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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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廣州邑誌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최종윤 |
[정의]
조선시대에 간행되었던 광주에 관련된 읍지.
[개설]
부·목·군·현 등의 지방 각 읍을 단위로 하여 작성된 지리지로서, 방리·도로·형승·풍속·능침·단묘·역원·군병·진공 등 해당 읍과 관련된 여러 사안에 대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서지적 상황]
경기도의 경우 19세기 중엽부터 다수의 읍지가 작성되었으며, 『광주읍지』의 경우에도 19세기에 작성된 3권의 읍지가 전해오고 있다.
[구성/내용]
1871년에 작성된 『광주읍지』는 건치연혁(建置沿革)에서 책판까지의 항목은 『여지도서』 유형과 큰 차이가 없고, 결총 이하 말미의 선생안까지는 새로 추가된 부분으로 초고가 되는 읍지가 있었던 듯 열녀 항목에 ‘신증(新增)’이라는 표시가 있다. 전체적으로는 인물 항목이 상세하며, 공해(公廨) 항목의 일장각(日長閣) 부분에서 순조 때의 사실이 수록되어 있으며, 화포과(火砲科) 등에서는 대원군 집권기에 집중적으로 설치된 포군과 관련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두 번째로 간행된 『광주읍지』는 1899년에 광주부에서 만들어 올린 읍지로 건치연혁에서 책판까지의 전반부와 선생안의 후반부로 구별된다. 전반부는 1871년에 작성된 광주읍지의 건치연혁에서 책판까지의 항목과 동일한 내용이지만, 호구 수치가 다르며, 능침(陵寢)과 단묘(壇廟) 그리고 누정(樓亭) 항목에서 부분적으로 내용이 보완되어 있다. 그리고 후반부의 선생안은 1871년에 작성된 읍지에서 명단만을 수록한 것과는 달리 간지·도임·체임 연월이 구체적으로 표시되어 있다.
세 번째 간행되었던 읍지는 18세기 말의 사정이 반영되어 있는 읍지로서, 방리에서 책판까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1871년에 작성된 읍지의 결총 이전 부분과 동일하다. 하지만 공해, 창고 등의 항목에서는 1871년에 작성된 읍지의 내용과 차이가 나타나고 있으며, 순조 때 만들어진 일장각과 좌승당 등의 건물이 빠져 있는 점과 정조 때의 사례가 실려 있는 점을 고려할 때 『경기지』 편찬시기인 1842~1843년과 비슷한 시기에 작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