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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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敎育 |
영어공식명칭 | Education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삼조 |
[정의]
전근대시기부터 현대까지 경상북도 영주시 교육의 역사와 현황.
[개설]
영주 지역의 교육은 고려시대의 향교, 조선시대의 향교·서원·서당, 근대의 신식학교, 현대의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 설립으로 전개되었다.
[고려시대]
영주 지역에 있었던 고려시대 대표적 국립교육기관인 향교로는 영주향교(榮州鄕校)와 순흥향교(順興鄕校)가 있다. 향교는 지방 교육기관으로,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배향할 뿐만 아니라 유학의 전파와 지방민의 교육·교화에 목적이 있었다.
순흥향교는 14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한다. 순흥향교의 창설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충숙왕 때 안축(安軸)[1282~1348]이 관향이자 고향인 순흥의 형승(形勝)을 노래한 「죽계별곡(竹溪別曲)」이다. 「죽계별곡」의 배경이 되는 순흥이 순흥부로 승격하고, 충목왕의 태(胎)가 순흥에 안장된 일이 안축이 사망한 1348년(충목왕 4)에 있었기 때문에, 「죽계별곡」은 1348년 이전 시기에 만들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죽계별곡」 제3장에는 향교에서 글을 배우고 유학을 익히는 과정, 제4장에서는 향교의 스승을 보내고 맞는 광경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때 향교가 바로 순흥향교이다. 안축이 적어도 10살 전후 순흥향교에 나아갔다고 가정했을 경우, 충렬왕 때 순흥향교가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영주향교 창립 시기는 두 가지로 추정된다. 첫째는 1310년대이다.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1342~1398]의 아버지 정운경(鄭云敬)[1305~1366]의 「행장」에 영주향교 기록이 나오는데, “10여 세에 스스로 학문에 분발해 영주향교에 들어갔다가 복주목(福州牧)[지금의 안동]의 향교로 갔다.”라는 기록을 근거로 정운경이 약 1315년경을 전후하여 영주향교를 다녔음을 확인할 수 있다. 두 번째는 1368년(공민왕 17)으로 지영주사(知榮州事)로 부임해 온 하륜(河崙)[1347~1416]이 흥학(興學)을 강조하면서 영주향교를 세웠다고 한다.
[조선시대]
영주 지역에 있었던 조선시대 대표적 교육기관 중 향교에는 순흥향교, 영주향교, 풍기향교가 있다. 이들 순흥향교와 영주향교는 고려시대부터 있었고, 풍기향교가 조선시대에 만들어졌다. 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자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을 비롯해 약 29개 정도가 있다. 이 밖에 서당이 약 40여 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 향교
조선시대에 건립된 풍기향교는 1732년(영조 8) 군수 임초(任燋)가 경상감사 조현명에게 올린 향교 이건 글을 근거로 1432년(세종 14)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만들어진 순흥향교, 영주향교, 풍기향교는 지금까지도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2. 서원
향교와 함께 조선시대 대표적 교육기관인 서원은 순흥면에 풍기군수 주세붕이 1542년(중종 37) 세운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 시초다. 이후 풍기군수로 온 퇴계 이황의 건의로 백운동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이 된다. 이후 조선시대 영주 지역 지방행정구역을 기준으로 약 29개 서원이 만들어졌다. 시기별로 살펴보면, 중종 대에는 소수서원, 명종 대에는 이산서원, 선조 대에는 오계서원, 광해군 대에는 구강서원·의산서원·단계서원·도계서원, 인조 대에는 방산서원, 효종 대에는 삼봉서원·사계서원, 현종 대에는 운곡서원·욱양서원, 숙종 대에는 장암서원·우곡서원·구만서원, 정조 대에는 산천서원·한천서원·구호서원·오천서원·문산서원·동명서원·노계서원·봉계서원, 순조 대에는 오산서원·행계서원·용연서원, 1971년대에는 백산서원, 그리고 건립 시기가 알려지지 않은 도고서원·구고서원이 있다.
영주 지역은 주로 조선 후기 특히 광해군과 정조 연간에 가장 많은 서원이 설립되었다. 2018년 기준으로 현존하는 서원은 이산서원·의산서원·오계서원·산천서원·욱양서원·소수서원·구만서원·문산서원·도계서원·구고서원·노계서원·백산서원으로 총 12곳이다. 이 중 소수서원과 1971년 신설한 백산서원을 제외한 10개 서원은 흥선대원군이 실시한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훼철된 이후 다시 세워졌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영주 시내에 있는 서원으로는 구호서원[영주동]·구강서원[휴천동]·방산서원[하망동]·산천서원[가흥동]·오산서원[가흥동]·장암서원[상망동]·한천서원[가흥동]이 있다. 순흥면에는 소수서원, 풍기읍에는 욱양서원, 단산면에는 구고서원·백산서원·오천서원, 평은면에는 운곡서원·오계서원, 장수면에는 의산서원, 이산면에는 이산서원·삼봉서원, 안정면에는 사계서원·용연서원, 봉현면에는 노계서원, 부석면에는 도고서원이 있다.
3. 서당
서당은 양반 사대부와 백성이 주체가 되어 자신이 거주하는 지방 행정단위에 설립하는 초중등 단계의 사립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 영주 지역을 기준으로 서당은 약 40여 곳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영천군에는 22곳, 풍기군에는 4곳, 순흥도호부에는 14곳이 있었다. 지역별로 보면, 영주 시내에는 산천서당[문정동]·도계서당[영주동]·남간서당[휴천동]·구호서당[영주동]·방산서당[상망동]·방수서당[상망동]·봉강서당[줄포동]이 있었다. 풍기읍에는 중산서재·운곡서당·노계서당·호계서당, 장수면에는 의산서당·성산서당, 문수면에는 난고서당, 이산면에는 도림서당·문천서당·동포서당·두들서실·만산서실, 안정면에는 용산강당·하락재, 평은면에는 운곡서당, 순흥면에는 유암서당·교천서당·대평서당·봉암서당·속수서당·구봉서당, 단산면에는 옥계서당·구고서당, 부석면에는 도강서당·도봉서재·감계서당이 있었다.
한편, 행계서당[봉화군 물야면 수식리]·구만서당[봉화군 물야면 가평리]·조양서당[봉화군 물야면 수식리]·옥천서당[봉화군 법전면 소천리]·문계서당[봉화군 봉화읍 문단리]·두릉서당[봉화군 봉화읍 적덕리]·구산서당[봉화군 상운면 구천리]은 현재 행정구역 상 경상북도 봉화군에 있었다.
영주 지역 서당은 조선 후기부터 1930년대까지 꾸준히 세워졌다. 선조 대에는 도림서당, 광해군 대에는 산천서당·두릉서당·구만서당·문계서당, 인조 대에는 운곡서당, 숙종 대에는 남간서당·난고서당·행계서당, 영조 대에는 구호서당·문천서당·구고서당, 철종 대에는 봉강서당, 고종 대에는 방수서당, 1900년경에는 도강서원, 1910년경에는 용산강당, 1930년경에는 만산서실 등이 세워졌다.
서당은 주로 개인, 문중, 향촌 사림 등이 주로 세웠다. 개인은 주로 관료이거나 영주 지역을 근거지로 한 대표적 사족들이 세웠다. 문중이 세운 서당으로는 감계서당[우계이씨]·봉강서당[나주정씨]·문천서당[염의공 정운경 후손들]·동포서당[선성김씨]·노계서당[풍기진씨]·행계서당[선성김씨]·구고서당[달성서씨]·옥천서당[의성김씨]·문계서당[선성김씨] 등이 있었고, 향촌 사림이 세운 대표적 서당으로는 남간서당·의산서당·도림서당·대평서당 등이 있었다.
현재 강학 기능은 하고 있지 않지만, 건물이 남아 있는 사당으로는 산천서당·두릉서당·구만서당·남간서당·의산서당·구호서당·난고서당·도림서당·구산서당·봉강서당·문천서당·두들서실·만산서실·용산강당·행계서당·도강서당 등이 있다.
[근대]
1. 개항기~대한제국기
1876년 개항 이후 조선에서는 서구식 근대교육을 위한 신식학교들이 전국적으로 설립되기 시작했다. 특히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애국계몽운동기에는 민족교육의 하나로 야학, 강습소, 사숙, 서당, 각종 사립학교 등이 설립되었다. 영주 지역에서 설립한 사립교육기관으로는 독립운동가 정산 김동진이 1900년경 오늘날 영주시 부석면 상석리에 세운 도강서원, 1906년 순흥 지역에 관립학교로 세워진 흥주소학교[사립소흥학교로 개칭], 1908년 풍기 지역에 세워진 사립안정학교, 영주 시내에 세워진 사립강명학교, 1910년에 영주시 평은면에 세워진 기독내매학교 등이 있다. 도강서원을 제외한 사립소흥학교, 사립안정학교, 사립강명학교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사립학교 탄압 정책과 공립보통학교 설립 정책으로 인해 사립학교에서 공립학교로 전환을 하게 된다. 사립안정학교는 1908년 5월 20일 사립학교로 인가를 받아 1908년 5월 25일 개교했다. 이후 1912년 풍기공립보통학교로 설립 재인가를 받았다. 1906년 4월 7일 세워진 사립소흥학교는 1911년 9월 8일 순흥공립보통학교로 설립 재인가를 받았다. 사립강명학교는 1911년 영천공립보통학교로 설립 재인가를 받았다.
2. 일제강점기
1910년대 일제 식민교육정책 목표는 ‘우민화’ 교육이었다. 따라서 초등교육기관 설립 정책은 기본적으로 ‘6면 1교’로 6개 면에 1개 공립학교를 설립하는 정책을 폈다. 1919년 3.1운동 이후 한국인들이 ‘신식 교육을 배우려는 열기’가 전국적으로 확산하면서 ‘교육열’이라는 단어가 각종 신문지에 오르내릴 정도로 학교 입학 열기가 많았다. 결국, 일제의 잘못된 학교 설립 정책으로 근대교육을 배울 수 있는 교육기관이 부족해지자, 한국인들은 1920년 이후 적극적으로 사립학교를 세우거나 일제에 공립학교를 설립해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일제가 1921년 ‘3면 1교’로 학교 설립 정책을 바꿀 정도로 학교 설립 운동은 일제강점기 전 기간 전국적으로 활발하게 일어났다. 「보통학교령」이 공포된 1906년부터 1941년까지 조선인이 다니는 초등교육기관의 명칭은 보통학교(普通學校)이고, 이후 심상소학교를 거쳐 1941년 조선총독부가 「국민학교령」[칙령 제148호 ]이 공포된 1941년부터 1995년까지는 국민학교(國民學校)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1995년 8월 11일 “일제의 잔재를 깨끗이 청산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 국민학교의 명칭을 변경한다.”라고 공포된 후 1996년 3월 1일부터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初等學校)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한편 일제강점기 공립보통학교는 4년제와 6년제로 구분되었으며, 6년제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해야 상급 교육기관인 중학교를 진학할 수 있었다.
1) 공립학교
영주 지역에서 조선총독부가 세운 공립학교가 세워진 시기는 1910년대부터이다. 1910년대 세워진 공립학교로는 순흥공립보통학교[1911], 풍기공립보통학교[1912], 영천공립보통학교[1917]이다. 세 학교는 모두 4년제 공립보통학교로, 6년제 공립보통학교로 설립된 학교로 전학을 가지 않은 이상 영주 지역에서 중등교육을 받을 기회는 원천 봉쇄되어 있었다. 영주 지역에서 4년제 공립보통학교에서 6년제 공립보통학교로 전환되는 시기는 영천공립보통학교는 1921년, 순흥공립보통학교는 1924년, 풍기공립보통학교는 1924년이다. 즉 1920년대 초반에 가서야 중등학교로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초등교육기관이 등장했다.
1920년대에는 평은공립보통학교[1922], 부석공립보통학교[1923], 안정공립보통학교[1929], 1930년대에는 장수공립보통학교[1930], 풍기보통학교 부설 유전간이학교[1934], 이산공립보통학교[1934], 봉현공립보통학교[1935], 문수공립보통학교[1935], 단산공립보통학교[1935], 평은공립보통학교 부설 오운간이학교[1935], 안정공립보통학교 부설 오계간이학교[1936], 풍기공립보통학교 부설 창락간이학교[1937], 이산공립보통학교 운문간이학교[1938], 문수공립보통학교 부설 조제간이학교[1938], 장수공립보통학교 부설 갈산간이학교[1938], 부석공립보통학교 부설 상석간이학교[1939], 1940년대에는 순흥심상소학교 부설 배점간이학교[1940], 영주동부심상소학교[1940]가 세워졌다. 간이학교는 1930년대 만들어진 2년제 단기 초등교육기관으로 광복이 되기 전인 1940년대 모두 국민학교로 전환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유일한 공립 중등교육기관은 영주농업학교[1943]이다. 영주농업학교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영주 지역에는 주로 초등교육기관밖에 없었다. 일제강점기 영주 지역은 중등교육 기회가 거의 불가능한 지역이었다.
2) 사립학교
조선총독부로부터 인가를 받은 사립학교는 1913년 9월 1일 정식 개교한 영주시 평은면 천본리에 있는 기독내명학교[평은국민학교 내명분교장] 뿐이다. 그 밖에 비인가로 세워진 학술 강습회, 서당, 야학, 각종 사립학교 등 다양한 형태의 사립교육기관이 영주 지역의 민족교육, 문맹 퇴치, 계몽운동을 주도했다. 1920년대 세워진 근대적 교육기관으로는 영주강습회[영주군 영주면 영주리 성밑마을, 1924], 용상학술강습회[용상교회 내], 기독교여자야학회[현 영주제일교회 내, 1920년경], 영흥노동야학회[영주군 영주면 가흥리, 1920], 금계노동야학[영주군 풍기면 금계동, 1923], 영주부녀야학[영주공립보통학교 내, 1925], 신암야학[영주청년동맹 이산지부에서 영주군 이산면 신암리에 설립, 1928], 1930년대에는 농촌야학[영주군 풍기면 백동, 1939] 등이 있다.
[현대]
1. 초등교육기관
영주의 초등교육기관이 확산 된 시기는 해방 이후이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공립학교, 공립학교 부설 간이학교는 모두 6년제 국민학교로 전환되었다. 해방 직전 영주 지역 국민학교는 18개 교였다. 순흥국민학교, 풍기국민학교, 영주서부국민학교[전신 영천공립보통학교, 현 영주초등학교], 평은국민학교, 부석국민학교, 안정국민학교, 장수국민학교, 이산국민학교, 봉현국민학교, 적동국민학교[전신 문수공립보통학교 부설 조제간이학교, 현 문수초등학교], 단산국민학교, 오계국민학교, 창락국민학교, 운문국민학교, 봉현남부국민학교[전신 풍기공립보통학교 부설 유전간이학교], 상석국민학교, 배점국민학교, 영주동부국민학교가 있었다. 이 학교들은 모두 일제강점기에 설립한 공립초등교육기관이거나 공립초등교육기관 부설 간이학교들이었다. 이후 영주 지역에는 영주중앙국민학교[1945, 일본인이 다니던 영주소학교 후신], 내명국민학교[1946, 전신 사립내명학교], 옥대국민학교[1946], 풍기북부국민학교[1962], 영주남부국민학교[1963], 영주서부국민학교[1967], 영일국민학교[1973], 남산국민학교[1984] 등이 설립되면서 1990년까지 약 40여 개 초등교육기관이 있었다.
영주시는 1990년대 이후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초등학교도 폐교했다. 1991년 1개 교, 1992년 1개 교, 1994년 3개 교, 1995년 2개 교, 1996년 3개 교, 1999년 5개 교, 2001년 2개 교, 2007년 2개 교, 2008년 1개 교, 2011년 1개 교로 총 21개 교가 폐교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운문국민학교를 비롯하여 봉현남부초등학교, 창락초등학교, 평은초등학교 오운분교장·내명분교장·고현분교장·용혈분교장·영은분교장, 운문초등학교, 부석초등학교 상석분교장, 배점초등학교, 풍기북부초등학교 삼가분교장, 두월초등학교, 문수초등학교, 백룡초등학교, 문수초등학교 조제분교장, 옥대초등학교 마락분교장·좌석분교장, 구구초등학교, 안정남부초등학교, 장수초등학교 성곡분교장이 폐교되었다.
2019년 기준으로 영주서부초등학교, 영주초등학교, 영주중앙초등학교, 영주동부초등학교, 영일초등학교, 남산초등학교, 영주가흥초등학교, 영주남부초등학교, 부석초등학교, 옥대초등학교, 순흥초등학교, 풍기북부초등학교, 풍기초등학교, 봉현초등학교, 안정초등학교, 이산초등학교, 장수초등학교, 문수초등학교, 평은초등학교 등 19개 교가 있다.
2. 중등교육기관
1) 중학교
영주 지역민에게 중등교육의 기회가 확대된 시기는 해방 이후이다. 1946년 영주농업중학교, 1948년 풍기중학교, 1951년 영주중학교, 1951년 영주여자중학교, 1951년 영광중학교, 1951년 금계중학교, 1954년 소수중학교, 1954년 부석중학교, 1965년 영광여자중학교, 1968년 대영중학교, 1969년 동산여자중학교, 1977년 단산중학교 등이 면 단위로 세워지기 시작하면서 중등교육의 기회가 확산하였다. 2019년 현재 중학교는 11개 교[공립 6개, 사립 5개]가 있다. 공립중학교는 영주중학교, 영주여자중학교, 풍기중학교, 부석중학교[중학교 분교장], 단산중학교, 소수중학교, 사립중학교는 영광중학교, 대영중학교, 영광여자중학교, 동산여자중학교, 금계중학교이다.
2) 고등학교
영주 지역민들이 영주 지역 내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시기는 1950년대 이후부터이다. 1943년 세워진 영주농업학교가 1951년 8월 11일 영주중학교와 교육 기능을 분리하면서 영주농업고등학교로 명칭을 변경하고 농과 9개 학급을 설치하였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고등학교 교육이 시작되었다. 이후 1954년 영주여자고등학교, 1954년 영광고등학교, 1954년 풍기고등학교, 1966년 영광여자고등학교, 1972년 영주고등학교, 1973년 동산여자상업고등학교, 1981년 선영여자고등학교, 1982년 대영고등학교 등이 세워졌다. 2019년 기준으로 고등학교는 9개 교[공립 2개, 사립 7개]가 있다. 공립고등학교는 영주제일고등학교, 영주여자고등학교, 사립고등학교는 영광고등학교, 영주고등학교, 영광여자고등학교, 영주동산고등학교, 선영여자고등학교, 대영고등학교, 경북항공고등학교이다.
3. 대학교
영주 지역에서 최초로 대학교육이 시행된 시기는 1970년대이다. 1971년 경북전문대학교, 1981년 한국폴리텍Ⅵ대학 영주캠퍼스, 1991년 동양대학교가 설립되었다. 전문대학·국책특수대학·4년제 대학 등 다양한 형태의 고등교육기관을 갖추고 있는 경북 북부 지역의 대표적 교육도시가 영주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