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0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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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民謠 |
영어공식명칭 | folk song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집필자 | 최원오 |
[정의]
민간에 전승되어 온 노래.
[개관]
농업과 어업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노동을 할 때, 일정한 의식을 거행할 때, 놀이를 할 때 부르기 시작한 노래로서, 특정한 창작자가 없이 자연적으로 이루어져 민중의 생활 감정을 소박하게 반영하고 때로는 국민성과 민족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따라서 민요는 비전문적인 민중의 노래로서 생활상의 필요성에서 창자가 스스로 즐기는 노래이며, 창자만으로도 존재하는 자족적인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민요에는 이러한 토속민요 외에 신민요와 같은 통속민요도 있는데 이들 민요는 직업적인 소리꾼들에 의하여 불려져 세련미가 있다. 또한 이들 통속민요는 다른 지역에도 널리 전파되어 불려지며, 그 사설은 옛 시구나 중국 고사를 인용하는 등 수준이 높지만 여러 곡에서 끌어내어 쓰기 때문에 중복되는 경향이 허다하다.
[종류]
토속민요는 생활상의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필요성에 따라 노동요, 의식요, 유희요 등으로 구분된다. 성남지역의 경우 서울 주변에 있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도시화가 일찍부터 진행되어 토속민요의 전승은 거의 단절되어 있다. 여기서는 통속민요를 중심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통속민요의 분류에 의하면 서울과 경½기 지방을 중심으로 불리는 민요를 경기민요라 지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이러한 보편적 분류법에 따라 설명하기로 한다.
[형식]
경기민요는 굿거리, 자진타령, 세마치 등의 장단으로 부른다. 이러한 장단으로 부르는 경기민요에는 노랫가락, 창부타령, 아리랑, 긴아리랑, 이별가, 청춘가, 도라지타령, 노들강변, 사발가, 베틀가, 태평가, 오봉산타령, 오돌독, 양류가, 방아타령, 자진방아타령, 사설방아타령, 양산도, 군밤타령, 풍년가, 한강수타령, 경복궁타령, 개성난봉가, 사설난봉가, 매화타령, 늴리리야, 는실타령, 건드렁타령, 도화타령, 사찰가 등이 있다. 이 중 노랫가락과 창부타령은 무가이고, 아리랑, 이별가, 청춘가, 도라지타령, 태평가, 양류가, 늴리리야, 군밤타령 등은 발생 연대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들이다. 양산도, 방아타령, 자진방아타령, 한강수타령, 경복궁타령 등은 선소리, 즉 입창에 속한다. 입창은 장구를 메고 손짓을 해가면서 서서 부르는 노래를 일컫는다.
[내용]
이 중 서울 지방의 민요로 분류되는 것을 제외한, 경기 지방을 중심으로 불렸던 민요에 대해 설명하기로 한다.
(1) 이별가: 박지원의 『한북행정록(漢北行程錄)』에 의하면 배를 타고 떠나는 상대를 전송할 때 「어부사」를 부르며 「선유락(船遊樂)」을 춘다. 그리고 배가 떠나는 기적을 울리면 기생들이 배따라기, 즉 배떠나기의 처창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이 배따라기가 「이별가」의 사설과 유사하다. 즉 “정거혜(碇去兮)여 선리(船離)하니, 차시거혜(此時去兮)여 하시래(何時來)오. 만경창파(萬頃蒼波) 거사회(去似廻)라.” 하는 것이 “닻드자 배떠나니 인제 가면 언제 오리. 만경창파에 가는 듯 돌아오소.”라는 이별의 사설과 거의 일치한다.
(2) 양산도: 이 곡의 유래에는 다음과 같은 설이 있다. 즉 양산의 누이동생이 부호의 첩으로 억울하게 강제결혼을 당하게 되었다. 이에 자결하려는 것을 양산의 아버지가 보고 “에라 놓아라.” 양산은 “나는 못 놓겠소.”하는 것을 지나가던 취객이 노래로 했다는 설과 대원군이 경복궁 중수 때 회방아를 찧으면서 부르던 노동요로 대들보 위에 회를 바른다는 양산도회(梁山塗灰)에서 시작되었다는 설이 있다. “(후렴) 에라 놓아라 못 놓겠구나 능지를 하여도 못 놓겠네. / (1절) 에헤 이에 차문주가 하처재오 목동이 지행화촌이라.”로 시작한다.
(3) 양류가: 「오봉산타령」과 같은 계열의 민요로 굿거리 장단의 밝고 경쾌한 노래이다. 평양 지방에서 발생한 노래라고 보는 이도 있으나, 음악적 특징으로 보아 경기 지방의 노래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후렴) 에후려차 더덤석 안고서 아하 요것이 내 사랑 / (1절) 양류지에 앉는 꾀꼬리 제비만 여겨 후린다.”로 시작한다.
(4) 청춘가: 개화기 때의 「이팔청춘가」와 내용은 다르지만 곡조는 같다. 「이팔청춘가」는 의젓하게 청춘을 훈계한 것인데, 경기민요 「청춘가」는 청춘을 구가하는 탕자의 노래이다. “이팔은 청춘에 소년 몸 되어서 문명의 학문을 닦아를 봅시다. / 청춘 홍안을 네 자랑 말아라 덧없는 세월에 백발이 되누나.”로 시작한다.
(5) 도라지타령: 경기민요에는 「도라지타령」이 두 개 있다. 조선 말기에 생긴 신민요의 하나로서 불려지는 것과 선소리로 불려지는 것이 그것이다. 신민요 「도라지타령」은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 심심산천에 백도라지 / 한 두 뿌리만 캐어도 / 대바구니로 반실만 되누나 / (후렴) 에헤요 에헤요 에헤애 / 어여라 난다 지화자자 좋다 / 네가 내 간장을 / 스리살살 다 녹인다.”로 시작한다. 선소리 「도라지타령」은 「산타령」의 앞산타령과 뒷산타령 다음에 부르는 것으로 신민요 「도라지타령」과는 내용이나 곡조가 전혀 다르다. 앞산타령과 뒷산타령으로 넘어, 다시 이 곡조로 돌아든다 하여 ‘「도라지타령」’이라 곡목이 정해졌다고 한다. 또는 “도라지 병풍 여닫이 속에 잠든 큰아기 날 살려라……”로 시작하기 때문에 이런 곡명이 붙여졌다고도 한다.
(6) 창부타령: 본래는 한강 이북에서 무당이 부르던 무가이다. 옛날에는 무당이 부르던 사설을 그대로 썼으나 차츰 순수한 민요 사설로 바뀌었다. 굿을 베푼 재가(齋家)에서 귀신을 청하고 쫓기 위하여 부르던 노래로 매우 흥겹다. “높은 산에 눈날리듯 / 얕은 산에 재 날리듯 / 재수 사망 점지하소. / (후렴) 얼시구 절시구 저리시구 / 지화자자 저리시구.”로 시작한다. 요즘에 와서는 한층 세속화하여 “디리디 리리리리 /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라는 입타령까지 넣어가며 부르기도 한다.
(7) 방아타령: 방아 찧으며 부르는 노동요와는 거리가 먼 노래로 선소리의 하나이다. 곡명은 후렴 “에라 우겨라 방아라구나”에서 비롯되었다. 이 노래는 신라 자비왕 때 가야금을 잘 타던 백결선생이 세모에 이 악기로 방아공이 소리를 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거하여 만들어졌다는 설, 대원군 때 발생한 「경북궁타령」 중 “경복궁 짓는 데 회방아 소리라”라는 가사에 의하여 경복궁 중수와 관련되어 만들어져졌다는 설이 있다. “(1절) 노자 좋구나 / 노들 강변 비둘기 한 쌍이 / 푸른 콩 한 알을 물어다 놓고 / 암놈이 물어 숫놈을 주고 / 숫놈이 물어 암놈을 주며 / 암놈 숫놈 어르는 소리 / 늙은 과부 한숨쉬고 / 소년 과부 에헤라 반보찜 싼다. (후렴) 에에 에헤야 반이나 넘어 늙었으니 / 다시 젊지는 에헤라 못라리라.”로 시작한다.
(8) 한강수타령: 한강에서 뱃놀이를 하며 한강의 역사, 자연, 선유, 애환 등을 노래한다. “한강수라 맑고 깊은 물에 / 풍덩실 빠져도 애고 나는 못죽어 / (후렴) 에야에야 에헤야 / 에헤야 에헤야 에헤요 / 에헤야 얼사마 동게디여라 / 내사랑아.”로 시작한다.
(9) 경복궁타령: 조선 말기 1865년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할 때 부른 노동요이다. 그 후 소리꾼들에 의해 점차 세련되게 만들어졌다. 제창 부분의 후렴 가사가 “방아로다”로 끝나는 것이 특징이다. 경기 민요 중에서도 장단이 매우 빠르고 메기는 소리와 받는 소리가 ‘에헤’하고 두 장단에 걸쳐 길게 빼면서 시작하기 때문에 꿋꿋한 기상과 긴박감이 넘친다. “을축 사월 갑자일에 / 경복궁을 이룩했네. / (후렴) 에 에헤야 에헤야 얼널널거리고 방아흥에로다.”로 시작하는데 사설 내용의 대부분은 대원군의 경복궁 중수에 불만을 표시하는 것들이다. ‘갑자을축’이라고 해야 할 순서를 ‘을축갑자’라고 뒤바꿔서 경복궁의 재건은 그 당시의 실정에 비춰볼 때 정치의 본말을 어긴 것이라는 점을 은근히 풍자하기도 하였다.
(10) 노들강변: 작사는 신불출, 작곡은 문호월로 알려져 있다. 경쾌하면서도 애조를 띤 노래로 세상의 한을 물에 띄워보려는 심정을 읊었다. “노들강변 봄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에다 무정 세월 한 허리를 칭칭 동여 매어 볼까.”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