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32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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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城南-傳統民俗遊戲 |
영어공식명칭 | Traditional folk games of Seongnam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승호 |
[정의]
경기도 성남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민속놀이.
[개설]
성남 지역에서 전해지는 고유의 민속놀이는 이무술 집터 다지는 소리, 성남오리뜰농악[오리뜰 두레농악], 판교 쌍용거(巨)줄다리기, 「성남 오리뜰 들노래」가 있다. 이 중 이무술 집터 다지는 소리와 성남오리뜰농악은 각각 성남시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으며, 판교 쌍용거줄다리기는 성남문화원, 「성남 오리뜰 들노래」는 한국농악보존협회 성남지회에서 정기적인 재현 공연 및 전승 활동을 하고 있다.
[이무술 집터 다지는 소리]
이무술은 이매동의 옛 이름으로 ‘이매’라는 이름의 내력에 대하여는 몇 가지 설이 있으나 이무기와 관련된 전설이 지배적이다. 옛날 탄천 변 방죽에서 주민들이 1,000년 만에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려던 이무기를 잡아 죽였는데, 그 저주를 두려워한 사람들이 위령 승천제를 지냈으나 제사상 주위가 온통 피로 물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날 밤 주민들 꿈에 이무기 화신인 백발 노인이 나타나 주민들의 정성에 보답하여 저주를 풀었다고 하고, 제를 지냈던 자리에 매화나무 두 그루가 자라났으므로 ‘이무술’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후 이무술에서 집을 짓거나 증축을 위해 집터를 닦고 지반을 튼튼하게 다질 때, 집을 짓는 동안의 안녕과 집을 지은 후의 복록(福祿)을 기원하는 고사 덕담을 하고 소리를 하면서 작업을 하는 일체 행위를 성남 ‘이무술 집터 다지는 소리’라고 칭한다.
이무술 집터 다지는 소리는 근대화 시기 이후 건축물의 건설 방식이 차츰 현대화[기계화]되면서 일상의 문화로부터 격리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된 성남 지역의 환경 변화는 이전의 생활방식과 문화가 그 가치를 확인할 시간조차 주지 않은 채 기억의 뒤편으로 잊혀 갔으며, 원주민보다 외부 인구의 유입이 더 많아지면서 거의 소멸의 위기에 처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향토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급격한 도시화로 인한 문화의 단절 현상이 많이 생기는 지역일수록 향토 문화유산에 대한 중요성과 그 가치를 바로 인식하여야 하며, 그러한 차원에서 볼 때 성남 이무술 집터 다지는 소리는 후손에게 남겨 줄 지역 고유의 무형유산으로서 그 가치가 충분히 있으며 전승과 보존에 대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성남 이무술 집터 다지는 소리는 성남의 옛 돌마면 지역 중 하나인 이매동이라는 지역성이 뚜렷하고, 경기 중부 지역 토리의 선율을 지니고 있다. 또한 성남 이무술 집터 다지는 소리는 땅을 다지는 노동을 넘어서 지신 에 대한 숭배와 일체화 과정의 제례 행위였다. 이는 인간과 지신과 땅이 하나 되어 집터 다지기라는 소리로 결실을 보게 되는, 그 자체가 생활과 신앙이 하나가 되는 과정이자 자연 부락 이매동의 정체성을 담은 축제였다.
성남 이무술 집터 다지는 소리는 경기 중부 지역 두레의 기능성과 지경 다지기의 원형미, 형식미를 갖추고 있다 소리의 구성은 대부분 땅의 명기를 부르는 소리가 들어가고 집터가 좋음을 칭송하는 소리가 이어진다. 성남 이무술 집터 다지는 소리에는 작업을 지시하는 소리, 즉 사람들의 행동을 일러주는 일꾼 다루는 소리와 소리 속도를 조절하는 소리가 남아 있다. 이는 일을 해야 하는 노동요의 특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학술적 증거이며, 보여 주기식 행사를 위해 급조하여 만든 타 지역 집터 다지는 소리와 차별성을 가진다.
[성남오리뜰농악[오리뜰 두레농악]]
과거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 구미리(九美里)를 오리뜰이라고 불렀는데, 이곳에서 대대로 이어지던 성남오리뜰농악[오리뜰 두레농악]은 웃다리 농악의 한 갈래로 두레농악의 전통을 이어 오고 있다. 두레는 일종의 협동 노동 조직체로서 일감에 따라 김매기 두레·풀베기 두레·모심기 두레·길쌈 두레 등이 있는데, 흔히 김매기 두레에 농악이 딸린다. 김매기 두레농악은 본디 농부들이 풍농(豐農)을 위한 굿에서 굿패들의 행악[행진 음악(行進音樂)]이나 김을 매러 들고 날 때 두레패들이 행악으로 치던 농악이었다고 볼 수 있다.
성남오리뜰농악 은 성남 지역의 농경문화가 사라지기 시작한 1970년대를 전후하여 쇠퇴하였으며, 공식적으로 재조명이 되고 복원이 이루어지면서 그 가치를 다시 평가받게 되었다. 첨단 IT 산업의 핵심 도시가 된 성남에서의 성남오리뜰농악은 소수의 전수자를 중심으로 보존과 전승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일반적인 경기 농악과는 또 다른 독창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두레농악과 전문 예인 농악의 혼재된 형식을 통해 학술적으로도 연구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성남오리뜰농악 은 두레의 특징적인 요소라 할 수 있는 농사풀이를 통한 놀이 형태, 즉 가래질놀이, 써레질놀이, 볍씨뿌리기놀이, 모찌기놀이, 모심기놀이, 논매기놀이, 벼베기놀이, 벼털기놀이, 벼말리기놀이, 벼담기놀이, 벼메기놀이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또한 진풀이에 있어서도 십(十)자진, 대(大)자진 등의 특징적인 요소가 담겨 있다. 그리고 놀이와 놀이 사이 또는 진풀이의 장단과 장단 사이에 ‘삼잽이’[제금, 장구, 호적으로 굿거리 가락을 연주하는 형태]의 반주에 맞춰 경기도의 다양한 민요를 불러 노동의 고통을 풀어 줄 뿐 아니라 일의 능률을 높여 주었다. 평상시에는 주로 ‘육띠기’[쇠, 징, 제금, 북, 장구, 호적으로 연주하는 형태]나 삼잽이라 하는 것으로 연주를 하였으며, ‘건달춤’이라 하는 잡색 놀음을 통해 연희되었다. 명절이나 마을의 큰 경조사, 각종 대회 때는 20명 안팎의 치배들을 구성하여 지금의 성남오리뜰농악을 연희하였다. 정월에는 짠지패를 구성하여 지신밟기를 하였고, 용인이나 판교 등의 인근 마을과 함께 답교놀이를 하였다.
[판교 쌍용거줄다리기]
줄다리기 는 풍농을 기원하고 마을 공동체의 화합과 안녕을 위한 행사였으며,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었다. 농업사회 공동체가 점차 해체되는 과정 속에도 줄다리기가 전승된 이유는 농한기의 무료함을 달래는 신나는 대동놀이에 대한 향수뿐 아니라 줄다리기가 지닌 음양오행의 상징성과 신앙적 기복, 그리고 마을의 단합을 꾀하는 현실적 기능 등 과거 전통사회 문화의 상징적 가치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판교 주민들도 줄다리기를 하는 해에는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줄다리기 행사를 준비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고, 그 자체가 참 재미있었다고 회고한다. 현재 판교 쌍용거줄다리기 행사는 판교 개발로 각각 흩어져 사는 마을 사람들은 1년에 한 번 한자리에 모이게 하여 지역사회 화합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세시풍속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추어 변화되며 소멸되어 왔다. 줄다리기는 전통 농경사회 공동체 문화가 집약된 놀이이다. 그렇듯 판교 쌍용거줄다리기는 성남 지역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총체적으로 담고 있으며, 현재적인 즐거움을 여전히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은 줄다리기를 전승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살아 있는 증거가 될 것이다.
판교 지역은 전통 시대 원과 역이 설치되었던 곳인 만큼 교통로가 발달하였고, ‘판교’라는 널다리가 놓여 있던 운중천이 흐르는 곳이다. 아울러 끝자리가 3·8일에는 낙생장이 열리기도 하였다. 농경사회에서 이러한 조건은 줄다리기가 거행되고 전승되기 좋은 조건이다. 판교는 장터와 함께 영남로가 지나는 넓은 길, 강둑을 따라 수백 명이 잡아당길 수 있는 줄을 늘어 놓을 수 있는 장소가 있었고, 농업 생산이 풍부한 곡창 지대이면서 교통로에 기대어 상업이 발달함에 따라 살림살이가 윤택한 곳이었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판교 쌍용거줄다리기의 줄의 형태를 보면 암줄과 숫줄 맨앞에 둥그렇게 매듭지은 ‘고’가 만들어져 있다. 줄다리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이 ‘고’를 앞세워 보다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거나 기선 제압을 위해 행해지던 놀이가 ‘고싸움’이다. 판교 쌍용거줄다리기에서는 ‘고싸움’의 과정은 없지만、 놀이에 사용되는 줄의 형태를 볼 때 판교 쌍용거줄다리기의 ‘거(巨)’ 자는 고줄다리기의 ‘고’ 자의 변형이 아닌가 한다. 1980년대 이전 판교 마을 주민들은 줄다리기의 이름을 ‘널다리 쌍용 줄다리기’라고 불렀다고 하니, ‘거(巨)’라는 명칭은 후대에 붙여졌음을 알 수 있다.
판교 쌍용거줄다리기 의 줄은 삼평동의 약 10마지기 논에서 나오는 짚을 말려서 썼다. 그전에는 마을 주민들 각자 농사 지은 볏짚을 지게에 지고 가져와서 줄을 만들었다고 한다. 줄은 암줄과 숫줄로 되어 있으며 암줄은 황룡줄, 숫줄은 청룡줄으로 부른다. 주민들이 직접 만든 줄은 그 굵기가 어른이 앉아도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였다고 하나 현재는 한아름 정도 굵기의 줄을 사용하고 있다.
줄다리기 행사 전에 판교의 500년 당산나무인 회화나무 앞에서 고사를 지낸다. 이 회화나무는 판교신도시 개발 전 판교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주막거리 한복판에 있어 마을 주민들이 늘 찾는 곳이었으며, 줄다리기 줄도 이 나무 아래에서 꼬았다. 현재 회화나무는 판교신도시 개발로 낙생초등학교 앞으로 옮겨져 있다. 줄다리기 행사가 무사히 끝나도록, 또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며 고사를 지낸다. 고사가 끝나면 농악과 함께 마을 부녀회에서 준비한 술과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줄다리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흥을 돋우었다. 판교신도시 개발 전까지 줄다리기는 보름달을 보며 밤에 진행되었다.
[「성남 오리뜰 들노래」]
농요는 농사일을 할 때 부르는 노래로, 주로 노동의 고단함을 덜고 작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불렸다.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와 특성을 가지며, 주로 농사일의 각 과정에서 불렸다. 일반적인 농요의 유래는 정확히 특정 시기를 지목하기 어렵지만, 농경문화가 시작된 이래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공동체 생활의 일환으로, 공동 작업을 하며 리듬을 맞추고 협동심을 키우기 위해 발전한 것이다. 농요는 단순히 노동의 도구일 뿐만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문화와 전통을 전달하는 중요한 매개체로서 역할을 했으며, 「성남 오리뜰 들노래」 또한 인근 지역과 같은 문화권의 상호작용을 통해 변천되고 발전되어 왔다. 「성남 오리뜰 들노래」는 과거 광주군 낙생면 구미리(九美里)에 위치한 오리뜰마을[탄천 주변]을 중심으로 상당히 넓은 평야를 배경으로 활발한 농업 활동과 함께 해 왔으며 예술적 수준도 높았다고 볼 수 있다.
전통사회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한 노동요는 풍작의 기원은 물론 노동의 단합과 결속을 이루기 위해 행하여졌다. 농사일을 준비하고 두레 작업을 한바탕 하고 노동의 고통과 놀이의 즐거움을 나누고 또 다른 공동체의 화합을 꾀하는 과정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나는 1년 농사일과 항상 함께하는 삶 그 자체이다. 공동체는 농사일의 과정을 통해 단합과 어려움을 함께 헤쳐 나갈 의지를 쌓아 나갈 수 있었다. ‘우리’라는 공동체의 가치가 많이 퇴색된 현대사회에서 두레 소리는 여전히 그 유희적 성격과 노동의 역사 문화적 의미가 보태어져 함께 모여 즐기는 좋은 구실이 되어 준다.
옛 오리뜰마을에서는 보통 논매기를 두 번 했는데, 논에 피가 많은 집에서는 피사리 한 번을 더 포함해서 세 번을 했다. 초벌매기는 모를 심고 15일 정도면 하게 되는데, 이때는 호미로 논을 파헤치며 작업을 한다. 소리는 굼방네를 외치며 부르는 「사도소리」를 시작으로 「방아타령」, 「상사소리」, 「우야소리」를 한다. 이와 같이 「성남 오리뜰 들노래」에는 일련의 농사 과정의 거의 대부분을 담고 있어 다양한 소리가 존재하였으며, 이는 오리뜰과 인접한 광주, 용인의 소리와 대체적으로 비슷한 양상을 띤다.
그런데 “군방네~/ 군방네~/ 군방네님들~/ 에~ 이~/ 옛날옛적 고리고적, 신농씨가 농사짓던 그 법을 따라 우리 사도 한마디를 하는데 여러분들이 합심해서 잘 불러 봅시다~/ 에이~/ 사~ 아 사~ 사~아~아~/ 오~ 오~/ 에~이~요~오/ 서마지기~ 논빼미가 반달만큼 남았네”와 같이 부르는 「사도소리」는 아직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오리뜰의 특징적인 소리이다. 이 ‘사’, ‘오’, ‘에’음을 상황에 따라 두 패나 세 패로 나누어서 부르는데, 이 소리를 부를 때 “눈이 툭 튀어나온다”는 표현처럼 부르기 힘든 노래이다. 물론 고양, 과천, 김포, 남양주, 양주, 용인 등에 논매는 소리인 「사뒤소리」가 있으나, 이들은 후렴이 ‘사두여’, ‘사디여’, ‘사도’ 등의 사설이 있어서 제목으로 명명된 것이지 오리뜰의 「사도소리」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이렇듯 「사도소리」는 「성남 오리뜰 들노래」의 가장 특징적인 소리이며 그 형식 또한 3부 연창의 형식을 띠고 있어 학술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성남 오리뜰 들노래」는 성남 지역 고유의 전통 문화유산 중 하나로, 조상들의 생활과 정신을 담고 있으며 과거 농경 사회의 일상과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임과 동시에 지역 공동체의 협동과 화합을 상징한다. 이는 문화의 다양성을 풍부하게 해 주는 것은 물론이며, 지역 사회의 결속력을 강화하고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전통 문화를 가르치고, 그들이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갖도록 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따라서 들노래[농요]를 보존하고 전승하는 것은 단순한 전통의 유지가 아니라,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소중히 여기고, 이를 통해 미래 세대에 전해지는 소중한 유산을 지키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