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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구가 소장하고 있는 완의를 새긴 판각. 완의(完議)는 입의(立議)라고도 하는데, 종중, 가문, 계 등에서 제사, 묘소, 계 등 제반사항에 관하여 의논하고 그 합의된 내용을 적어 서로 지킬 것을 약속하는 문서이다. 완의로서 간단한 것은 한 장의 종이에 쓴 것도 있고, 두루마리에 쓴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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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강릉최씨가 성남시지역에 세거한 것은 3백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문정공 최수성(崔壽城)의 5대손 최윤득(崔胤得)[1710~1745]이 수원의 은행동에서 이거함으로써 세거지가 되었다. 최윤득의 증손 최창화(崔昌華)[1788~1858]가 선략장군 용양위 부사과를 지냈다. 최성규(崔聖圭)[1942년생]는 최윤득의 9대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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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결성장씨는 350여년 전부터 세거하기 시작했다. 결성부원군 장사(張楒)의 18세손으로 병조참판 겸 오위도총부 부총관을 역임하였으며 장씨 8관(八貫)의 족보를 10년간에 편찬한 장취오(張聚五)[1684~1770]가 그의 부친인 절충장군 장시서(張時瑞)[1653~1706]의 묘를 쓰고 서울에 살았다. 그후 취오의 장손 장이검(張履儉)이 광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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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성남시 수정구 상적동 노상리[옛골]에 김창환(金昌煥)[1924년생]의 10대조인 김두희(金斗熺)의 아들 김복경(金復慶)[1694~1774] 때부터 세거한 것으로 전하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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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성남시 수정구 창곡동의 창말[창곡(倉谷)]에 처음 정착하였다, 건원릉 참봉을 지낸 배한손(裵漢孫)[1564~1645]의 부친 배충과(裵忠果) 때 이주하여 대대로 살았다. 창말의 배수만(裵壽萬)[1922년생]은 그의 14대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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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국당공 월성부원군 이천(李蒨)의 후손이다. 이희종(李稀鍾)[1909년생]의 14대조 이배(李培)는 경기도 광주시 서부면 말미산에서 살던 중 마침 왜란을 당하여 왜놈을 잡아 말 두 필에 얽어매고 도망가다가 처치하고 평북 가산으로 가서 살았다. 그후 아들, 장손은 놔두고 두 손자를 데리고 다시 정림(定林)으로 와서 살다가 별세하자 대왕면 천곡(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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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중원구 도촌동 양짓말 또는 섬말[島村]이라고도 부르는데 양경공파의 정광환(鄭光煥)[1538~1610]이 경기도 고양시에서 이주하여 정착한 이래 자손이 세거하여 왔다. 정광환은 정운룡(鄭雲龍)의 차남으로 성남시내 도촌동, 고등동, 태평동 경주정씨의 파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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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에 화숙공파 최병서(崔炳序)[1916년생]의 13대조인 최덕지(崔德枝)[1628~1684]부터 자리를 잡고 세거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덕지의 손자 최삼곤(崔三崑)[1725~1780]은 무과에 합격, 첨정이었고, 증손 최완진(崔完鎭)의 3남 최홍량(崔弘良)[1808~1862]은 고금도 수군첨절제사어모장군 전라우수군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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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성남시 중원구 도촌동 중말에는 고려 말 이암(李嵒)의 손자이며 정몽주의 문인으로 태종을 도와 공신이 되고 세종 때에 좌의정을 지낸 이원(李原)[1368~1429]의 6세손 이오(李墺)가 병절교위로 서울에 살다가, 조정이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세거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는 양짓말 언덕에 느티나무를 네 그루를 심고 그의 호를 사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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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광을 시조로 하는 경기도 성남시의 세거 성씨. 광산(光山)은 현 광주광역시이다. 김흥광(金興光)을 시조로 하는 광산김씨(光山金氏)는 고려조에서 8대 평장사를 배출하고, 조선조에서 왕비 1명, 상신 5명, 대제학 7명, 청백리 4명, 공신 7명, 문과 급제자 265명을 배출하였다. 여말 선초에 김약채(金若采), 김약항(金若恒), 김약시(金若時)의 3형제 대에서부터 번창하기 시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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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광주이씨는 광주(廣州)의 토성으로 성남을 본관으로 하는 명문이다. 광주이씨의 중흥조라 할 수 있는 고려 말의 이당(李唐)은 광주의 아전을 지내다가 생원이 되었으며, 그의 아들 5형제가 모두 문과에 급제했다. 그 중 둘째아들 둔촌(遁村) 이집(李集)이 고려 말에 이색, 정몽주, 이숭인 등과 깊이 사귀고 고려가 망하자 현재 서울 강동구 둔촌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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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 응달말[음촌(陰村)]에 석성공파(石城公派) 김상용(金相龍)[1930년생]의 9대조인 통정대부 김대희(金大熙)가 정착한 이래 후손이 세거했다. 중원구 상대원동 사기막골에는 역시 석성공파의 후손 김진희(金震熙)가 처음 정착하여 9대째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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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잿너머 웃말에 나주정씨의 취락이 형성되었다. 병조판서, 좌찬성, 판중추부사를 역임한 정응두(丁應斗)[1508~1572]의 차남 고암 정윤희(丁胤禧)[1531~1589]는 이황의 문인으로 강원도관찰사를 지냈고, 그의 묘를 쓰고 후손이 세거하여 고암공파를 이루었다. 정윤희의 동생 정윤복(丁胤福)[1544~1592]은 도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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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에 음죽현감 홍사립(洪思立)의 아들 첨지 홍위(洪煒)가 1600년대 초에 정착하여 은거한 이래 후손이 세거하였으며, 익산군파에서는 홍학표(洪學杓)[1935년생]의 10대조인 홍창(洪昶)[1634~1698]이 처음 정착한 이래 세거하여 왔다. 중원구 도촌동 양짓말에는 승정원 우승지를 지냈고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적병이 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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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를 시조로 하는 경기도 성남시의 세거 성씨. 윤관의 증손자인 윤위(尹威)가 남원백에 봉하여지면서 남원윤씨의 시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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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덕수이씨는 고려시대 이돈수(李敦守)를 시조로 하고 있다. 조선조에 상신 7명, 대제학 5명, 호당 6명, 청백리 2명, 공신 4명, 장신 7명, 문과 급제자 105명을 배출하였다. 적은 인원수에 비하여 율곡 이이(李珥)와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등 훌륭한 인물을 많이 배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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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성남시 수정구 신흥2동 옹정촌(甕亭村)[독정리]에 정형운(鄭亨耘)이 최초로 거주하였다. 정형운의 손자 정대년(鄭大年)[1503~1578]이 신흥주공아파트 자리에 지은 정자가 있어, 옹촌의 ‘옹’자와 정자의 ‘정’자를 합쳐 옹정촌이라 불렀고, 그 일대 산을 옹정산이라 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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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문화유씨는 성남시에 7개의 세거지를 가질 정도로 많이 모여 산다. 수정구 단대동 논골[답동(畓洞)]에 문간공파 유용선(柳容善)[1930년생]의 8대조인 유함형(柳咸亨)이 정착한 이래로 그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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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구 도촌동 섬말에서 살던 성씨. 중원구 도촌동 섬말에 박성(朴性)이 이주하여 그 자손들이 세거함으로써 양짓말의 원주민이 되었다고 전해지며, 후에 갈현동에 이주하여 세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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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에서 대대로 내려오면서 살아온 사람. 그러나 이동이 심한 오늘날은 단순히 한 세대 이상을 살게 된 사람들을 통칭하여 부르기도 한다. 토박이는 ‘본토박이’의 준말로, 『국어대사전』에는 ‘여러 세대를 내려오면서 한 곳에 살아온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넓은 의미로 토박이는 유사 이래로 성남지역에서 태어나서 몇 대를 살아오거나 한 평생 또는 한 세대 정도를 성남지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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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 지역에서 동일한 인물을 시조로 하는 성들. 성(姓)이라는 것은 혈연적인 것을 말하고 씨(氏)는 지역을 뜻한다. 그러므로 ‘김해김씨’하면 김은 성이고 씨는 김해가 된다. 삼국시대의 시조들이 모두 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 성을 사용한 것은 삼국시대 이전이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통일신라시대까지도 성이 일반화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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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성주이씨 문열공파의 의금부도사 이징(李徵)의 4남 이창우(李昌遇)[1709~1772] 형제가 분당구 이매동에서 분가하여 이주한 이래 그의 9대손 이광섭(李光燮)[1937년생] 등 후손이 세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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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순천김씨는 통훈대부 상의원정 김사원(金嗣源)이 판교 널다리에 처음 정착한 이후 후손이 세거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김사원은 연안이씨 이근건의 사위로 처가 근처에 살았던 것이다. 중원구 여수동에는 김사원의 차남 김윤탁의 15대손 김봉연(金鳳淵)[1934년생]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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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한림공 안명세(安名世)의 후손이 수정구 심곡동에 이주한 후 세거하였으며, 해주목사 안종약(安從約)[1355~1424]의 장남 안구(安玖)가 정착한 이래 후손이 세거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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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신창군 맹석흠(孟碩欽)[1429~?]은 충청도병마절도사로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일등공신이 되어 신창군에 봉해졌고, 분당동 일대를 사패지(賜牌地 : 나라에서 하사한 토지)로 받아 맹씨네의 세거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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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안말[내둔토리(內屯土里)]은 조선 초의 대학자 권근(權近)의 손자이고 권제(權踶)[1387~1445]의 아들인 안양공(安襄公) 권반(權攀)[1419~1472]이 무진정(無盡亭)을 짓고 유람하던 곳이었다. 권반이 세조 12년(1466) 예조참판 겸 경기도관찰사를 겸직할 때 장자인 충훈부 도사 권괄(權佸)이 죽자 장지를 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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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송촌에 살던 성씨 정주목사 송수(宋壽)[1470~1518] 때부터 중원구 상대원동 송촌(宋村)에 살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송수는 광주이씨 광원군 이극돈[1435~1503]의 사위로 장인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는데, 이극돈이 생전에 사위를 자기 곁에 묻어달라고 해서 이극돈의 묘 옆에 장사지냈다는 것이다. 부인 이씨는 남편이 일찍 죽자 친정 근처에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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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여수동에 있는 평양조씨 묘역. 여수동 평양조씨 묘역은 고려 말, 조선 초의 인물 조견(趙狷)[1351~1425]의 묘를 쓰면서 조성되었다. 조견의 호는 송산(松山), 시호는 평간(平簡)으로 조선의 개국공신 조준(趙浚)의 동생이다. 조선왕조가 성립할 때에 그의 형 조준은 전제개혁 등 적극적으로 이성계 일파에 협력하여 개국공신이 되었으나 고려 말에 고위 관직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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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 지역의 역사. ‘성남지역’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는지, 그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이 지역이 한강으로 흐르는 탄천 주변의 비옥한 평야는 사람들이 살기에 적합한 지역이다. 실제로 여주시과 화성시, 광주시 도척(都尺) 등 인근지역에서 구석기가 발견되고, 서울 암사동, 하남시 미사동 등지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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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구 판교동, 운중동 일원에서 세거하고 있는 성씨 연안이씨는 조선조에 상신(相臣: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총칭) 9명, 대제학 7명, 호당(湖堂: 휴가를 얻어 독서에만 힘쓰게 한 제도) 10명, 공신 11명, 장신(將臣) 4명, 문과 급제자 261명을 배출하였다. 대표적인 인물은 세종대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 이석형(李石亨), 인조대에 좌의정을 지낸 이정구(李廷龜), 영의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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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숯골과 중원구 상대원동 보통골에서 살던 성씨. 수정구 태평동 숯골에 온수군(溫水君) 방운(方雲)의 15대손 관찰사 방순(方恂)이 처음 살았는데, 방순은 고려말 절의를 지킨 사람으로 동료인 이집(李集)과 더불어 숯골에 은둔하다가 붙잡혀 황해도 금촌에서 죽임을 당했다. 그의 묘는 전의 인하병원 자리에 부인과 합장되었다가 성남시 개발로 1969년 이장했다. 이장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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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 분당구 대장동에서 살던 성씨. 분당구 대장동에 최초로 자리잡은 우계이씨는 덕천군수 이인숙(李仁淑)의 차남 충좌위 부사정 이경연(李景衍)의 후손이 세거하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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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 수정구 복정동 기와말 일대에 살았던 성씨. 수정구 복정동 기와말 복정동사무소 일대에 홍문관 교리 원효렴(元孝廉)의 아들 원맹강(元孟康)이 원주에서 이주하여 정착함으로써 그의 자손이 세거하였다. 수정구 사송동 솔고개[송현리(松峴里)]에 도끼 정승으로 이름난 원두표의 아우 원두추(元斗樞)의 현손인 충문공 원경하(元景夏)[1698~1761]의 후손이 세거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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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여익(汝翼). 호조참판 유유(柳柔)의 손자이고, 첨지중추부사 유종선(柳從善)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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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인물. 본관은 진주. 자는 사창(士昌). 유지발(柳之發)의 장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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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남원. 자는 응명(應明). 윤돈(尹暾)의 차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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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숯골에 살던 성씨. 조선 초의 개국공신이며 영의정을 역임한 남재(南在)[1351~1419]의 자손이 수정구 태평동 숯골에 세거하였다. 태평동 남씨편은 임진왜란 무렵 의령남씨들이 마을을 이루기 시작하였는데, 광주이씨, 안동권씨, 순흥안씨 등이 사는 마을에 비하여 세도가 컸으므로 남씨들이 모여서 사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숯골의 지명도 조선조 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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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자정(子靜)이며 호는 녹창(鹿窓)이다. 태자첨사공파(太子詹事公派)로 이습홍(李襲洪)의 후손이며, 병조참의,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이인문(李仁文)[1425~1503]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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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성남 지역 출신의 문신.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고운(古雲), 호는 행촌(杏村)이다. 판밀직사사 감찰대부 세자원빈(判密直司事監察大夫世子元賓)인 이존비(李尊庇)의 손자이며, 철원군(鐵原君) 이우(李瑀)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박지량(朴之亮)의 딸이고, 부인은 우대언 홍승서(洪承緖)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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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성남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의. 이교헌(李敎獻)의 양자이다. 생부는 이교영(李敎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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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성남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회경(晦卿)이다. 아버지는 통정대부(通政大夫) 행돈령부도정(行敦寧府都正)을 지낸 이방협(李邦協)이고, 형으로는 이윤성(李潤成), 이윤영(李潤榮), 이윤신(李潤身) 등이 있고, 아우로는 이윤형(李潤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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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 이순신(李純臣)의 차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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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성남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자화(子和), 호는 음애(陰涯)이다. 참판 이극기(李克基)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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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년(선조 34)~1614년(광해군 6). 선조의 적자(嫡子). 어머니는 인목왕후(仁穆王后)로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 김제남(金悌男)의 딸이다. 선조의 열네 아들 중 유일한 정비 소생으로 왕의 특별한 총애를 받았다. 선조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공빈 김씨(恭嬪金氏) 소생의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였다. 그 뒤 정비 소생인 영창대군이 태어나자 세자를 바꿀 생각을 가졌지만 갑작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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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 미상. 조선시대의 인물 본관은 덕수. 군수를 지낸 이추(李抽)[1417~1463]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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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 분당구 구미동과 대장동에 살던 성씨. 분당구 구미동 골안에 처음으로 정착하여 집성촌을 형성하고 넘말에도 분가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 병조참판 이세선(李世選)의 3남 첨지 이하조(李夏肇)[1707~?]와 이세선의 장증손 도정 이방협(李邦協)의 4남 곡성현령 이윤명(李潤明)[1736~1179]과 이세선의 동생 이세연(李世延)의 손자 이의집(李義集)의 아들 청백리 이방좌(李邦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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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시조로 하는 경기도 성남 지역의 세거성씨. 전주이씨(全州李氏)는 조선시대 왕족으로서, 한양[서울]에서 가까운 성남의 29개 지역에 여러 분파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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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 분당구 동원동과 서현동 일대에 살던 성씨. 분당구 동원동 광주머내에는 군자감정 고광우(高光宇)의 아들 고원철이 해주에서 이주하여 살기 시작한 후 자손이 세거하여 집성촌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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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 수정구 복정동과 심곡동, 중원구 상대원동 등에 살던 성씨. 진주강씨는 성남시에 5개의 세거지를 가지고 있다. 수정구 복정동 안골[내곡(內谷)]은 마옥리(馬玉里)라고도 하며 그 남쪽에 최초로 진주강씨가 정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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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 분당구 율동에 살던 성씨. 분당구 율동의 서근배미에는 호조참판 유유(柳柔)의 차남 유종선(柳從善)[1519~1578]이 양주에서 이주하여 처음 정착한 후에 후손이 세거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동막골 묘하에 살아온 유씨는 유종선의 16대손 유희춘(柳熙春)의 고조부 때 큰말에 내려와 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큰말에는 유종선의 16대손 유희일(柳熙日)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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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을에 같은 본관을 가진 성씨끼리 함께 모여 사는 곳. 집성촌이란 동족마을이라고도 부르며 성씨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원시사회에서 씨족생활이 이루어지듯이 근대 도시사회로 발전하기까지 농업국가에서는 같은 씨족끼리 모여 살게 되어 있다. 우리 민족이 성(姓)을 가진 것은 아득히 먼 옛날이다. 그러나 왕족이나 귀족은 일찍부터 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천민이나 노예는 근대사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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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은행동 등에 살던 성씨. 중원구 상대원동 황촌(黃村)에는 황재남(黃再男)[1939년생]의 11대조인 황윤구(黃胤耈)[1607~1691]가 철원에서 이거하여 정착한 후 후손이 세거하여 황씨 촌락이 형성되었다. 은행동에도 세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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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중원구 성남동 일대에 살던 성씨. 분당구 삼평동 성내미[성남(城南)]에 최초로 정착하였다. 중원구 성남동에는 정흠의 10대손 정주호(鄭周鎬)[1923년생]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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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 분당구 율동과 백현동 일대에 살던 성씨. 분당구 율동 도랫말에 성종 때 좌찬성을 역임한 문정공 한계희(韓繼禧)[1423~1482]의 후손이 최초로 정착하였다. 서근배미에 한계희의 묘를 분당저수지 위쪽에 쓰고 이 일대를 사패지(賜牌地 : 나라에서 하사한 토지)로 받고 그 후손이 세거하면서 청주한씨촌을 형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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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나라에 충성을 다하는 신하. 성남시 지역은 조선시대 한성에 도읍한 이후에 많은 사람이 주거하게 되었다. 특히 수도에서 낙향하거나, 선조의 묘지를 쓰고 집성촌을 형성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은 유교를 숭상하는 국가로서 충효사상을 강조하였으므로, 역사적으로 충신, 효자를 많이 배출하였고, 성남 출신 인물로서 충신으로 이름을 날린 사람이 많다. 고려 이전의 인물이 기록으로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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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 광주에서 살다가 중원구 하대원동 웃말로 내려와 세거하는 성씨. 순수공파의 사온서령 윤이(尹伊)[1502~1576]의 아들 윤탁연(尹卓然)이 여산송씨 송맹경(宋孟璟)의 딸을 부인으로 맞으면서 처가 근처로 이주하여 10여대 살다가 일파는 해주, 광주로 갔다가 윤탁연의 13세손 윤병욱(尹炳旭)[1865~1927]이 선대의 고향으로 왔다. 윤탁연은 호조참판 겸 오위도총부 도총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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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적성에서 이주하여 수정구 산성동, 금토동, 창곡동 등지에서 세거하는 성씨 윤부(尹溥)[1934년생]의 8대조 윤심진(尹心震)의 후손이 세거한다. 윤심진의 후손 윤광연(尹光演)의 부인 정일당강씨(靜一堂姜氏)[1722~1832]는 여류시인으로 문집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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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구 백현동, 수정구 양지동 등지에서 세거하는 성씨. 분당구 백현동 아랫말에 호조참판 신명정(申命鼎)[1650~1698]의 차남 신함이 분당구 보평에서 분가하여 정착한 이래 자손이 세거한 것으로 전하여진다. 동양부원군 신순미(申順美)는 진사 신원(申援)의 6남이고 보평의 최초 정착자인 용인현령 신경일(申敬一)[1551~?]은 신원의 장남인 신준미(申遵美)의 장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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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춘을 시조로 하고 조계흥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성남시의 세거 성씨 평양조씨는 고려 후기 원의 간섭기에 일약 명문으로 부상하였는데, 조인규(趙仁圭)[1227~1308]가 몽골어 통역관으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판도첨의사사(判都僉議司事)의 수상 자리에 오르고 딸이 세자빈이 될 정도로 출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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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구 신촌동 담박골, 중원구 갈현동 독점말 등지에서 세거하던 성씨. 평택임씨는 성남에 4개의 세거지를 갖고 있다. 수정구 신촌동 담박골에 세거하였으나 비행장에 편입되었다. 중원구 갈현동 독점말에는 임희수(林熙洙)[1938년생]의 8대조인 임진구(林鎭九)[1688~1730]가 정착한 이래 자손이 세거하여 온 것으로 전해진다. 임진구는 통덕랑 임정운(林淨運)의 장남으로 광주 삼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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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성남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순(子順). 조부는 개국공신이고 영의정을 역임한 한상경(韓尙敬)이고, 아버지는 관찰사를 역임한 한혜(韓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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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구 서현동 된섬말에서 세거하는 성씨. 분당구 수내동 너머역말에 최초로 정착한 봉화현감을 지낸 봉화공 이장윤(李長潤)[1455~1528]은 성균관 대사성 이우(李堣)의 아들이다. 이장윤이 죽자 그의 손자 토정 이지함(李之函)[1517~1578]이 마을 뒤 영장산에 자리를 잡아 묘를 쓰고 그의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취락이 형성되어 한산이씨 집성촌을 이루었다. 너머역말은 일명 작은역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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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분당구 대장동 무두만이(舞頭滿以)에 오종환(吳悰煥)[1934년생]의 12대조인 오윤함(吳允諴)[1570~1618]의 묘를 쓴 후 그 후손이 세거하면서 오윤함의 호 월곡(月谷)을 따서 월곡공파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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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군정을 시조로 하고 윤경지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성남시의 세거 성씨. 해평윤씨(海平尹氏)는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시조는 윤군정(尹君正)으로, 고려 고종과 원종 때 벼슬이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수사공(守司公)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판공부사(判工部事)에 이르렀다. 해평윤씨 성남 입향조는 홍천현감 윤경지(尹敬之)[1604~1659]로 전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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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구 상적동 저푸리에 세거하던 성씨. 홍천용씨는 용달성(龍達成)[1912년생]의 10대조 용의생(龍誼生) 때부터 세거하였다. 용의생의 장남 용호강(龍鎬康)[1660~1732]이 조봉대부 장례원정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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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잘 섬기는 아들. 효 또는 효도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를 지배한 전통적인 규범으로서, 부모가 살아 계실 때 정성껏 모시는 것뿐만 아니라 돌아가신 뒤에도 극진히 제사를 모시는 것 등을 포함한다. 역사적으로 유교사상이 전래되면서 효도가 강조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통일신라 경덕왕 때 아버지가 굶어 죽게 되자 자신의 살을 베어내어 들게 한 충청도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