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이 워낙 가난한데다 직장생활하면서 벌었던 돈도 족족 탕진해 버린 터라 모아논 돈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어머니 집 2층에 신혼집을 차리게 되었다. 어머니와 함께 산 것은 1년 남짓. 1년이 지나자 어머니는 400만 원을 내놓으시며 독립하도록 했다.

구보는 상대원2동에다 보증금 400만 원에 월 10만 원 하는 셋집을 얻었다. 방 하나에 부엌 하나 짜리 집이었다. 지하방은 늘 습기가 가득했고 빗물도 새고, 곰팡이도 많았다. 그런 가운데서도 구보는 착실하게 살았다. 구두 공장에 다니면서 돈도 조금씩 모았다. 몇 년간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기술자로 일했고, 보수로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다. 신학 공부를 하던 신부가 공부를 마치고 졸업할 즈음, 다시 집을 옮겼다.

“상대원2동 쪽에 방 하나 부엌 하나 지하실에서 살다가 어느 정도 돈을 조금 모아서 방 두 개 거실 하나 짜리를 얻게 됐어요. 거기서 또 한 3, 4년 살았어요. 근데 그 지하실 방 하나 부엌 하나 살 때 진짜 힘들게 산 게 뭐냐면은, 아주 그 당시에 집들이 아주 완벽하게 잘 지은 것이 아니라 웬만한 지하실은 다 천장에 물이 떨어지고 물이 새고, 막 여름이면 그 물 땜에 고생들 많이 했는데, 우리도 역시 장마철 되면 빗물이 새고 또 곰팡이 나고 또 부엌 쪽에서는 지렁이가 올라오고 이렇게 이렇게 힘들게 살았어요. 그래서 여기서 빨리 벗어나가지고 방 쪼금이라도 더 큰 데로 이사해야 되겠다 싶었어요. 그 상태에서 지하 방 두 개에 거실 하나 있는 집으로 전세로 갔나 전세 얼마 짜리로 갔지 전세로 가서 살게 됐어요.”

구보는 어릴 때부터 집에 관심이 많았다. 벽돌을 몇 개씩 사들이고 개천에서 모래를 퍼다가 처음으로 집을 지을 때도, 자신이 직접 인부를 고용하여 새로 집을 지을 때도, 그리고 결혼하고 독립할 때나 집을 늘려갈 때도, 구보는 늘 ‘방 몇 칸에 거실 하나 부엌 하나’ 하는 방법으로 집을 설명했다. 그에게 집이란 그런 것이었다. 집의 위치도, 방향이나 모양도, 그리고 색깔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지친 몸을 쉬게 할 방이 몇 개인지 음식을 끓일 부엌이 딸려 있는지가 중요했던 것이다.

소년이었을 때도 청년기를 지나 이제 결혼을 하고 성년이 된 이후에도 안정된 주거는 그만큼 중요했다. 혹시라도 비 오던 그 어느 봄날처럼, 또다시 집이 헐리고 거리로 허허벌판으로 내몰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크고 화려한 집을 원하거나 집을 가지고 돈 벌이를 하려는 마음은 추호도 없었으면서도, 집은 구보의 최고의 관심사이자 인생 목표와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