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3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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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達衷 |
영어공식명칭 | I Dalchung |
이칭/별칭 | 이달중(李達中),지중(止中),중권(仲權),제정(霽亭),문정(文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윤종준 |
출생 시기/일시 | 1309년 - 이달충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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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385년 8월 18일 - 이달충 사망 |
거주|이주지 | 이달충 거주지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
묘소|단소 | 이달충 묘소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만운리 산62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경주 |
대표 관직 | 대제학|호부상서 |
[정의]
고려 후기 지금의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숯골에 거주하였던 문신.
[개설]
이달충(李達衷)[1309~1385]은 조선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의 아버지인 환조(桓祖)의 친구로서 이성계를 처음 만났을 때 비범한 인물임을 한눈에 알아보았으며, 노년에 지금의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숯골[炭洞]에 집을 짓고 살았다.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지중(止中) 혹은 중권(仲權)이고, 호는 제정(霽亭)이다. 초명은 달중(達中)이었는데 공민왕(恭愍王)의 명에 따라 ‘중(中)’을 ‘충(衷)’으로 고쳤다. 할아버지 이세기(李世基)는 충렬왕(忠烈王) 때 성균시에 갑과로 급제하여 왕으로부터 ‘나의 문생[吾門生]’이라는 칭찬을 받았고, 관직은 밀직부사(密直副使)·대제학(大提學)에 이르렀으며 시호는 문희(文僖)이다. 아버지 이천(李蒨)은 호가 국당(菊堂)이며 추성보리공신(推誠輔理功臣) 삼중대광(三重大匡) 첨의참리(僉議參理)에 올랐고, 월성부원군(月城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어머니는 연창군부인(延昌郡夫人) 박씨(朴氏)이다.
초배(初配)는 정화택주(靖和宅主) 횡성 조씨(橫城趙氏)로 정당문학(政堂文學) 조문근(趙文瑾)의 딸이고, 재취(再娶)는 충주 안씨(忠州安氏)로 충렬공(忠烈公) 안우(安祐)의 딸이며, 삼취(三娶)는 평양 조씨(平壤趙氏)로 상서(尙書) 조천우(趙千祐)의 딸이다. 4남 4녀를 두었는데 큰아들 이준(李竴)은 호조전서를 지냈고, 둘째 아들 이전(李竱)은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졌으며, 셋째 아들 이수(李䇕)는 공조판서를 지냈고, 막내 아들은 이횡(李竑)이다. 큰딸은 내시윤(內侍尹) 윤발(尹發)에게, 둘째 딸은 판사(判事) 방순(方恂)에게, 셋째 딸은 김명리(金明理)에게, 넷째 딸은 윤승렬(尹承烈)에게 출가하였다. 윤승렬에게 출가한 넷째 딸은 딸을 셋 낳았는데, 둘째 딸이 개국공신 이백유(李伯由)와 혼인하였고, 셋째 딸이 송산(松山) 조견(趙狷)과 혼인하였다.
[활동 사항]
이달충은 18세 때인 1326년(충숙왕 13)에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쳤다. 1358년(공민왕 7) 여름 호부상서로 동북면병마사로 나아갔다가 돌아오려 할 때, 이성계의 아버지 환조가 삭방도만호(朔方道萬戶)로서 함주(咸州)[함흥]의 학선정(鶴仙亭)에서 전별연을 베풀었다. 17세인 이성계가 그 왼편에 서 있었는데, 이달충이 한 번 보고는 이성계의 범상한 모습을 알아보았다. 마침 일곱 마리의 노루가 언덕 위를 지나고 있었는데, 이달충이 말하기를, “한 마리를 잡을 수 있겠소?” 하자 이성계가 활을 당겨 한 발을 쏘아 다섯 마리를 잡았다.
술잔을 돌리는 때가 되어 환조가 잔에 술을 부어 돌리자 이달충은 선 채로 마셨는데, 이성계가 잔에 술을 부어 돌리자 꿇어앉아 마셨다. 환조가 이상하게 여겨 묻기를, “친구의 자식 놈에게 어찌 이렇게 대한단 말이오?” 하자 이달충이 대답하기를, “참으로 신이한 사람이외다. 공이 미칠 바가 아니오. 공의 집안은 이 아들로 인해 반드시 위대하게 될 것이오.” 하며 자신의 자손들을 그에게 부탁하였다.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여 왕위에 올라 이달충의 자손들 이름에 모두 ‘입(立)’ 자를 넣어서 쓰도록 명하였는데, 이는 그때의 일을 기린 것이다.
[학문과 저술]
이달충이 노년에 숯골에 새로 집을 짓고 쓴 「탄동신거(炭洞新居)」라는 한시가 남아 있다. 문집으로 『제정집(霽亭集)』이 있다.
[묘소]
이달충의 묘는 처음에는 지금의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숯골에 있다가 광주대단지 개발로 경기도 광주시 오포면 추자리로 이장하였고, 다시 대전광역시 대덕구 신탄진동으로 이장하였다가 지금은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만운리 산62번지에 있다. 큰딸 부부[이백유 부부], 작은딸 부부[조견 부부]의 묘가 모두 성남시 중원구 여수동에 서로 가까이 있다. 조견의 묘역[송산 조견 선생 묘]은 2001년 2월 20일 성남시 향토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으며, 2024년 6월 「성남시 향토유산 보호 조례」가 개정됨에 따라 성남시 향토유산 제3호로 변경되었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