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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1676
한자 李克墩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성남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임민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별
생년 1435년연표보기
몰년 1503년연표보기
본관 광주(廣州)
사고(士高)
사봉(四峯)
출신지 서울 향교동
시호 익평(翼平)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사고(士高), 호는 사봉(四峯)이다. 서울 향교동에서 출생했다. 이집(李集)의 증손이며, 이지직(李之直)의 손자이다. 우의정 이인손(李仁孫)의 넷째아들로, 어머니는 노신(盧信)의 딸이다.

[활동]

1457년(세조 3) 친시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였다. 전농시주부, 승문원 정자, 사헌부감찰, 필선, 집의 등을 역임한 뒤, 1468년(세조 14) 중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예조참의에 올랐다. 이어 한성부우윤, 사헌부대사헌을 거쳐 1470년에 형조참판이 되었다. 이듬해에 성종 추대에 가담한 공로로 좌리공신 4등에 책록되어 광원군(廣原君)에 봉해졌다. 그리고 동지관사로서『세조실록』편수관으로 참여하였다. 1474년(성종 5)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온 후, 1476년에는 주청사, 1484년에는 정조사로 또 다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87년(성종 18) 한성부판윤에 제수되었으며, 경상도관찰사, 이조판서 겸지의금부사, 병조판서, 호조판서, 좌찬성, 세자우빈객을 역임하였다. 1485년에는 서거정 등과 함께『동국통감(東國通鑑)』을 편찬하였고, 경상도 관찰사 재직시에는 『유양잡조(酉陽雜俎)』, 『보한집(補閑集)』 등의 책을 간행해 바쳤다. 1495년(연산군 1) 우찬성으로서 지관사가 되어 『성종실록』을 편찬하였다. 전례에 매우 밝고 사장에 능한 훈구파의 거물로서 성종 이후 등장하기 시작한 사림파와의 반목이 심하였다.

1499년(연산군 4) 실록청당상관이 되어 『성종실록』을 편찬할 때, 사림파의 김일손이 스승인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弔義帝文)」과 훈구파의 비위 사실을 사초에 올린 것을 발견하고, 「조의제문」이 세조의 즉위를 찬탈로 비난한 것이라 하여 유자광과 함께 연산군을 충동질하여 사림파를 제거하는 사화를 일으켰다. 그러나 그는 어세겸 등과 함께 사초를 보고도 곧바로 왕에게 보이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북청에 유배, 파직을 당하였다가 다시 봉호를 회복시켜 주었다. 그뒤 1501년(연산군 7) 병조판서가 되었다가 1503년에 69세의 나이로 죽었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2.10.25 [활동사항] 관직명 표기 수정 <변경 전> 경상도관찰사 <변경 후> 경상도 관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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