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4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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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土洞玉磬山銘-淸溪銘岩刻字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산64-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충배 |
성격 | 암각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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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연도 | 미상 |
관련인물 | 남공철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산64-2 |
[정의]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에 있는 바위에 글씨를 새긴 암각자(岩刻字) 유적.
[개설]
금토동 산64-2번지 일대는 1963년 군사보호구역이 된 이후 기존의 건물 등이 대부분 철거되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게 될 지역이었다. 금토동 옥경산명·청계명 암각자는 개발 사업으로 인하여 훼손 혹은 멸실될 수 있는 문화유산과 문화유적을 사전에 조사·확인하여 국가유산을 적극 보호하고자 실시된 2002년 지표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건립경위]
바위에 새겨진 ‘청계(淸溪)’라는 이름은 바위가 있는 골짜기의 주산인 청계산(淸溪山)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옥경산(玉磬山)’ 암각자의 경우 조선 후기의 문장가이자 정치가인 금릉 남공철(南公轍)이 근처에 거주하였고, 그가 말년에 기거하였던 옥경산방(玉磬山房)에서 『귀은당집(歸恩堂集)』이 간행되었으며, 인근 청계산 능안골 북쪽에 남공철의 묘역과, 옥경산장(玉磬山莊) 터가 남아 있는 점으로 볼 때 남공철이 새긴 것이거나 그와 관련된 유적일 가능성이 높다.
[위치]
암각자는 금토동 산64-2번지 일대의 군사 시설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개천을 따라 약 100여m 올라가면 두 개의 바위에 각각 새겨져 있다.
[형태]
암각자는 두 개의 바위에 하나는 ‘옥경산(玉磬山)’, 다른 하나는 ‘청계(淸溪)’라고 새겨져 있다. ‘玉磬山’이라고 새겨진 곳은 바위의 측면으로 247×140㎝ 정도의 다듬어진 면이며, 글자의 크기는 12.5×18㎝ 정도이다. ‘淸溪’라는 글자는 바위의 바닥에 새겨져 있는데, 글자의 크기는 16×23㎝ 정도이다.
[의의와 평가]
금토동의 조선시대 후기 각자(刻字) 조사를 통하여 금석학 연구의 기초 자료를 수집하였으며, 성남시 지역의 지난 역사를 세부적으로 조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