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9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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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喜澤 |
영어음역 | Lee Hee-taek |
이칭/별칭 | 윤경(潤卿)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홍갑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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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 남 |
생년 | 1640년 |
몰년 | 1691년 |
본관 | 덕수(德水) |
대표관직 | 연안부사(延安府使) |
묘지 | 성남시 수정구 고등동 덕수이씨 선영 |
[정의]
조선 후기 성남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덕수(德水). 성남시 수정구 고등동 등자리 출신이다. 자는 윤경(潤卿)이다. 광해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참판을 지낸 이경헌(李景憲)의 손자이고, 역시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를 역임한 이정(李程)의 장남이다. 어머니는 유황(兪榥)의 딸이다. 부인은 조석구(趙錫龜)의 딸이다.
[활동사항]
1660년(현종 1) 식년 생원시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그러나 성균관에 입학하여 공부를 하면서, 대신인 조경(趙絅)을 간사하다고 배척하고 송시열등 사림을 위하기를 상소하였다가, 임금으로부터 과거를 보지 못하게 하는 정거(停擧)를 당하였다. 그 후 1674년 장릉참봉(長陵參奉)으로 관직에 나아가, 1677년 종부시직장(宗簿侍直長), 1679년 금부도사(禁府都事)에 제수되었다가 그해 6월 교하현감(交河縣監)에 임명되었다. 당시에 경기도 일대는 해마다 흉년으로 수령들 모두가 피하는 지역이었지만, 부임하여서는 기근(饑饉)에 민생구휼을 잘하였다. 이듬해 1680년(숙종 6) 고령현감(高靈縣監), 1682년 금산군수(金山郡守), 1683년 합천군수(陜川郡守), 이듬해 연안부사(延安府使)에 보임되었으나 노모의 병 구환을 위하여 체직을 요청하였다가 재해를 입은 고을을 기피하였다 하여 파면되었다. 이듬해 사직령(社稷令)에 제수되었다가 그해 10월 정선군수(旌善郡守), 1688년 영월군수(寧越郡守)를 역임하였다.
[묘소]
묘는 성남시 수정구 고등동 덕수이씨 선영에 있다. 덕수이씨가 등자리에 살게 된 것은 조선초기 풍성군(豊城君) 이의번(李宜蕃)이 죽은 후 국가에서 사패지로 내려진 것에서 시작되었다. 2004년 묘소정리 중 부장품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