 제수된 것을 비롯하여 이후부터 시강원(侍講院) 필선(弼善), 사헌부 집의, 홍문관 전한, 사복시 정 등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그리고 1588년(선조 21) 강원도관찰사로 나갔다가 이듬해 돌아와서 죽었다. 성품이 안상(安詳)하고 또 운서(韻書)를 좋아하였으나 자기 일만을 꾀하는 데에 급급하여 옳고 그름을 분간하지도 않고 권력만을 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저술 및 작품]

퇴계의 문인으로. 문장이 뛰어났고, 특히 사륙문(四六文)에 능하여 한때 홍문관과 예문관의 서책을 많이 찬술하였다. 저서로는 『고암집』이 있다.

[묘소]

묘는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에 있었고, 정시걸(丁時傑)이 지은 비문과 정원섭(丁元燮)이 지은 신도비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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