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3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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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南城東墩臺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산193-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주홍 |
성격 | 돈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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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연도 | 1753년(영조 28) |
관련인물 | 이기진 |
높이 | 4m |
길이 | 4.3m |
둘레 | 134m |
면적 | 1.381㎡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산193-1 |
[정의]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진영.
[개설]
검단산 정상부에 축조한 2곳의 돈대(墩臺) 가운데 동쪽에 있는 것을 가리킨다. 돈대는 성을 쌓을 여건은 안 되지만 전략적인 요충지에 설치하여 적의 침입이나 정찰·탐색 활동을 사전에 방어하고 관찰할 목적으로 쌓은 소규모의 방어 시설물이다.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군대가 이곳을 점령하여 대포 7~8문을 설치해 놓았던 곳이기도 하다.
[건립경위]
1752년(영조 28) 광주유수 이기진(李箕鎭)의 건의로 이듬해 검단산에 축조하였다. 여러 차례 개축한 것으로 보인다.
[위치]
검단산 정상은 동서 방향으로 3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서쪽 봉우리가 가장 높고 중앙의 봉우리가 다음으로 높다. 신남성 동돈대는 중앙의 봉우리에 설치되어 있다.
[형태]
신남성 동돈대는 정상부를 편평하게 다듬은 뒤 원형에 가깝게 축조하였는데, 전체 둘레는 134m, 면적은 1.381㎡이다. 돈대는 너비 약 430㎝로 띠를 두르듯 원형으로 구축하였으며, 성벽 높이는 평균 4m 안팎으로 안쪽에 1m 정도의 단(壇)을 조성하였다. 돈대에서는 남옹성을 비롯하여 수어장대 등 남한산성의 남쪽 부분이 한 눈에 조망되지만 성 내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성돌은 본래 두께 40~60㎝, 너비 60~100㎝의 대형 석재를 사용하였는데, 복원 과정에서 상당 부분 보수자재로 대체되었다.
성문은 돈대의 서쪽에 출입구의 윗부분을 둥글게 틀어 무지개 모양으로 만든 홍예문(紅霓門)으로 구축되어 있는데, 원래의 문이 아니라 돈대 내부에 송신탑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차량이 드나들 수 있도록 확장하여 신축한 것이다. 15매의 홍예돌로 구축된 홍예문은 너비 454㎝, 높이 335㎝이고, 측벽에 4단의 무사석을 쌓았다. 돈대의 정상부에는 여장이나 별다른 시설은 없으며, 성벽에는 돈대 내부의 물을 밖으로 배출할 수 있도록 남쪽과 북동쪽에 2개의 평거식(平据式) 수구(水口)를 조성하였다. 하나는 바닥에서 180㎝ 높이에 설치된 폭 40㎝의 장방형 수구이고, 다른 하나는 바닥에서 110㎝의 높이에 설치된 폭 35m, 높이 20㎝의 수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