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22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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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士介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 산2-1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주홍 |
성격 | 능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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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1521년 |
관련인물 | 한사개 |
높이 | 1.7m |
지름 | 13.3m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 산2-1 |
소유자 | 청주한씨 문정공파 종회 |
[정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한사개의 묘.
[개설]
한사개[1453~1521]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사렴(士廉)이다. 한계희(韓繼禧)의 넷째 아들이다. 1480년(성종 11) 별제(別提)에 제수되었으며, 이후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승진하여 영흥부사(永興府使)와 해주(海州), 광주(廣州), 진주(晉州) 등지의 목사(牧使)를 역임하였다. 사후 병조참판(兵曺參判)에 추증되었다.
[위치]
묘소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에 있는 한계희의 묘소 아래에 있다.
[형태]
활개를 두른 원형의 봉분은 하부에 백색화강암으로 높이 84㎝ 가량 둘레돌을 둘렀고, 각 면에는 무궁화·새·난초 등을 양각하였다. 봉분의 높이는 1.7m이며, 둘레는 13.3m이다. 묘역에는 상돌·8각 망주석·신도비 등의 석물이 있으며 문인석은 갖추고 있지 않다. 옛 석물은 신도비 뿐이며, 백색화강암제 상돌의 측면(側面) 에는 ‘광복후경신중춘대체수석(光復後庚申仲春代替竪石)’의 간지(干支) 가 소자(小字)로 음각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980년 보수한 것이다.
봉분 하단에는 청주 한씨 문정공파 묘역 신도비[경기도 문화유산자료] 중 묘갈이 남서향(南西向)한 채 세워져 있다.
[금석문]
봉분 하단에 위치하여 남서향(南西向) 하고 있는 신도비는 백색화강암의 비좌와 일석인 백색대리석의 비신 및 운문에 전후 일월문(日月紋)이 양각된 지붕돌[옥개석]을 갖추고 있다. 비좌는 4면에 안상문과 상부에 복련문이 조식되어 있으나 마모되었다. 비신의 비문은 전면(前面)에만 있으며, 비제는 분의정국공신정헌대부서천군시공간한공신도비명 병서(奮義靖國功臣正憲大夫西川君諡恭簡韓公神道碑銘 幷序)이다. 비문은 신용개(申用漑)[1463∼1519]가 찬하고, 신흠(申欽)[1566∼1628]이 서와 전을 했다. 크기는 비좌 높이 36㎝·너비 110㎝·두께 63㎝, 비신 높이 127㎝·너비 70㎝·두께 20㎝, 지붕돌 높이 48㎝·너비 78㎝·두께 24㎝이며 총 높이 211㎝이다.
[현황]
현재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청주한씨 문정공파 종회에서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