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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0325
한자 趙溫賜牌王旨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권오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2년 7월 28일연표보기 - 조온 사패왕지 보물 제1135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조온 사패왕지 문화재 지정번호 삭제
성격 왕지(王旨)
관련인물 이방원|조온|이문화
발급자 태조
수급자 조온
발급일시 1399년(태조 7년)연표보기
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처 주소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 지도보기
문화재 지정번호 보물

[정의]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 때 공을 세운 정사공신 한천군(漢川君) 조온에게 발급된 왕지(王旨).

[개설]

조온 사패왕지는 조선 태조 7년(1398) 제1차 왕자의 난에 공을 세운 조온[1347∼1417]에게 공전(功田)을 내린 문서이다.

[제작 발급 경위]

제1차 왕자의 난은 정종을 잇는 왕위 계승권을 놓고 태조의 계비인 강씨(康氏)의 소생 방석(芳碩) 일파와 태조의 초비(初妃)인 한씨(韓氏)의 소생 방원(芳遠) 간에 벌어진 권력 다툼이었다. 그 결과 방원 일파가 승리하고, 이 과정에서 공로가 큰 29명에게 공신의 지위가 내려졌다. 공신은 다시 그들의 공헌 정도에 따라 나뉘었는데, 1등 공신이 12명, 2등 공신이 17명이었다.

조온(趙溫)[1347-1417]은 이때 이등 공신에 책봉되었다. 특전과 포상의 내용은 공신녹권(功臣錄券)에 명시되어 있고, 이 왕지는 녹권에 기재된 공전(功田) 150결의 위치와 수확 규모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조온은 이에 앞서 조선 건국 때 공을 세워 개국공신(開國功臣) 2등에 포상되고 한천군에 책봉된 바 있다. 그는 제2차 왕자의 난 때도 방간(芳幹) 일파의 군사를 몰아낸 공로로 좌명공신(佐命功臣) 4등에 포상되고 (한천)부원군에 봉해졌다.

[형태]

조온 사패왕지에는 왕지의 내용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국왕의 인장 3개가 확인된다. 인장의 크기는 11.7㎝×11.7㎝이고, 「왕지(王旨)」,「한천군조온(漢川君趙溫)」및 문말(文末)에 각각 주인(朱印)하였으며, 국왕의 명령을 받들어 문서를 발급한 도승지 이문화(李文和)가 서명하였다.

[구성/내용]

조온 사패왕지의 내용에 따르면, 조온에게 하사된 공전은 양주, 견주, 교하, 개성, 광주, 연안, 이천, 강화, 서원, 마전, 수원 등에 위치한 전답 150결 38부이다.

[현황]

조온 사패왕지는 1992년 7월 28일 보물 제1135호에 지정되었으며,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가 삭제되었다. 2024년 기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조온 사패왕지는 정사공신에게 하사하는 공전(功田)의 위치와 규모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고문서로서는 최초로 발견된 것이다. 조선 초기의 역사 연구는 물론이며 고문서 연구에 있어서 귀중한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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