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071 |
---|---|
한자 | 城南市 |
영어공식명칭 | Seongnam-city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성환,서종원 |
[정의]
경기도 중앙에 위치한 도시.
[개관]
성남시는 경위도 상 북위 37°19´~37°28´, 동경 127°01´~127°11´의 위치에 있다. 동쪽 끝은 중원구 상대원동, 서쪽 끝은 분당구 석운동, 남쪽 끝은 분당구 구미동, 북쪽 끝은 수정구 창곡동이다. 서울의 위성도시로서 서울의 중심에서 남동쪽으로 약 20㎞ 거리에 있으며 동쪽은 광주시, 서쪽은 과천시와 의왕시, 남쪽은 용인시, 그리고 북쪽은 하남시와 서울특별시 서초구, 강남구, 송파구와 접해 있다.
성남시는 조선 후기 세촌면, 대왕면, 돌마면, 낙생면을 모체로 했는데 지금의 성남 구시가지는 세촌면, 분당구의 탄천 서쪽은 낙생면, 동쪽은 돌마면, 수정구의 탄천 서쪽은 대왕면이었다. 성남시는 국가 정책으로 조성한 최초의 인공도시이다. 성남시의 두 축인 성남 구시가지와 분당신도시는 그린벨트로 단절되어 있어 특이한 경관을 자아내며, 성남 구시가지는 수정구와 중원구에 반씩 걸쳐 있다. 성남시를 상징하는 꽃은 철쭉, 나무는 은행나무, 새는 까치로 아름답고 활기찬 도시, 만인에게 환영받는 도시로 번영하리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마스코트는 새남이와 새롱이인데 캐릭터를 이용해 과학과 전통, 환경과 행복을 표현했다.
2022년 현재 성남시의 면적은 141.64㎢이며 수정구, 중원구, 분당구 3개 구 50개 동으로 편재되어 있다. 인구는 926,645명으로, 수정구에 234,728명, 중원구에 207,896명, 분당구에 484,021명이 분포한다. 성남시청은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성남대로 997[여수동 200]에 자리한다.
[유래]
‘성남’은 말 그대로 성의 남쪽, 곧 남한산성의 남쪽을 뜻하는 이름으로 실제로 남한산성의 남서쪽에 자리 잡고 있다. 예전에는 성남을 성나미로도 불렀지만 표기할 때는 ‘성남(城南)’으로 썼다고 전해진다. ‘성남’이란 지명은 1530년(중종 25)에 펴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광주목 누정조에 이문형(李文泂)[?~1466]이 쓴 「압구정기(狎鷗亭記)」에 등장한다. 조선의 문신 유상운(柳商運)[1636~1707]이 쓴 『묘갈명(墓碣銘)』에도 “7월에 성남(城南) 옛 집에 갔다가”라는 기록이 있다. 이들 문헌으로 보아 ‘성남’이라는 지명은 오래 전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성남=성나미’로 쓴 사례는 오늘날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의 ‘성나미’ 마을이 있는데, 부를 때는 ‘성나미’이지만 ‘성남(城南)’이라고 쓴다.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과 남원시 보절면,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등 여러 마을의 지명에서도 ‘성나미’를 찾아볼 수 있다. ‘나미’는 ‘내미·너미·네미’라는 의미와 함께 ‘너머’의 ‘넘[越 혹은 踰의 뜻]+어’가 파생된 것으로, 산등성이·성·고개 등 높은 곳의 ‘너머’라는 뜻이다. 1595년의 남한산성 수축과 1626년의 증·개축 시기보다 100년 이상 앞서 ‘성남’이라는 이름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성나미=성남’의 표기는 그 이전부터 사용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성남’은 성의 남쪽, 성 너머 저쪽, 재 너머 저쪽을 나타내는 것[성=잣=재]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평지성의 경우 ‘성안’과 ‘성밖’이 서로 대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안[중부면 산성리]’과 ‘성 너머[나미]’가 서로 대응하는 것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자연환경]
성남시는 탄천이 중앙부를 북류하고, 그 좌우에 지류가 발원하는 산지가 있다. 전체적으로 남쪽으로 볼록한 모양을 띠고 있다. 성남시의 동쪽은 경기도 광주시와 경계를 이루는데, 북쪽으로부터 청량산·검단산, 이배재·갈마치·태재 고개, 불곡산 등의 광주산맥의 지맥에 의해 구분된다. 서쪽은 경기도 과천시·의왕시와 경계가 되는데, 청계산의 여러 봉우리와 학현[학고개]·바라산 등 광주산맥의 지맥에 의해 역시 나누어진다. 동쪽의 산지는 전반적으로 서쪽 산지에 비해 평균 고도가 낮고 완만한 사면이 발달해 있다. 이 동서 양쪽의 산록 중앙부를 용인시 구성읍 동백리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흐르는 탄천이 관통하고 있다. 이 하천은 성남시로 흘러 들어왔다가 한강으로 흘러 나가는 형세를 띠는 남출북류형(南出北流形)을 이루고 있으며 그 좌우에 비교적 넉넉한 평야들이 형성되어 있다. 탄천 주변에는 높이 100m 내외의 야산들이 솟아 있으며,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은 남고북저형(南高北低形)을 이루고 있다. 북쪽은 인릉산과 청량산 줄기 등을 사이에 두고 서울특별시 서초구·강남구·송파구, 경기도 하남시와 접하게 되며, 남쪽은 바라산과 불곡산 줄기 등에 의해 용인시 수지출장소와 광주시 오포읍이 접하고 있다. 결국 성남시는 탄천의 유입부와 유출부 일대를 제외하면, 그 전체 지형이 분지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지형 조건은 광주대단지 조성 계획 당시 시가지 입지 설계에 영향을 주었고, 그 결과 성남 구시가지와 분당 신시가지는 탄천과 동쪽 산지 사이를 중심으로 조성되었다. 하지만 근래에 판교신도시 개발, 미금역 역세권, 그리고 그 일대의 개발로 인해 탄천의 서부 지역도 부분적으로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다.
성남시의 주요 하천으로는 한강으로 유입되는 탄천을 간천으로 하여 22개의 세천과 17개의 소천이 있는데 동막천·분당천·운중천·금토천·야탑천·여수천·대원천·단대천·상적천 등의 중천과 합류 또는 독립하여 탄천에 유입된다. 그러나 분당 신시가지 건설사업으로 분당 지역의 세천은 물론이거니와 소·중천의 형세가 많이 변했다.
성남시의 지질은, 남부화강암 지대와 북부화강암 지대 사이에 드넓게 펼쳐진 회색화강편마암지대이 주를 이루고 있다. 선캠브리아기의 경기편마암 복합체의 일부로서 흑운모 홍상편마암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상대원동의 사기막골 동부에서 갈현동의 갈마치고개에 이르는 산지 일대는 반상변정질 편마암으로 되어 있으며, 신촌동의 인릉산에서 상적동의 대왕저수지에 이르는 능선은 안상편마암으로 되어 있고, 궁내동의 남쪽 쇳골에서 동원동의 낙생저수지 북편 산기슭에 이르는 능선은 우백질편마암이 분포되어 있다. 그러나 탄천과 그 지천을 따라 발달된 충적암은 위의 모든 암층들을 부정합으로 덮고 있다.
성남시는 대륙성 기후의 특징이 뚜렷하여 한서의 차가 심하다. 연평균 기온은 2021년 기준 약 13℃ 내외이며, 1월 평균 기온은 약 -2.7℃[최저 -18.7℃], 8월 평균 기온은 약 25.3℃[최고 38.4℃]로 여름과 겨울의 기온차는 30℃ 내외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약 981㎜이며, 여름철 강수량이 1년 강수량의 4분의 3을 차지하여 여름에 강우가 집중되고 겨울에는 최소 강수량을 기록한다.
[연혁]
성남시는 기원전 18년 백제 시조 온조왕이 도읍지로 정한 하남 위례성의 옛터로 추정된다. 한반도의 중앙에 위치한 탓에 고대부터 각국의 주요 쟁탈지였다. 삼국 시대에는 백제·고구려·신라가 차례로 이 지역을 점령했다.
신라 664년(문무왕 4년)에는 한산주(漢山州)로, 757년(경덕왕 16)에는 9주의 하나인 한주(漢州)로 불렸다. 고려 시대의 성남 지역은 940년(태조 23)에 광주(廣州)로 불렸고, 983년(성종 2) 전국에 12목을 설치할 때는 광주목으로 구분되었다. 995년(성종 14)에는 12목제 대신 12절도사제와 10도제를 병행 실시하여 봉국군절도사(奉國軍節度使)로서 관내도에 소속되었다. 1012년(현종 3)에는 안무사(按撫使)를 설치했고, 1018년(현종 9)에는 다시 8목중의 하나인 광주목으로 개편하고 목사를 설치했다. 1310년(충선왕 2)에 전국 주군의 읍호를 고칠 때 지주사로 강등되어 8목에서 제외되었다가, 1356년(공민왕 2)에 다시 광주목으로 복귀되었다.
조선 시대에 광주목은 1395년(태조 4)에 경기좌도에 소속되었고, 1577년(선조 10)에 광주부로 승격되어 부윤이 임명되었다가 1592년 임진왜란 때에는 겸수어부사로 바뀌었다. 1623년(인조 1)에는 유수로 승격했으며, 3년 뒤 남한산성을 대대적으로 개축, 수어청을 설치하면서 남문 아래에 있었던 읍의 치소를 성내로 옮겨 수어사절제를 설치 목사겸방어사로, 1630년(인조 8)에 광주부윤으로 재차 강등되었다. 그 뒤에도 수차례 읍의 승강이 있었다. 1795년(정조 19년)에는 유수겸수어사로 확정 설치되어 19세기 말까지 지속되었다. 근대 개화기로 들어서면서 1895년에 오랜 전통의 행정 구획인 8도 체제에서 23부제로 개편되어 한성부 관할의 광주군이 되었고, 1896년에는 경기도 광주부가 되었다. 1906년에 지방구역의 통폐합 정리를 통해 광주부에서 광주군으로 강등되었으며, 광주군청을 남한산성 내 산성리에서 광주읍 송정리로 이전했다. 또한 관할 세촌면·돌마면·낙생면·대왕면을 총 57개 리로 통폐합했다.
1910년에 「면에 관한 규정」에 의해 중부면이 설치되었으며, 1911년에는 낙생면사무소를 개소하여 낙생면·돌마면·대왕면을 통합 관할하다가 대왕면사무소와 돌마면사무소를 각각 개소했다. 1913년에는 광주군 군내면 소속의 7개 리와 세촌면 소속의 6개 리가 통합되어 광주군 중부면이 되었다. 중부면은 면 중앙에 남한산성의 준령이 있어 그 지역적 여건으로 주민들의 불편이 커지자, 1946년에는 종전 세촌면 관할 구역 6개 리[단대리·수진리·복정리·상대원리·창곡리·탄리]를 관할하는 중부면 직할의 성남출장소를 설치했다. ‘성남’이라는 지명이 공식 행정명으로 처음 사용된 것이 바로 이때이다. 1964년에는 광주군 직할의 성남출장소를 설치하여 인구 및 행정 수요 증가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광주군수 직할 지휘 감독 체제로 전환했다. 1968년에는 이 일대에 서울시 무허가 건물 철거민 정착 주택단지인 광주대단지 조성사업이 시작되었다. 1971년에는 일단의 주택단지 경영사업의 시행으로 광주군 성남출장소 관할 인구가 14만여 명으로 급격히 증가하여 기존 광주군 성남출장소 관내 6개 리와 대왕면·낙생면·돌마면 지역을 관할하는 구역으로 경기도 직할의 성남출장소로 승격되었다.
1973년에 경기도 성남시로 승격되어 18개 동[성남동·중동[현 중앙동]·신흥동·태평동·단대동·은행동·수진동·상대원동·복정동·분당동·이매동·여수동·신촌동·고등동·시흥동·판교동·금곡동·운중동]을 관할하는 시 행정업무를 담당하게 되었으며, 대왕출장소와 낙생출장소가 각각 설치되었다. 1975년에는 돌마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80년에는 28개 동으로 행정동이 분리되었다. 1988년에는 성남시의 급격한 인구 증가와 이에 따른 행정 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돌마출장소·대왕출장소·낙생출장소를 폐지하고 수정출장소와 중원출장소를 설치했다. 1989년에는 수정출장소와 중원출장소를 수정구청과 중원구청으로 승격시켰으며, 1991년에는 분당신도시가 건설되면서 분당출장소를 설치했고, 그 해 9월 분당출장소를 분당구청으로 승격시켰다. 이후 끊임없는 법정동 간 경계 조정과 행정동 분동을 통해 1996년 3개 구 44개 동의 행정동을 설치했으며, 2000년에는 행정동 명칭을 대폭 변경했다. 2007년에는 중원구 도촌동이 하대원동에서 분동되고, 2008년에는 판교동을 판교동과 삼평동으로 분동했다. 2009년에는 다시 판교동을 판교동과 백현동으로 분동했고 2015년에는 정자1동을 정자동과 정자1동으로 분동했으며, 복정동을 복정동과 위례동으로 분동했다. 이로써 성남시는 총 50동으로 구성되었다.
[산업·교통]
성남시는 1960년대 후반 서울의 한강과 청계천 변에 살던 주민들을 집단 이주시키기 위해 건설된 신도시이다. 성남시의 인구 변천을 살펴보면, 1967년에는 1차 산업인구가 91.5%, 2차 산업인구가 0.7%, 3차 산업인구가 7.8%이던 것이 주택단지 조성 이후에는 1979년에 각각 4.6%, 34.7%, 60.7%로 변화되었다. 최근 들어 1차 산업인구는 1% 미만, 2차 산업인구는 약 30%, 3차 산업인구는 약 70%로 급격한 도시화를 이루었다.
2022년 현재 성남시 토지 이용 현황은 임야 62.47㎢[44.1%], 대지 23.90㎢[16.9%], 전 5.32㎢[3.7%], 답 4.68㎢[3.3%]로 나타났다. 농업은 쌀·콩·오이·수박·배추 등의 곡물과 채소, 사과·포도 등 과수가 주요 생산 작물이며, 한우·젖소·닭·돼지 등의 가축 사육도 근교 농업 형태로 행해진다.
수정구 신흥2동에는 제1공단이 있었으나 2007년 대체 부지가 동원동으로 확정된 후 2009년 1공단 철거를 시작하여 2022년 그 자리에 제1공단근린공원이 개장했고, 수정구 단대동에 있던 법조단지가 1공단 부지로 이전하였다. 중원구 상대원1동 일대에는 1968~1976년에 조성한 산업단지 성남하이테크밸리가 위치해 있다. 조성 면적은 약 1,512,886㎡이며, 주요 업종은 식품·섬유·석유화학·기계·금속·전기·전자 등이다. 제2·3산업단지는 중원구에 입지해 있으며, 제2산업단지의 규모가 가장 크다. 성남시는 첨단 지식정보산업을 지역 특화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서울 테헤란로, 양재동·포이동, 성남·분당 지역의 3개 축을 연결하는 벤처벨트를 구축하고 벤처타운과 임대 벤처빌딩을 조성하고 있다. 2001년에 분당구 역세권 전체 81만 평과 중원구 제2공단, 제3공단 54만 평 등 총 135만 평이 벤처기업육성촉진지구로 지정되었다. 구시가지 중원구 상대원동 2·3산업단지 일대는 벤처기업육성촉진지구로 지정된 후 과거 이 지역에 들어섰던 재래식 제조 공장들이 첨단 아파트형 공장들로 바뀌고 있다. 신시가지 분당구에는 다수의 민간 벤처빌딩 외에 SK텔레콤연구소, 삼성연구소, 포스데이타 등의 대기업을 비롯해 GNG 네트웍스 IDC 센터, 전자부품연구원[현 한국전자기술연구원] 등이 자리 잡고 있으며, 야탑동에는 분당테크노파크가, 정자동에는 분당벤처타운이 조성되어 있다. 판교 제2테크노밸리가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 금토동 일원에 면적 430,460㎡ 규모로 조성되고 있다. 조성 기간은 2015년부터 2022년까지이며, 유치 업종은 첨단 제조업, 지식산업, 문화산업, 정보통신산업, 미래 성장동력산업이다.
상업 공간으로는 2021년 현재 백화점 4개, 대형 할인매장 5개, 대규모 점포 6개, 농수산물유통센터 1개, 시장 28개가 입지해 있다. 특히 중원구 성남동에 있는 모란장은 전국에서 제일 큰 5일장으로 매월 4, 9가 포함되는 날짜에 개설되며, 전통 민속 시장의 특징을 갖고 있다. 2021년 현재 은행은 총 160개가 있으며, 의료시설은 2021년 말 현재 종합병원 7개소, 병원 47개소, 의원 약 838여 개소, 치과의원 466개소, 한의원 349개소, 보건소 4개소가 입지해 있다.
성남시는 서울의 남동부에 위치한 까닭에 조선 시대부터 충청도·경상도·전라도 삼남지방과 경기 남부·강원 남부 지역 사람들이 서울로 가기 위해 거치는 남·북 교통로의 중요 관문이었다. 오늘날에는 주요 교통로로서의 입지가 더 중요해졌다. 분당구 판교동에서 十자로 교차하는 경부고속도로와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는 비록 새로 건설된 도로이기는 하지만, 옛 도로 노선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김정호(金正浩)의 『대동지지(大東地志)』에 나오는 조선 시대 10개의 큰 도로 중에서 ‘동래로’ 노선이 오늘날 경부고속도로의 달래내고개[月川, 즉 달이내고개]-험천[동막천]과 거의 일치한다. 동·서 지역에는 조선 시대의 태재·갈마치-판교-학고개-인덕원의 도로가 있었는데, 오늘날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판교-평촌]와 거의 같은 기능을 수행했다. 1989년 이후에는 분당신도시 건설에 따라 지방도와 국도 확장 사업이 이루어져 서울을 잇는 교통이 더욱 편리해졌다. 분당~수서 간 도시고속화도로[분당~장지 간 도시고속화도로], 분당~내곡 간 도시고속화도로, 3번 국도, 23번·57번·308번·389번 등의 지방도와 다수의 시도가 성남시를 통과한다. 또한 도로 교통 수단 외에도 지하철 8호선과 신분당선이 뚫려 성남시의 교통은 매우 발달되어 있다. 2021년 현재 도로 총연장은 약 772.11㎞, 도로 포장률은 100%이다.
[교육·문화]
성남의 최초의 근대 교육기관은 1922년 낙생면에 세워진 2년제 신명강습소[현재 판교동의 낙생초등학교의 전신]이며, 1930년대에는 수진간이학교[성남초등학교 전신], 돌마공립보통학교[돌마초등학교 전신]가 세워졌고, 1940년대에는 왕남국민학교가, 1950년대에는 분당국민학교·신기국민학교가 차례로 세워졌다. 인구가 급증한 1970년대 이후에는 학교가 많이 설립되어 2021년 10월 기준 유치원 124개교, 초등학교 73개교, 중학교 47개교, 고등학교 36개교, 특수학교 2개교가 있다. 고등교육기관으로는 가천대학교 글로벌캠퍼스, 을지대학교 성남캠퍼스, 신구대학교, 한국폴리텍대학 성남캠퍼스, 동서울대학 등이 있다. 이밖에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이 있다. 연구기관으로는 국학 연구를 이끄는 한국학중앙연구원과 현대사회연구소, 세종연구소 등이 있다.
문화시설로는 경기성남교육도서관, 성남시 중앙도서관, 성남YMCA, 성남문화원, 토지박물관이 있다. 각 구별로는 분당문화정보센터·수정문화정보센터·중원문화정보센터가 있다. 그 외에 16개의 공연장과 64개의 영화관을 보유하고 있으며, 체육시설로 성남종합운동장, 탄천종합운동장 등이 있다. 2022년 현재 공공도서관은 총 17개소가 있으며, 경기성남교육도서관은 373,585권의 장서를, 분당도서관은 331,316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다. 성남문화원은 지역문화의 발굴과 보존, 향토문화 연구, 각종 문화예술 행사를 열어 주민들과 소통하며 문화생활을 이끌고 있다.
성남시의 공원은 대표적으로 남한산성도립공원이 있으며, 곳곳에 자리한 희망대공원, 단대공원, 율동공원, 중앙공원, 황송공원, 양지공원, 남한산성 유원지 등이 시민들에게 최고의 휴식처를 제공한다. 2021년 현재 도시자연공원 2개, 근린공원 69개, 어린이공원139개, 묘지공원이 1개 등 총 287개의 공원이 지정되어 있다.
성남을 대표하는 지역 문화예술 행사로는 성남예술제가 있다. 매년 10월 개최되며, 매년 정월 대보름에 맞추어 쌍용거줄다리기 재연 행사를 가진다. 예로부터 성남시 판교 지역에서 정월대보름에 풍년을 기원하고 액운을 떨치기 위해 행해졌던 민속놀이로, 1989년 이후 중단되었다가 2001년 지역 주민들이 널다리 쌍용거줄다리기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되살렸다.
성남시에는 『조선왕조실록 봉모당본』을 비롯해 『통감속편』, 『동의보감』, 『월인천강지곡 권상』,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 등 국보 5점이 있다. 또한 『대방광불화엄경소』를 포함하여 보물 30점 등 국가유산을 비롯해 매듭장, 가야금 산조, 태평무 분야의 국가무형유산 보유자 3인이 있다. 봉국사 대광명전을 포함하여 지방 지정 문화유산[유형문화유산 12, 무형유산 3, 기념물 6]과 3점의 문화유산자료가 있다. 남한산성을 비롯해 시 곳곳에는 많은 문화유산이 흩어져 있어 문화 역사 도시 성남을 보존하고 향유하려는 많은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