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30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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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光洞 木棺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금광동 2435-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조수현 |
제작 시기/일시 | 17세기~19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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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토|발굴 시기/일시 | 2020년 1월 13일 - 금광동 목관 출토 |
현 소장처 | 성남시 박물관 임시수장고 - 경기도 화성시 |
원소재지 | 금광동 목관 출토지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금광동 2435-1 |
출토|발견지 | 성남:금광동 목관 출토지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금광동 2435-1 |
성격 | 목관 |
재질 | 나무 |
크기(높이,길이,너비) | 남편 목관: 길이 195cm 너비 45~50cm 높이 36cm|부인 목관: 길이 170cm 너비 35~40cm 높이 32cm |
소유자 | 성남시 |
관리자 | 성남시 |
[정의]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금광동에서 출토된 17~19세기 목관.
[개설]
금광동 목관 은 금광1 주택재개발사업 과정에서 출토된 유물이다. 공사 중 금광동 2435-1번지 일원 도로 아래에서 회곽묘 1기가 출토되었는데, 동혈이곽(同穴二槨)의 부부합장묘로서 회곽묘 안에서 옷칠된 목관 2기가 또 출토되었다. 관 뚜껑에는 각각 “通政大夫行泗川縣監兼晉州鎭管兵馬節制都尉李公之柩(통정대부행사천현감겸진주진관병마절제도위이공지구)”, “淑夫人淸風金氏之柩(숙부인청풍김씨지구)”라고 관상명정(棺上銘旌)이 쓰여져 있다. 남편의 목관에는 수의에 싸인 시신이 거의 온전하게 남아 있었고 부인의 목관에는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 남편의 수의는 소렴·대렴의 의구로 한삼, 소창의 창의, 창의대, 바지, 복건, 망건, 면목 등이 확인되었는데 소렴은 시신에 수의를 입히는 것을 말하며 대렴은 소렴한 뒤 시신을 다시 옷과 이불로 묶고 관에 넣는 절차를 말한다.
[형태]
남편 목관의 상부에는 4매의 횡대가 있는데, 위쪽 면에 먹으로 三, 五, 七이라는 순서가 쓰여 있다. 횡대 아래로는 길이 195cm, 너비 45~50cm, 높이 36cm 크기의 목관이 있는데, 다리 부분으로 갈수록 너비가 줄어드는 형태이다. 목관은 외부 전면에 옻칠을 두껍게 했으며, 관정을 사용하지 않고 나비장 이음으로 고정했다. 목관에 사용된 목재는 8cm로 두꺼운 편이며, 목관 외관에는 옻칠이 두껍게 입혀져 있고, 관 뚜껑을 덮은 직물에는 나비 무늬가 수묵으로 그려져 있다. 내부에는 수의에 싸인 시신이 수의에 안치되어 있었으며, 목관 바닥에는 얇은 송판으로 만든 칠성판(七星板)이 발견되었는데, 네모꼴 구멍을 뚫어 북두칠성을 나타냈다.
부인 목관의 상부에는 3매의 횡대가 있는데, 위쪽 면에 먹으로 五, 六이라는 순서가 쓰여 있다. 횡대 아래로 길이 170cm, 너비 35~40cm, 높이 32cm 크기의 목관이 있는데, 남편과 같이 다리 부분으로 갈수록 너비가 줄어드는 형태이다. 내부에서는 시신과 칠성판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이장을 나중에 했거나 처음부터 시신을 안치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남편의 시신은 관내의(棺內衣)와 솜이 전체를 덮고 있었고, 그 안쪽으로 소렴금[이불]이 발견되었다. 소렴(小殮)은 습을 한 다음 날 시신을 이불과 옷 등으로 감싸는 것을 말한다. 수의는 상의로 저고리, 한삼, 소창의, 창의, 창의대를 입고 있었다. 하의는 3겹으로 입고 있었다. 이 외에도 복건, 망건, 멱목, 버선[좌, 우], 습신[좌, 우], 대님, 두발낭, 우족낭, 우낭, 이불, 지요, 관내의가 발견되었다. 목관에 붙어 있던 삽도 수습했다.
[특징]
회를 이용한 묘제의 변화는 회를 사용하기 시작한 16세기를 전후하여 탄곽회곽묘-회곽목곽묘-회곽목관묘의 단계를 거치면서 변화해 왔다. 발굴된 회곽묘는 17세기부터 19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전형적인 회곽목관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는 묘제의 간소화와 회곽 규모를 축소한 특징이 있다. 회곽의 장축 길이를 3m 내외, 깊이 최대 3m 내외로 하던 16세기 회곽묘와 달리 장축 2~2.5m 내외, 깊이 1m를 넘지 않는 등 규모가 점점 줄어든다. 금광동에서 출토된 회곽묘와 목관은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옻칠된 관 뚜껑에 적색 안료로 적혀 있는 남편의 관상명정인 ‘사천현감 겸 진주진관’은 병마절제도위로 종6품에 해당하는 관직이다. 관직 앞에 붙는 통정대부는 조선 시대 정3품 동반 문관에게 주던 품계이다. 정3품의 상계로서 통훈대부보다 상위 자리로 당상관의 말미이다. 『경국대전』 반포 이후 문관에게만 주다가 『대전회통』[1865]이 반포되면서 종친[임금의 4대손까지의 친족]과 의빈[임금의 사위]에게도 이 품계를 주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