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거|집성지 | 남원윤씨 세거지 -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분당구 백현동 아랫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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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윤위를 시조로 하는 경기도 성남시의 세거 성씨.
[유래]
윤관의 증손자인 윤위(尹威)가 남원백에 봉하여지면서 남원윤씨의 시조가 되었다.
[인물]
병자호란 때 윤계(尹棨), 윤집(尹集) 형제가 유명하다. 윤계는 인조(仁祖) 때 남양부사로 재직하였는데,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근왕병을 모집하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가다가 포로가 되어 참살당하였다. 윤집은 병자호란 때 화의를 반대하여 청에 끌려가 죽은 삼학사의 한 사람이다. 윤극신(尹克新)[1527~1589][1527~1589]의 큰아들 윤엽(尹曄)[1545~1604]은 도승지, 둘째 아들 윤돈(尹暾)[1551~1612]은 선조(宣祖) 때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판서, 공조판서, 예조판서와 강원, 충청도 관찰사, 도승지를 역임하였고, 시호는 효정(孝貞)이다.
윤돈의 딸 남원윤씨는 오백령의 아들 오횡(吳竑)[1606~1626]에게 시집을 갔는데, 오횡이 병으로 일찍 죽자 따라 죽어서 열녀로 정려되었다. 해남윤씨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가 사위이다. 후손 중 윤재옥(尹在鋈)[1876~1971]은 개항기 의병을 일으킨 애국지사이며, 90세 때 판교기로회 한시집에 작품을 남기기도 했으며 96세의 수를 누렸다.
[세거지]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에는 남원윤씨의 세거지가 있다. 윤징(尹澄)의 아들 윤극신이 죽자 선조의 명에 따라 안동권씨의 산에 장사지냈는데, 이에 권씨 측에서 금토동 일대를 남원윤씨에게 주게 되었다고 한다.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아랫말에도 세거지를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