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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0456
한자 權諰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금곡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홍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604년연표보기
몰년 1672년연표보기
본관 안동
대표관직 한성부우윤

[정의]

조선 후기 성남 지역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가계]

본관은 안동, 자는 사성(思誠), 호는 탄옹(炭翁). 아버지는 좌랑 권득기(權得己)이고, 어머니는 전주이씨로 도정(都正) 이첨(李瞻)의 딸이다.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아홉 살 때 시를 지었으며, 15세에 이기지설과 사칠지변(四七之辨)에 정통하였다. 1636년(인조 14) 대군사부에 임명된 것을 비롯하여, 선릉참봉과 세자시강원의 벼슬이 내려졌으나 나가지 않았다. 1649년 효종이 즉위한 후 공조좌랑으로 벼슬길에 나갔으며, 경상도사 등을 역임하고, 그 뒤 집의, 진선(進善) 등을 거쳐 1658년(효종 9) 승지에 임명되었다. 이어 찬선(贊善)에 오르고, 1659년 현종이 즉위한 뒤에 한성부우윤에 임명되었다. 이듬해 예송문제가 일어나자 서인의 양송과 대립하는 윤선도 지지 상소를 올렸다가 파직되어 낙향하던 중 광주(廣州)의 선영에 머물러 살았다. 그 후 다시 공주[지금의 대전]으로 내려갔고, 1668년 송준길(宋浚吉)의 주청으로 한성부 좌윤(左尹)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학문과 사상]

송시열(宋時烈)과 같은 기호학파로서 예론에 밝았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탄옹집』 7책이 있다.

[묘소]

묘소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금곡동에 있다.

[상훈과 추모]

사후 좌참찬에 추증되었으며, 예관(禮官)을 보내 치제케 하였다. 대전의 도산서원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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