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5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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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지석묘(支石墓),거석 기념물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이영문 |
[정의]
전라남도 영암 지역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 유적인 고인돌.
[개설]
고인돌은 땅 위와 아래에 받침돌[支石]이나 무덤방[石室]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선사 시대의 대표적인 거석 기념물이다. 고인돌의 명칭은 고인[支, 撑]과 돌[石]로 이루어져 있다. 한자로 지석묘(支石墓)라 하며, 영어로 ‘Dolmen[탁자 모양의 돌]’ 또는 거석 기념물이라 한다. 중국에서는 탁자식을 석붕(石棚)[돌집], 개석식을 대석개묘(大石蓋墓)라 한다.
거석 기념물은 거대한 돌을 이용해 만든 선사 시대의 구조물이며, 종류로는 고인돌을 비롯한 선돌[立石], 열석(列石), 환상 열석(環狀列石), 석상(石像) 등이 대표적이다.
[분포]
우리나라에는 고인돌이 약 4만여 기가 있다고 알려져 있으나 전라남도 지역에만 2만 기 이상이 있어 가장 밀집 분포되어 있다. 영암 지역에는 상당수가 유실되거나 훼손되어 있지만 이를 포함하면 원래 166곳에 1,200여 기가 분포되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영암 지역 고인돌의 분포는 금천변의 금정면 일대[40개군 325기]와, 영암천과 월출산 기슭인 영암읍과 군서면 일대[37개군 364기] 그리고 남해만과 인접한 서호면 일대[63개군 431기]에 밀집되어 분포하는 양상이다.
고인돌은 평지나 구릉, 산기슭, 고갯마루 등 사람들이 생활하던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평지[33%]와 구릉[48%]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영암에서 고인돌이 가장 많이 군집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신북면 장산리 주암[55기], 영암읍 회문리 녹암[50기], 서호면 엄길리 서엄길[35기], 영암읍 장암리 회화정[32기] 등이 대표적이다.
[고인돌 관련 지명과 명칭]
영암에서 고인돌과 관련해서 전해지는 지명과 명칭으로 바우배기[서호면 장천리 괴음 고인돌, 학산면 용소리 지소 고인돌], 받침돌이 마치 상여를 매고 가는 모습에서 상여 바위[시종면 월송리 송산 고인돌], 고인돌 배치와 수가 마치 북두칠성을 닮았다고 칠성 바우[덕진면 금강리 강정 고인돌], 덮개돌의 형상 때문에 두꺼비 바우[미암면 학산리 노송 고인돌], 호랑이 바위[범 바위, 군서면 월곡리 호동 고인돌], 배 바우[신북면 장산리 주암 고인돌, 군서면 월곡리 주암 고인돌], 고인돌의 규모와 전설에서 장군 바우[신북면 용산리 용산 고인돌, 행정리 광암 고인돌] 등이 있다. 마을 지명 가운데 고인돌과 관련된 것으로 주암과 호동이 있다.
[고인돌 형식]
영암 지역의 고인돌은 탁자식, 기반식, 개석식 등이 분포하고 있다. 영암 지역에서 발견된 탁자식 고인돌은 10여 기 정도로, 군집에서 1기씩만 확인되고 장벽석의 2매만 남아 있으며 덮개돌이 두터운 것이 특징이다. 금정면 용흥리 옥포 고인돌 떼, 서호면 소산리 소흘 고인돌 떼, 학산면 독천리 독천 고인돌 떼가 대표적이다.
영암에서 발견된 대형 기반식 고인돌들은 길이 4m 이상에 두께가 2m 넘는 것으로 받침돌이 4개가 기본이나 8개까지 있는 것도 나타난다. 대형 고인돌은 군집에 1기씩만 있거나 독립된 것으로 군서면 월곡리 주암 고인돌 떼, 금정면 용흥리 옥포 고인돌 떼, 신북면 장산리 주암 고인돌 떼, 서호면 엄길리 서엄길 고인돌이 대표적이다.
개석식은 지하에 만든 무덤방 위에 바로 뚜껑으로 덮개돌이 놓인 형식으로 영암에서 발굴된 고인돌들은 대부분 이에 속한다. 이외에 땅 위에 여러 매의 판상석을 잇대어 조립한 이른바 위석식(圍石式)[제주식]도 있지만 영암에서는 아직 발견된 바 없다.
[출토 유물]
영암 지역의 고인돌에서 출토된 유물로 무덤방 안의 부장용 유물과 무덤방 주변의 의례용 유물이 있다. 부장용 유물은 간 돌검[石劍]이 삼호면 산호리 동암 고인돌과 서호면 엄길리 서엄길 고인돌에서 발견되었고, 간 화살촉[石鏃]이 삼호면 산호리 동암 고인돌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 청동기 후기의 세형동검이 서호면 장천리 괴음 고인돌에서, 옥[곱은 옥 1점, 대롱옥 9점]이 삼호면 망산리 망산 고인돌에서 발견되었다. 이 외에도 붉은 간 토기[赤色磨硏土器], 가지 무늬 토기[彩文土器]가 조각으로만 발견되었다.
의례용 유물은 모두 무덤방 주변이나 묘역 시설에 발견되는데, 삼호면 서호리 서소호 고인돌에서는 세모꼴 돌칼[三角形石刀]을 일부러 이등분한 것이 발견되었으며, 삼호면 산호리 동암 고인돌에서는 간 화살촉, 세모꼴 돌칼, 대팻날 석기, 홈자귀 조각들이 수습되었다. 또한 서호 청용리 고인돌에서는 세형동검의 칼자루 끝 장식[劍把頭飾], 숫돌 등이 수습되었다. 특히 서호면 엄길리 서엄길 고인돌에서는 세형동검기에 제의 행위의 일환으로 검정 간토기[黑陶長頸壺]가 받침돌 옆에 매납(埋納)된 채 발견되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영암 지역은 영산강 하류의 강구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문화를 가장 빨리 받아들일 수 있는 지리적인 여건을 갖추고 있다. 서호 장천리에서 발굴된 집자리[住居址]와 고인돌에서 출토된 세형동검과 검정 간토기는 청동기 시대 후기의 대표적인 유물이다.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인 고인돌은 영산강 유역에서도 밀집 분포된 양상이며, 남부 지역에서 보기 드문 탁자식 고인돌이 영암 지역에 분포하는 것은 북으로부터 무덤 형태를 받아들이는 문화의 영향으로 추정된다. 영암 지역 고인돌에서 6m 이상의 대형의 덮개돌이 다수 발견되고, 영산강 유역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당시 지배 세력만이 소유하는 세형동검이나 옥, 검정 간토기가 부장된 것은 고인돌을 축조한 집단의 성격을 암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