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3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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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壽進洞-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수진동 산41-3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김충배 |
성격 | 고인돌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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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뚜껑식[개석식] |
건립시기/연도 | 청동기시대 |
높이 | 덮개돌[개석] 100㎝ |
지름 | 덮개돌[개석] 200㎝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수진동 산41-3 |
[정의]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수진동에 위치했던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 있던 터.
[개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돌무덤이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고인돌이 많은 국가에 속하는데 한반도에는 3만여 기가 분포한다. 고인돌은 다듬어진 판돌로 ㄷ자 또는 ㅁ자로 무덤방을 만들고 거대한 판석상의 덮개돌을 얹은 탁자식(북방식), 무덤방을 지하에 만들고 받침돌을 놓은 후 거대한 덮개돌을 덮은 기반식(남방식), 지하에 만든 무덤방 위에 바로 덮개돌을 놓은 뚜껑식[개석식] 고인돌로 나뉜다.
[위치]
수진동 산41-3번지에 있었던 수진동 고인돌은 북쪽 800m 지점에 있는 태평동 고인돌, 남서쪽 3㎞ 지점에 있는 사송동 청동기시대 유적과 유사한 고고학적 환경을 가지고 있다. 이 고인돌은 동쪽 청량산에서 탄천 방향 남서쪽으로 흘러내리는 해발 29m의 나지막한 구릉상의 밭 경작지에서 확인되었다. 현재의 상태로 보면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 성남톨게이트의 북서쪽의 수진공원이 조성된 위치에 해당한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수진동 고인돌은 수도권 지역의 교통난 해소와 지역 간의 균형 발전을 목적으로 1988년에 추진된 판교~구리간 고속도로 건설과 관련하여 조사되었다. 1987년에 충북대학교박물관에 의해 지표조사가 이루어졌고, 1988년에 발굴조사 되었다.
[형태]
고인돌 상부에 200×130×100㎝ 크기의 7톤 규모로 상당 부분이 풍화, 마모되었지만 손질 흔적이 뚜렷한 화강편마암의 덮개돌(개석, 蓋石)이 동서 10° 정도의 장축을 두고 있었다. 하부 구조로는 덮개돌이 미끄러져 내리는 것을 방지하려는 의도로 보이는 사람 머리 크기의 석재 7~8개가 있었을 뿐 별다른 구조물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덮개돌 하부에서 토양의 색조와 경도의 구분을 통하여 225×165×30~40㎝ 규모 구덩이의 존재를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출토유물]
출토유물로는 덮개돌 하부에서 갈아낸 흔적이 보이는 용도 미상의 석재 1개가 있었고, 기타 지표 조사 당시에 채집된 청동기시대의 전형적인 민무늬토기 동체 조각이 있었다.
고인돌의 입지와 출토유물, 그리고 2001년 토지박물관 지표조사 때 이 고인돌이 있었던 지역 동쪽에 해당하는 해발 65m의 구릉 정상부 일대에서 민무늬토기 조각이 약간 채집된 바 있어 이 고인돌과 관련이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적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현황]
1988년 판교-구리간 고속도로 건설 당시 고인돌이 자리한 능선을 고속도로가 관통하면서 고인돌은 사라지고 그 터만 남았다. 현재는 수진동 산41-3번지 일대에 총 면적 51,000㎡ 규모의 수진공원이 조성되어 시민들에게 유희 및 운동 시설, 편의 시설 등을 제공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대부분의 고인돌 유적이 강가에 위치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구릉 사면부에 위치하고 있어 한강 남쪽 경기 내륙에서 확인되는 고인돌 유적들과 다양한 측면에서의 비교 연구가 가능하며, 이 고인돌과 관련되는 인근 청동기시대 생활유적과 더불어 성남 지역의 당시 생활상을 파악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