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30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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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敎爽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윤종준 |
출생 시기/일시 | 1889년 1월 15일 - 김교상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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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 독립에 관한 여러 종류의 문서를 다량으로 인쇄하여 배포하여 징역 2년의 옥고를 치렀다. |
몰년 시기/일시 | 1946년 11월 12일 - 김교상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1990년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경성(서울) 장사동 78번지 |
거주|이주지 |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탄리 257번지[현재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
활동지 | 한국 및 만주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대한독립단 활동 |
[정의]
경기도 성남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김교상(金敎爽)은 서울에서 출생했지만 지금의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인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탄리 256번지에서 거주했다. 1920년 대한독립단을 조직하여 이재인(李載仁), 안교동(安敎童), 강학희(姜學熙) 등과 함께 항일 문서를 인쇄 배포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활동 사항]
김교상은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탄리 257번지에서 거주하며 항일 운동을 이끈 독립운동가이다. 성남의 봉국사에 근거를 두고 이재인, 강학희 등과 함께 대한독립단이라는 독립운동 단체를 조직해 항일 독립을 위한 문서를 인쇄 배포했다. 조선독립운동을 고취하는 문서, 경고문 200매, 암살단 취지서 3,000매, 대한독립단 지방부 시행 규령 80권, 선포문 약 1,000매, 대한독립단 경무국 시행 규령 340권, 대한독립단 취지서, 포고서 등을 배포했다. ‘대한독립운동을 위하여 생명 재산을 걸고 대한독립단 중앙부의 명에 복종할 것을 맹서함’이란 내용의 서약서 약 1,000매도 포함된다. 이재인의 집과 김교상의 집, 안교동의 집에서 인쇄 작업을 했다. 대한독립단 활동으로 연행된 김교상은 출판법 등 여러 법을 적용받아 징역 2년이 선고되었다.
[저술 및 작품]
김교상 관련 많은 인쇄물 가운데 「암살단 취지서 권고」는 김교상이 직접 작성한 것이다.
[상훈과 추모]
김교상은 1982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