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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1325
한자 宋駿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성남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홍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564년연표보기
몰년 1643년연표보기
본관 여산(礪山)
대표관직 대사간

[정의]

조선 전기 성남 지역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가계]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진보(晉甫), 호는 성암(省菴). 아버지는 장령(掌令) 송승희(宋承禧)이며, 어머니는 창원황씨(昌原黃氏)로 서윤(庶尹) 황인(黃璘)의 딸이다. 이조판서 송언신(宋言愼)의 양아들로, 명종 때 부제학을 지낸 성리학자 류희춘(柳希春)이 사위이다.

[활동사항]

1585년(선조 18) 생원시에 입격하고, 1594년(선조 27) 별시(別試)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이듬해 사간원 정언(正言)으로 임명된 뒤 병조정랑(兵曹正郞), 수찬(修撰), 교리(校理) 등을 지냈다. 1597년 장령(掌令), 사성(司成), 사간(司諫) 등에 제수되고, 다음해 홍문관 직제학(直提學)이 되어 왕에게 『중용』을 강론하였다. 1599년 호조참의(戶曹參議)가 된 뒤 병조(兵曹), 이조(吏曹), 형조(刑曹) 참의(參議) 등 육조의 요직을 역임하고, 대사성(大司成), 부제학(副提學) 등을 지냈다.

1603년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상사 박이장(朴而章)과 함께 명나라에 가서 황제의 명을 받아 유구국(琉球國)[현재의 일본 오키나와]의 국정을 살피고 돌아와서 상전(賞典)과 옥권(玉圈) 1부, 공로를 치하한 시 1절을 하사받았다. 1606년 대사간이 되었으나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였고, 1608년 간신들의 무고로 유영경(柳永慶) 등과 함께 관직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인조반정 이후 다시 복직되어 1623년(인조 1) 이조, 병조, 형조 등의 당상으로 요직을 거쳐 1626년 공충도관찰사(公忠道觀察使)에 제수되었다가 사직하고 관직에서 물러났다. 모친상을 시작으로 다섯 아들이 연이어 요절하는 참화를 당하여 광주 반곡(盤谷)에 은거하였다.

[저술 및 작품]

시문에 뛰어났으며, 저서로는 『성암유고(省菴遺稿)』, 『여양세고(礪良世稿)』가 있다. 아버지 송언신과 함께 저술한 『여양세고(礪良世稿)』와 영정이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에 살고 있는 후손 송주의(宋周義)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

[묘소]

송준의 묘는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에 있었으나 성남시 개발로 1970년 8월 여주군 가남면 심성리 병목안으로 이장되었다. 행장은 임상원이 짓고 신도비명은 윤순이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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