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30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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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伽倻琴散調-倂唱 |
이칭/별칭 | 가야금산조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윤종준 |
[정의]
경기도 성남시에서 장구 반주를 곁들여 가야금으로 연주하는 기악독주곡과 가야금을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병창.
[개설]
가야금 산조는 조선 시대 연주되던 심방곡(心方曲)을 바탕으로 19세기 후반 부터 평조[우조]와 계면조를 구별하면서 산조형식이 갖추어졌고, 현재까지 약 다섯 세대를 거치며 변화 발전해 왔다. 현재 가야금 산조와 병창을 묶어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구성 및 형식]
느린 장단부터 빠른 장단까지 이를 점차적으로 연속시켜 산조의 틀을 구성하는 장단연속체의 구성 방법은 각 유파마다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가야금산조는 진양-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로 연결되는 기본 구조에다 휘모리나 단모리 같은 빠른 악장이 추가되며 엇모리, 굿거리 같은 중간 빠르기의 장단이 추가되기도 한다.
[내용]
가야금산조는 느린 진양조, 보통 빠른 중모리, 조금 빠른 중중모리, 빠른 자진모리, 매우빠른 휘모리의 장단으로 연주된다. 여기에다 우람한 느낌의 우조(羽調), 화평한 느낌의 평조(平調), 슬픈 느낌의 계면조(界面調), 경쾌한 느낌의 경드름조 등 조(調)의 변화를 주면서 희노애락의 감정을 표현한다.
19세기 말 김창조가 가야금산조를 연주하면서 유명해졌고, 한숙구(韓淑求)와 박팔괘가 가야금산조를 짜서 연주하였다. 이들의 뒤를 이어 한성기, 강태홍, 최옥산, 박상근과 같은 명인들이 나왔다. 1968년 가야금산조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한숙구의 계통을 이은 김윤덕과 박팔괘, 박상근의 계통을 이은 성금연, 김창조와 한성기의 계통을 이은 김죽파가 보유자로 지정되었다가 작고하거나 해외로 이주하면서 현재는 이영희(李英熙)가 보유자로 지정돼 있다.
국가무형문화재의 명칭은 공식적으로 ‘가야금산조 및 병창’이다. 병창(倂唱)은 가야금을 연주하면서 노래를 하는 즉, 가야금과 성악을 함께하는 연주 형태이다.
[현황]
가야금산조 보유자는 최근까지 안숙선, 이영희 등이 보유하고 있었는데, 안숙선(安淑善)이 최근 2022년 9월 6일자로 국가유형문화재 판소리[춘향가] 보유자가 되면서 가야금산조 및 병창 보유자는 인정 해제 되었다.
이영희는 1938년 전북 군산에서 출생하여 1951년 김향초 문하에서 무용을 사사하였고 1955년 이운조에게서 가야금산조를 배웠다. 1958년 이화여대 입학 후 운현궁에서 가야금을 가르치던 김윤덕 문하에 들어가 배우고, 1960년 한일섭 문하에서 아쟁을 사사했다. 1962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국악예술학교[현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성금연과 함동정월, 김죽파에게서 가야금산조, 신쾌동에게서 거문고산조를, 정권진에게서 판소리를 배웠다. 1968년 멕시코올림픽, 1972년 뮌헨올림픽 등에서 선배 명인·명창들과 공연에 참여했다. 스승 김윤덕이 별세한 후 1991년 5월 1일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박귀희·김소희 등의 후원에 힘입어 2000년부터 12년 동안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2022년 4월에는 이영희 자신이 살던 집을 포함한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472~474번지 부지 총 5474㎡를 국가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건립 부지로 기부채납했다. 문화재청은 이 부지에 실내 공연장과 교육·체험 공간을 갖춘 국가무형문화재 전수 교육관을 세울 계획이다.
최근에는 가야금산조와 병창이 분리되는 추세이다.
[의의와 평가]
기악 산조들 가운데 가야금산조가 가장 먼저 발달했고 그 유파도 가장 많다. 가야금산조는 음악의 구조적 변화가 다양하며 , 빠른 악장에서 정교하고 세밀한 기교가 두드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