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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3218
한자 李春三
영어공식명칭 I Chunsam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성남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윤종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병
성별
대표 경력 의병대장

[정의]

경기도 성남 지역에서 활동한 개항기 의병장.

[개설]

이춘삼(李春三)은 성남 출신의 의병장 윤치장과 함께 의병 활동을 한 인물이다. 윤치장이 의병대장이 되고 이춘삼이 부대장이 되었다가 윤치장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면서 지휘권을 이어받아 대장으로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일본이 1905년(고종 42) 을사늑약으로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자, 고종황제는 1907년 6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이상설(李相卨), 이준(李儁), 이위종(李瑋鍾) 등 3인을 특사로 파견하여 조약이 무효임을 세계만방에 알리고자 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이를 빌미로 고종황제를 퇴위시키고 정미칠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한국의 군대를 해산하고 내정간섭까지 하게 되었다.

이에 을사늑약으로 의병을 일으킬 결심을 하고 있던 윤치장이 70명[또는 360명]의 동지들을 모으고 대장으로 추대되었고, 이춘삼은 이 부대에서 부대장이 되었다. 윤치장 의진에 가담한 의병들은 광주군 대왕면낙생면[현 성남시 분당구], 언주면[현 서울특별시 강남구] 출신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춘삼윤치장을 수장으로 한 의병들과 함께 광주군 묵동(墨洞)에서 일본군 기병대와 첫 전투를 벌인 것을 비롯해 현재 성남 일대에서 전투를 벌였고, 경기도 양주를 비롯한 경기 동북 지역에서 능수능란하게 적을 공격하였다. 당시 윤치장 의진은 허위(許蔿), 이강년(李康秊) 등과 서울 진공 작전을 준비하였다. 서울 진공 작전은 1908년 전국의 의병들이 연합해서 서울로 진격하여 일본군을 몰아내려던 작전이었다. 그러던 중 경기도 양주군 미아리[현 서울특별시 강북구 미아동]에서 윤치장이 일본군에 체포되자 부대장이던 이춘삼이 지휘권을 이어받아 의병대장이 되었다. 이후로 이춘삼이 이끄는 의병들은 과천, 연천, 포천 송우시장, 충청도 등지에서 지속적으로 항전을 이어 나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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