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4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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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野塔洞-群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169-3|176|191-1|185|275|198-3|210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김충배 |
성격 | 고인돌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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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연도 | 청동기시대 |
높이 | 덮개돌(상석) 40㎝|90㎝|60㎝ 등 |
지름 | 덮개돌(상석) 220㎝|350㎝|415㎝ 등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169-3|176|191-1|185|275|198-3|210 |
[정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일대에 분포했던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고인돌군.
[개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돌무덤이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고인돌이 많은 국가에 속하는데 한반도에는 3만여 기가 분포한다. 고인돌은 다듬어진 판돌로 ㄷ자 또는 ㅁ자로 무덤방을 만들고 거대한 판석상의 덮개돌을 얹은 탁자식(북방식), 무덤방을 지하에 만들고 받침돌을 놓은 후 거대한 덮개돌을 덮은 기반식(남방식), 지하에 만든 무덤방 위에 바로 덮개돌을 놓은 뚜껑돌[개석식] 고인돌로 나뉜다.
야탑동 고인돌군은 분당 신도시를 개발하기 전에 이루어진 1989년 성남분당지구 문화유적 지표조사와 1990년 분당지구 문화유적 발굴조사를 통하여 발굴된 20기의 고인돌군이다.
[위치]
야탑동 고인돌군은 야탑동 169-3, 176, 191-1, 185번지 일대에 위치하는 A군과 275, 198-3, 210번지의 B군, 그리고 C군이 있다. A군과 B군은 야탑동 상탑마을 일대의 산기슭과 논밭 경작지 일대로 양쪽으로는 해발 200~300m 정도의 산지가 있고, 중앙부로는 계곡이 형성되어 있는 자연환경을 지니고 있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1980년대에 정부에서는 수도권 지역의 주택난 해소와 인구 분산을 목적으로 성남시 분당 일대에 대규모의 신도시 개발 계획을 수립하였고, 이에 따라 개발 사업으로 인해 사라질 수 있는 유적을 보전하기 위해 1989년 성남분당지구문화유적 지표조사, 1990년 분당지구문화유적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야탑동 고인돌군 발굴조사는 9개 기관 10개소에 대해 수행되었는데, A군과 B군은 고려대박물관, C군은 성균관대박물관과 경희대고고미술사연구소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형태]
조사 당시 크게 A군, B군, C군의 3개 군으로 나누어졌으며, 이 중 C군은 다시 2개소로 분리되어 3개군, 4개소에서 조사가 진행되었다. A군과 B군은 지표조사 결과에 의하여 당초 16기가 조사될 예정이었으나 발굴조사 도중 고인돌의 덮개돌로 추정되는 석재들이 확인되어 모두 20기가 발굴 조사되었다. A군과 B군 모두에서 고인돌의 하부 구조는 확인되지 않았고, 덮개돌 하부에서 개간 흔적과 고하천이 흘렀던 흔적 등이 확인되었다. C군의 1개소에서는 모두 18기의 고인돌 조사가 이루어졌으나 하부 구조가 확인된 것은 없었다. 모두 덮개돌 하부에서 교란된 층위가 확인됨으로써 고인돌과 관련이 없거나 후대의 인위적인 이동으로 결론지어졌다. 다른 1개소의 C군은 당초 16기가 조사 대상이었으나 발굴조사 과정에서 새롭게 5기가 확인되어 모두 21기의 고인돌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모두 고인돌의 하부 구조로 볼 수 있는 유구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심하게 교란된 상태를 보임에 따라 원래의 위치를 벗어난 것으로 판단되었다.
[출토유물]
C군에서 원삼국시대의 매장 유구와 철기시대 초기의 적갈색 연질토기 등이 수습되었다. 직경 76㎝ 정도의 매장 유구는 나뭇잎과 진흙층이 번갈아 깔려 있으며, 그 성격은 파악하기 어렵지만 매우 정교하고 주변에서 출토된 굽다리접시들이 소형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어떤 특수한 의식과 관련되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현황]
발굴조사 후 고려대박물관에서 조사한 야탑동 191-1 일대의 220×150×40㎝, 250×140×30㎝ 규모의 고인돌과 야탑동 185번지의 350×280×90㎝ 규모의 것 등 3기, 경희대박물관에서 조사한 야탑동 산30번지의 415×250×60㎝ 규모의 것 1기, 그리고 성균관대박물관에서 조사한 야탑동 307번지의 210×170×30㎝ 규모의 것 1기 등은 현재 분당 중앙공원으로 이전되어 복원되었다.
[의의와 평가]
유적이 명확히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이 지역에 고인돌 문화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제시하며 한국 고인돌 연구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하나의 자료로 활용될 수 있는 유적으로 평가된다. 또한 원삼국시대 및 초기 철기시대 관련 유적의 부존을 통해 이 지역이 생활환경이 양호했음을 보여주는 자료의 확보라는 점에서도 의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