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9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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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弘老 |
영어공식명칭 | Lee Hong-ro |
이칭/별칭 | 유보(裕甫),판교(板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홍갑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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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 남 |
생년 | 1560년 |
몰년 | 1612년 |
본관 | 연안(延安) |
대표관직 | 병조좌랑 |
제향 | 시향일 10월 13일 |
묘지 | 성남시 분당구 하산운동 산14번지 |
[정의]
조선 전기 성남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유보(裕甫), 호는 판교(板橋)이다. 이곤(李坤)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공승(李公升)이고, 아버지는 군수 이간(李侃)이며, 어머니는 김문서(金文瑞)의 딸이다. 장인은 증 좌의정 기응세(奇應世)이다.
[활동사항]
1579년(선조 12) 진사시에 합격한 뒤, 1583년(선조 16) 정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병조좌랑으로서 왕을 호종하다가 거취를 마음대로 한다는 것과 이산해(李山海)의 조아(爪牙)란 이유로 대간의 탄핵을 받았으며, 뒤에 함경도 종사관(從事官)을 지내고 다시 선전관이 되었다.
1606년(선조 39) 충주목사로 있었으나, 다시 사헌부에서 전에 의주(義州)에서 소를 올린 것이 탄로되어 성혼(成渾)을 모함할 뿐만 아니라 음모가 있고, 이간하려는 계책이 많다는 이유로 탄핵되어 강계(江界)로 귀양갔다.
이후 재차 탄핵을 받아 제주도 대정현(大靜縣)에 위리안치되었다가 풀려나와 경기도관찰사가 되었으나, 1608년 유영경(柳永慶) 등 소북의 일파로 몰려 다시 제주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사사되었으며, 1612년 부관참시되었다.
[상훈과 추모]
인조반정으로 신원되어 이조참판(吏曹參判)으로 증직되었다.
[묘소]
묘는 성남시 분당구 하산운동 산14번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