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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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坪洞-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575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충배 |
성격 | 선돌|입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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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연도 | 청동기 시대 |
높이 | 113㎝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575 |
[정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에 있었던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선돌.
[개설]
삼평동 선돌은 성남시에서 부분적이고 산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던 문화유산 조사 결과를 종합·정리하여 향후 국토 이용 계획과 도시 계획 수립하고, 각종 산업 시설, 택지 개발, 사회 간접 시설 확충에 따른 개발 사업으로부터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기초 자료로 활용할 목적으로 2001년 토지박물관에서 수행한 지표조사에서 확인되었다.
[위치]
삼평동 선돌은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성내미마을 안쪽 도로변 경작지에 남향하여 서 있었다. 주위로는 해발 100~150여m 내외의 야트막한 산지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데, 선돌이 있는 경작지는 배후의 산지로부터 완만하게 뻗어 내려온 가지능선의 끝부분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인근의 삼평동 야산 기슭에서 민무늬 토기 조각 등이 발견된 예가 있어 청동기시대의 유적일 가능성을 높여주었다.
주민의 전언에 따르면 20여 년 전 현재 선돌이 있는 밭 가장자리의 실개천에 걸쳐놓고 다리로 썼다가 밭주인이 거듭해서 화를 입어 무당을 불러 점을 쳤더니 이 돌을 원래 상태로 세우라 하여 다시 세워 두었다고 한다. 2001년까지 놓여있던 장소에 하수구가 생기면서 밭의 반대편 가장자리로 옮겨놓았다.
[형태]
앞뒷면이 편평한 판석 형태이며 윗부분이 반원형을 이루고 있었다. 재질은 육안으로 볼 때 화강편마암으로 여겨지며, 규모는 높이 113㎝, 폭 70㎝, 두께 18㎝이었다. 이러한 판석 형태의 선돌은 충북 보은 지산리와 진천 월산리 등지에서 보고된 예가 있다.
[현황]
선돌이 위치하던 삼평동 성내미마을이 판교신도시로 개발되면서 삼평동 선돌은 없어졌다.
[의의와 평가]
선돌은 대체로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에 길쭉한 자연석이나 그 일부를 가공한 큰 돌을 어떤 믿음의 대상물이나 특수 목적을 가지고 세운 돌기둥 유적으로 이해되고 있다. 뚜렷한 자료와 증거를 제시할 수 없기 때문에 많은 비판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충남 보령 삼계리와 청양 지곡리, 전남 곡성 영암리와 순천 선돌리, 광주광역시 충효동 등지에서 확인되듯이 고인돌 등 다른 종류의 거석(巨石) 유적과 직·간접적으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거석문화(巨石文化)의 하나로 보고 있다.
그러나 선돌이 갖는 단순한 구조의 특성 때문에 그에 관한 고고학적인 발굴조사는 거의 행해지지 않았고, 다만 재래신앙과 관련하여 민속학적인 연구가 주로 이루어졌다. 현재 전해지는 선돌에는 제사 신앙이 수반되어 있어 마을 주민의 신앙 대상으로 신격화되기도 하고, 또 특이한 전설 등을 지니고 있어 마을 주민의 절대 불가침의 대상으로 보호받기도 한다. 이러한 형태의 선돌이 이 지역 일대에서 조사됨으로써 성남 지역의 문화상 정립을 위한 새로운 자료의 확인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