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30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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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奉國寺 毘盧遮那佛 |
이칭/별칭 | 서울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로 79[태평동 216-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엘리 |
제작 시기/일시 | 1622년(광해군 14) - 봉국사 비로자나불 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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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939년 - 봉국사 비로자나불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신동 626-3[창신동 626-3] 지장암으로 이전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9년 10월 20일 - 봉국사 비로자나불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으로 보물 제1621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봉국사 비로자나불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문화재 지정번호 삭제 |
현 소장처 | 서울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용산동6가] |
원소재지 | 봉국사 비로자나불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로 79[태평동 216-2] |
복장 유물 소장처 | 서울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용산동6가] |
성격 | 불상 |
재질 | 목조 개금 |
크기(높이) | 높이 117.5cm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국립중앙박물관 |
문화재 지정 번호 | 보물 |
[정의]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의 봉국사 대광명전에 있던 조선 시대 불상.
[개설]
봉국사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은 광해군의 비 문성군부인 유씨(文城君夫人柳氏)가 1622년에 조성한 불상으로 추정된다. 자인수양사(慈仁壽兩寺)에 봉안되었다가 1674년(현종 15) 봉국사가 창건되자 대광명전으로 이안(移安)되었다. 1933년 발행된 『조선총독부관보』 제1814호와 1939년 작성된 『봉국사 이전 허가에 관한 건(奉國寺移轉許可願ニ關スル件)』에는 봉국사에 비로자나불과 석가불이 있었다고 전한다. 봉국사 비로자나불은 1939년까지 봉국사 대광명전의 주존불이었으나, 1939년 봉국사의 법통과 자산이 경성부 삼청정 4번지 연주암 포교소[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 4번지 칠보사]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석가불은 칠보사로 가고, 비로자나불은 경성부 창신정 지장암으로 옮겨졌다. 봉국사 비로자나불 복장 안에서는 발원문, 복장 전적, 다라니, 곤명 석씨 축원문, 후령통 등이 발견되었다. 2009년 10월 20일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地藏庵 木造毘盧遮那佛坐像)’이란 이름으로 보물 제1621호로 지정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가 삭제되었다.
[형태]
봉국사 비로자나불은 높이가 117.5cm 달하는 중형의 목조 좌상이다. 비로자나불의 지권인(智拳印) 수인(手印)은 오른손으로 주먹 쥔 왼손을 덮은 모습으로 17세기 이후의 특징적인 양식이다.
[특징]
봉국사 비로자나불의 복장물과 칠보사 목조석가여래좌상[봉국사 비로자나불]의 복장물을 살펴보면 두 불상이 동일한 뿌리임을 알 수 있다. 두 복장물에서 똑같이 발견된 유물은 1622년 청계사 개판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1627년~1631년 용복사 개판 『대방광불화엄경소(大方廣佛華嚴經疏)』 등이었고, 1924년에 쓰인 「곤명 석씨 축원문」도 똑같이 나왔다.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과 칠보사 목조석가여래좌상가 같은 시기에 제작되어 봉국사에 안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봉국사 비로자나불은 성남 지역의 불교사를 대변하는 유물이다. 발견된 복장물을 통해 삼청동의 칠보사 목조석가여래좌상과 함께 봉국사의 주존이었다는 것은 그 역사적 가치를 말해준다. 국토개발 사업의 포화 속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봉국사 비로자나불의 모습은 우리 불교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