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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원대군 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3063
한자 平原大君 墓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능묘
지역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수진동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윤종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1427년연표보기 - 평원대군 출생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1445년 1월 16일연표보기 - 평원대군 사망
조성 시기/일시 1445년연표보기 - 평원대군 묘 조성
이장 시기/일시 1974년연표보기 이후 - 평원대군 묘 이장
현 소재지 평원대군 묘 -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이곡리 산31-3번지
원소재재 평원대군 묘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수진동
출토 유물 소장처 평원대군 묘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용산동6가 168-6]
성격
양식 토축봉분
관련 인물 세종대왕|소헌왕후심씨|제안대군|초요갱
소유자 전주 이씨
관리자 전주 이씨

[정의]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수진동에 있던 세종의 일곱 번째 아들 평원대군의 묘.

[개설]

평원대군(平原大君)[1427~1445]의 이름은 이림(李琳), 자는 진지(珍之), 호는 근행당(謹行堂)이다. 시호는 정덕(靖德)에서 정헌(定憲)으로 바뀌었다. 세종대왕과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 사이에서 7남으로 태어났다. 문종, 세조, 안평대군, 임영대군, 광평대군, 금성대군의 동생이며, 영응대군의 형이다. 강녕부부인(江寧府夫人) 남양 홍씨와 혼인했다. 대군의 첩이던 초요갱은 악성 박연(朴堧)으로부터 궁중악무를 배운 유일한 계승자로 수많은 스캔들의 주인공이었다.

평원대군은 기개가 높고 지혜로운 인물이었다. 글을 잘 짓고 글씨도 뛰어났으며, 활쏘기와 말타기에도 능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두창으로 나이 19세에 요절했다. 그는 온화한 성품을 가져 존귀와 권세로 교만하지 않았으며,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여 사람들에게 두루 공경을 받았다. 천문 관측에 능해서 바람과 비·구름·천둥의 변화를 맞추는 데도 뛰어났다고 한다.

불행하게도 한 달 후 다섯째 형인 광평대군(廣平大君)[1425~1444]도 천연두에 걸려 19세에 죽었다고 전해진다.

평원대군이 죽자 묘소 관리를 위해 별궁으로 세운 것이 수진궁(壽進宮)이었다. 수진궁은 나중에 자식이 없는 평원대군의 봉사손(奉祀孫)이 된 예종(睿宗)의 아들이자, 평원대군에게는 조카손자인 제안대군의 집으로 옮겨졌고, 수진궁은 봉작을 받기 전 또는 미혼으로 죽은 왕의 자녀들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 되었다. 지금의 수진동은 수진궁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성남 지역에는 평원대군, 제안대군, 영창대군, 명선공주, 명혜공주 등의 묘자리가 있다. 성남에 있던 평원대군 묘는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이곡리 산31-3번지로 이장되었다.

[위치]

평원대군 묘는 현재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이곡리 산31-3번지에 있다.

[변천]

평원대군 묘제안대군 묘와 함께 처음에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탄동[숯골] 즉, 지금의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수진동에 있었는데, 1969년부터 광주대단지에 서울의 철거민들이 입주하면서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이곡리 산31-3번지로 이장되었다.

[형태]

평원대군 묘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유행했던 방형으로 조성되었다. 2단으로 호석을 쌓아 둘렀다.

[현황]

제안대군 묘와 함께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이곡리 산31-3번지로 이장되었다. 백자로 만든 평원대군 묘지(墓誌)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의의와 평가]

평원대군 묘는 조선 전기 왕실의 묘 양식을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왕실의 매장 풍속과 장례 문화를 알 수 있는 사료로서 가치가 크다. 짧은 인생을 살다간 평원대군의 사연이 있는 역사 유적지로도 의의가 있다. 또한 수진동의 지명이 유래된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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