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3258 |
---|---|
한자 | 李賢奎 |
영어공식명칭 | Yi Hyeongyu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
집필자 | 윤종준 |
추모 시기/일시 | 1933년 9월 9일 - 이현규 자선송덕비 건립 |
---|---|
활동지 | 이현규 활동지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 |
성격 | 자선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강점기 지금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 지역에서 활동한 자선가.
[개설]
이현규(李賢奎)는 가난한 사람들의 세금을 대납해 주고 채무를 장부에서 삭제해 주었다. 이에 지역 주민들이 1933년 9월 9일에 송덕비를 세워 주었다. 송덕비에는 소화(昭和) 연호가 새겨졌는데, 광복 이후 비문의 다른 부분은 온전하게 보존되었지만 연호 부분만 삭제하고자 한 흔적이 보였다고 한다.
[활동 사항]
1930년대에는 일본의 강제 수탈이 극심한 시기로, 특히 1936년에는 전국의 농민들이 가뭄에 시달렸다. 이런 시기에 이현규는 가난한 사람들의 세금을 대신 내주었을 뿐 아니라 빌려준 것도 장부에서 삭제하여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였는데, 이현규의 부인 역시 남편과 생각이 같았다고 전한다.
[상훈과 추모]
1933년 9월 9일 지금의 분당구 운중동 판교원마을 판교원9단지한림풀에버 동쪽, 판교동주민센터 북쪽 단독주택 용지 부근에 이현규 자선송덕비가 세워졌다. 이현규 자선송덕비는 흰색 화강암제의 비좌와 직사각형 오석의 비신을 갖추고 있었다. 송덕비의 총 높이는 143㎝로, 비좌 높이 43㎝, 너비 65㎝, 두께 45㎝, 비신 높이 100㎝, 너비 38㎝, 두께 19㎝이었다. 비문은 이택현(李宅鉉)이 쓰고, 이의풍(李義豊)이 발기하여 세웠다. 비신의 비문은 앞면 중앙에 세로 한 줄의 큰 해서체로 ‘李公賢奎 慈善頌德碑(이공현규 자선송덕비)’라 새겼고, 중앙의 글씨를 중심으로 좌우에 작게 ‘天性慈仁 能散能聚 代稅貧戶 仍舊耕賭 貸簿爻抹 鄕里安堵 夫婦同心 風聲可樹(천성자인 능산능취 대세빈호 잉구경도 대부효말 향리안도 부부동심 풍성가수)’라 하여 이현규의 자선을 칭송하는 사언시가 새겨졌다. 이현규 자선송덕비는 판교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