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7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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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世貞墓-墓碣 |
이칭/별칭 | 이세정의 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 산3-1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주홍 |
성격 | 묘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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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방형 쌍분 |
건립시기/일시 | 1522년 |
관련인물 | 이세정 |
높이 | 1.6m |
지름 | 4.8m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 산3-1 |
소유자 | 광주이씨 대종회 |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이세정(李世貞)의 묘.
[개설]
이세정(李世貞)[1461~1522]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중권(仲權)이다. 이극돈(李克墩)의 셋째 아들로 음직(蔭職)으로 관직에 나아가 와서별제(瓦署別提), 장악원주부(掌樂院主簿),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등을 역임하고 충훈부경력(忠勳府經歷)으로 재직 중 1501년(연산군 7) 식년문과(式年文科)에 4등으로 급제하여 세자시강원보덕(世子侍講院輔德)에 제수되었다. 1504년 임사홍(任士洪)이 연산군의 생모인 윤비(尹妃)가 폐모(廢母)되어 사사(賜死)된 사실을 왕에게 밀고함으로써 일어난 갑자사화(甲子士禍)로 인하여 남해(南海)로 귀양을 갔다.
1506년(중종 1)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재등용되어 광주목사(光州牧使), 해주목사(海州牧使), 전주판윤(全州判尹) 등을 역임하고 1520년(중종 15) 전라도관찰사에서 도승지(都承旨)로 옮겼으며, 1528년(중종 23) 이조참의가 되었으나 건강이 좋지 않아 사직하였다.
[위치]
이세정 묘 및 묘갈은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 태조사 바로 뒤에 남서향하여 있다.
[형태]
이세정의 묘는 정부인 전주이씨의 묘와 좌우 170㎝의 거리를 두고 방형의 쌍분(雙墳)을 이루고 있다. 봉분 뒤로는 높은 활개를 갖추고 있으며, 하부에 2단의 방형 호석을 마련하였다. 크기는 높이 160㎝, 전후 395㎝, 좌우 480㎝이다. 쌍분 중앙에는 묘표, 혼유석, 상돌, 사각향로석, 장명등과 상돌 좌우에 문인석, 8각 망주석 등의 석물이 있으나, 옛 석물은 봉분 우측에 동남향하고 있는 묘갈뿐이다.
[금석문]
봉분 우측의 묘갈은 비좌와 비신 월두형으로 비신은 황갈색을 띠고 있다. 비신의 비문은 앞뒤 두 면에 있으며, 앞면에 세로 두 줄로 ‘通政大夫守全羅道觀察使兼兵馬水軍節度使李公之墓 貞夫人全州李氏 幷葬’(통정대부수전라도관찰사겸병마수군절도사이공지묘 정부인전주이씨 병장)의 비문이 새겨져 있다. 또 뒷면 상단에는 가로 한 줄의 전서(篆書)로 ‘觀察使李公墓碣銘’(관찰사이공묘갈명)의 비문이 있으며, 비제는 ‘有明朝鮮國通政大夫守全羅道觀察使兼兵馬水軍節度使李公墓碣銘 幷書’(유명조선국통정대부수전라도관찰사겸병마수군절도사이공묘갈명 병서)이다.
비문은 이사균(李思鈞)이 짓고, 윤안인(尹安仁)이 전액했으며, 아들 이수완(李秀莞)이 썼다. 묘갈의 건립 연대는 1533년(중종 28)이다. 비의 규모는 총 높이 158㎝로 비좌 높이 8㎝, 너비 84㎝, 두께 46㎝, 비신 높이 150㎝, 너비 55㎝, 두께 22㎝이다.
봉분 중앙의 묘갈은 무궁화문이 양각된 백색 대리석제의 비좌와 오석의 비신, 전면에 사슴과 후면에 쌍학이 조각된 지붕돌[옥개석]을 갖추고 있다. 비신의 비문은 4면에 있으며, 전면에 세로 세 줄의 큰 글자로 ‘通政大夫守全羅道觀察使兼兵馬水軍節度使李公墓碣銘 幷書’(통정대부수전라도관찰사겸병마수군절도사이공묘갈명 병서)의 비문이 있는데, 원래 묘갈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현황]
이세정 묘 및 묘갈은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광주이씨 대종회에서 소유·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