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8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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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宗鱗 |
영어공식명칭 | Lee Jong-rin |
이칭/별칭 | 경인(景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왕족·호족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권오영 |
[정의]
조선 전기 성남 출신의 종친.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인(景仁)이다. 아버지는 중종의 다섯째 아들인 덕양군(德陽君) 이기(李岐)이다.
[활동사항]
명종 대에 외조부봉사(外祖父奉祀) 문제로 논의의 쟁점을 제공한 장본인이다. 일찍이 태어나자마자 외조부 권찬(權纘)의 양자격으로 입양되었다. 외조부가 본부인과 첩실에게서 모두 아들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권찬은 이종린을 마치 아들처럼 길렀고, 이에 이종린은 외조부가 죽자 최질(衰絰)을 입고자 하였다. 이종린의 아버지 이기는 이 문제를 명종에게 정식으로 건의하였고, 삼공(三公)의 논의를 통해 허락되었다. 그러나 사헌부에선 이종린이 엄연히 덕양군의 장자인데 외손이 외조부를 위해 봉사하는 것은 인륜을 저버리는 행위라고 반박하였다. 결국 이종린의 외조부에 대한 봉사는 허락되었다.
선조 대에는 이종린이 당시 남아있는 왕실 직계혈통의 원로라는 점 때문에 강한 견제를 받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사헌부는 이종린의 아들 귀천군이 그의 아버지 이종린과 함께 권력을 도모하였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었다. 또한 대사간 정지연(鄭芝衍) 등은 이종린이 품계가 높은 종친으로 무고하게 양인을 노비로 가두어둔 것이 60여 명에 해당된다는 점을 들어 압량률(壓良律)의 중벌로 다스릴 것을 건의하였다. 그러나 두 사건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오위도총부부총관을 지냈으며, 풍산군(豊山君)에 봉해졌다.
[묘소]
묘는 하산운동에 있다. 궁내동은 전주이씨의 세거지이다. 궁내동(宮內洞)은 이름에서 보여지듯 덕양군의 묘를 관리하기 위해 궁이 세워진 데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뒤 이곳에는 덕양군의 10대손인 이주신(李周新)과 그 후손이 줄곧 세거해온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