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9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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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喜寅 |
영어음역 | Lee Hee-i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홍갑 |
성격 | 무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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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 남 |
생년 | 1626년(인조 4) |
몰년 | 1678년(숙종 4) |
본관 | 덕수(德水) |
대표관직 | 영흥부사(永興府使) |
묘지 | 성남 수정구 고등동 덕수이씨 선영 |
[정의]
조선 후기 성남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덕수(德水). 성남시 수정구 고등동 등자리 출신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 정언을 지낸 이경안(李景顔)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이륙(李稑)이며, 어머니는 조경기(趙慶起)의 딸이다. 4남 1녀 중 장남으로 이희환(李喜煥), 강동현령 이희익(李喜益), 강원도 관찰사 이희룡(李喜龍)등이 그 동생이다. 부인은 권한(權垾)의 딸이다.
[활동사항]
음직(蔭職)으로 벼슬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거치고, 현종 원년(1660) 오위장(五衛將)으로 궁궐숙위를 담당하였다. 41세 때인 현종 7년(1666) 무과(武科)에 급제하였다. 그 이듬해 3월 외직으로 나가 평해군수(平海郡守)[경북 울진]에 부임하였고 현종 12년(1671) 11월 다시 영흥부사(永興府使)에 제수되었으며, 임기를 마치고 내직으로 들어와 겸사복장(兼司僕將)으로 궁궐경비와 국왕호위 임무를 수행중 연릉천장과 관련된 옥사에 연루되어 파직되었다. 숙종 원년(1675) 홍주영장(洪州營將)에 임명되었고 그 이듬해 오위장(五衛將)으로 보임 중 죽었다.
[묘소]
묘는 성남시 수정구 고등동 덕수이씨 선영에 있다. 덕수이씨가 등자리에 살게 된 것은 조선초기 풍성군(豊城君) 이의번(李宜蕃)이 죽은 후 국가에서 사패지(賜牌地:외교와 국방 등에서 큰 공을 세운 왕족이나 벼슬아치에게 임금이 내려준 논밭)로 내려진 것에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