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9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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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炯胤 |
영어공식명칭 | Lee Hyeong-yu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홍갑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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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 남 |
생년 | 1593년 |
몰년 | 1645년 |
본관 | 전주(全州) |
대표관직 | 가선계(嘉善階) |
묘지 |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
[정의]
조선 후기 성남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승(汝承)이다. 덕양군(德陽君)[중종의 다섯째 아들] 이기(李岐)의 증손이며, 풍산군(豐山君) 이종린(李宗麟)의 손자이다. 구천군(龜川君) 이수(李睟)의 장남이고, 사도시(司䆃寺) 첨정(僉正) 정인수(鄭麟壽)의 외손이다.
[활동사항]
1612년(광해군 4) 종시(宗試)에 두 번이나 장원하여 봉래수(蓬萊守)에 제수되었으며, 이후 명선계(明善階)와 가선계(嘉善階)에 올랐다. 또 오성 이항복(李恒福)과 일송 심희수(沈喜壽)가 장시관(場試官)으로 만나 보고는 종실에서 영재가 나왔다고 칭송하였다. 아버지가 순천(順天)으로 유배되자 이를 따라가 적소(謫所)에서 조석으로 아버지의 공양과 시병(侍病)에 정성을 다하였고,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으로 아버지의 봉작이 복구되자 상경하였다.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에는 공주(公州)까지 어가를 호종하였고, 정묘호란 때에는 강도(江都)에 까지 어가를 호종하였던 공으로 부종관(副從管)을 겸대하고 품계를 더하였다.
[묘소]
묘는 성남 분당구 백현동 선영에 있다. 묘갈은 이경여(李敬與)가 짓고 이재서(李裁書)가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