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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면사무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0654
한자 大旺面事務所
분야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기도 광주군 대왕면 세곡리
시대 근대/근대,현대/현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관공서
설립연도/일시 1911년 8월 29일연표보기

[정의]

경기도 광주군 대왕면에 있었던 행정기관.

[개설]

1911년 개소한 대왕면사무소는 일제하에서는 부역과 세금을 징수하는 기구였다. 3.1운동을 겪은 제국주의 일본은 소위 ‘문화정치’를 표방하며 한국 국민에 대해 유화 정책을 펴는 과정에서 지방 행정 기구와 교육 기관을 확대하였다. 이 과정에서 1928년 4월 1일 세곡리에 대왕면사무소를 신축 이전하며 면 행정의 정식 출발을 하게 되었다.

[설립목적]

대왕면의 행정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서 설치되었다.

[변천]

조선 후기의 대왕면등자리, 신곡리, 세천리 등을 포괄하는 17개 동리로 구성되었고, 1840년경에 총 호수가 772호, 주민의 수는 남자 1,612명, 여자 2,159명에 달하였다. 1906년 지방 제도의 개편에 따라 대왕면은 17리가 21개 동리로 증가하였는데 1개 동리 당 평균 호수는 돌마면이 247호인 반면에 대왕면은 46호로 나타났다.

1911년 3월 판교리에 개소한 낙생면사무소낙생면, 돌마면, 대왕면을 통합하여 관할하다가, 같은 해 8월 29일 대왕면 상적리대왕면사무소가 개소되면서 대왕면의 독자적 행정 체계를 구축하였다. 1917년 면제시행규칙에 따라 대왕면출장소를 율현리(栗峴里)에 설치하였고, 이어 1928년에는 세곡리[현재의 서울시 강남구 세곡동]에 대왕면사무소를 신축·이전하였다.

1980년대에 대왕면사무소신촌동, 오야동, 고등동, 심곡동, 상적동, 금토동, 사송동, 시흥동, 둔전동 등 9개 동을 관할하였으며, 당시 총 가구 수는 2,449가구, 총 인구는 11,009명이었다.

[주요사업과 업무]

대왕면 지역의 주민 편의를 위한 행정 업무를 담당했다.

[활동사항]

대왕면사무소가 역사적으로 주목된 것은 3.1 만세시위운동의 과정에서 투쟁의 대상지로 부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1919년 3월 대왕면의 만세 시위를 주도한 이시종은 "오늘까지는 이 면사무소에서 일본 일을 하고 있었으나, 이제 조선이 독립하면 부역, 세금 등이 필요 없게 될 것이다." 라는 자신의 소견을 발표하였다. 일제하 대왕면사무소는 부역과 세금을 징수하는 기구로 인식되어 투쟁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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