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1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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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天主敎 |
영어공식명칭 | Roman Catholicism |
이칭/별칭 | 로마가톨릭교회,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한국천주교회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종수 |
[정의]
경기도 성남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분파.
[개설]
천주교는 각 지역마다 교구(敎區)라는 개별 공동체를 두고 있으며, 각 교구에는 교구장 주교를 중심으로 보좌주교, 총대리, 사무처 등의 조직을 갖추고 있다. 또한 각 교구 산하에 본당[성당]이 있으며, 각 본당에는 교구장 주교를 대리한 주임신부를 중심으로 사목회장, 사목협의회 등의 평신도 협의체가 조직되어 운영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왜란 때 일본군을 따라 조선에 온 예수회 소속 선교사인 세스페데스 신부에 의해 최초로 천주교가 전해졌다는 주장이 있다. 그렇지만 이 무렵에 천주교를 신봉한 조선 사람들은 포로로 잡혀 간 사람들이었으며, 국내에 있는 조선인이 천주교를 신봉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은 그보다 뒤의 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관점이다.
17세기 조선의 사신들이 중국을 왕래하면서 당시 중국에 진출해 있던 예수회 선교사들과 만나 서양의 과학 기구와 각종 서적들을 얻어 가지고 귀국하게 되는데, 이것이 서양 선교사들과 공식적으로 접촉하는 출발점인 셈이었다. 서양에 관한 서적이 들어오자 학자들, 특히 남인 학자들이 큰 관심을 가지고 이 서적들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이들 가운데 일부 소장 성리학자들은 마태오 리치 등이 저술한 한문 서학서(西學書)를 접하고 상당한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1784년(정조 8) 이승훈(李承薰)이 북경에 가서 영세를 받고 천주교 서적을 얻어 가지고 돌아와, 친구 이벽(李檗)에게 자신이 얻어 온 책들을 건네주고, 주변의 인물들에게 영세를 주기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천주교의 교리를 공부하고 영세를 받은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비로소 조선 천주교가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당시 사회의 신분 구조나 조상의 제사 등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인해 박해를 받으며 수많은 사람이 순교하기도 하였다. 종교상의 이유로 많은 사람이 죽은 것은 우리나라 역사상 전례가 없는 사건이었다.
1886년(고종 23) 한국과 프랑스 사이에 조약이 체결되고 난 후, 선교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천주교는 양적·질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오점을 남기기도 하였다. 광복 이후 한국의 천주교는 비약적으로 성장하였고, 특히 1960년대 초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계기로 천주교는 대사회적인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한편, 교회의 토착화 노력에도 힘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변천]
성남 지역에 천주교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천주교 전래 초기 탄압을 받을 때부터인 것으로 보이지만, 구체적인 사항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성남 지역 최초의 본당인 수진동성당은 1950년 4월 22일 백동[혜화동] 본당의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된 둔전말 본당의 후신이다. 처음 둔전말 본당은 경기도 광주군 대왕면 둔전리에 설립되었다가, 6.25전쟁으로 인해 초대 본당의 박지환 주임신부가 군종신부가 되면서 본당이 폐지되었다. 그 후 1962년 9월 17일 다시 본당으로 부활하였는데, 당시의 관할구역은 대왕면, 낙생면, 돌마면, 오포면[일부]이었으며, 신자 수는 약 1,000명이었다. 1963년에는 천주교 수원교구가 새로 설정되면서, 과거 천주교 서울교구에서 천주교 수원교구 소속 본당으로 변경되었다. 1971년 대왕면 지역이 군용기지로 수용되고 둔전말 일대 마을의 대부분과 성당이 모두 헐려 없어지게 되고, 성당은 현 위치로 옮겨지게 되었다.
당시 서울 청계천의 철거민과 이주민이 급격하게 이 지역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또한 1973년 광주군 중부면이 성남시로 승격하면서 천주교 신자들의 숫자도 날로 증가하게 되자 기존의 성당만으로는 신자들을 감당하기 어려워 새로이 단대동 본당을 신설하여 분리시켰다. 그 뒤 성남 지역에는 여러 본당이 새로 생겨났으며, 특히 1990년대 들어 분당 지역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이 지역의 본당들이 속속 생겨나게 되었다. 1950년 수진동성당이 설립된 이후, 1976년 단대동성당, 1979년 상대원성당, 1982년 성남동성당, 1984년 신흥동성당, 1993년 분당요한성당[현 분당성요한성당], 1995년 분당성마태오성당과 분당성마르코성당[현 분당야탑동성당, 1997년 이매동 성바오로성당[현 분당이매동성당], 1998년 은행동성가정성당, 1999년 태평동성당과 금곡동성당[현 분당성루카성당], 2003년 분당구미동성당, 2008년 도촌동성당, 2009년 동판교성당과 서판교성당, 그리고 위례신도시가 조성되면서 2016년 위례성데레사성당이 차례로 생겼다. 2021년에는 고등동성당이 들어섰다.
[현황]
2024년 7월 기준 성남시에는 18개의 성당이 있다. 성남 지역 성당에 소속된 천주교 신도 수는 도촌동성당 1,255명, 동판교성당 5,662명, 분당구미동성당 4,276명, 분당성루카성당 6,237명, 분당성마태오성당 1만 2447명, 분당성요한성당 1만 5387명, 분당야탑동성당 7,500명, 분당이매동성당 7,742명, 서판교성당 5,264명, 단대동성당 3,384명, 상대원성당 1,563명, 성남동성당 3,636명, 고등동성당 972명, 수진동성당 1,258명, 신흥동성당 2,694명, 위례성데레사성당 5,778명, 은행동성당 1,462명, 태평동성당 1,079명 등 총 6만 2143명으로, 성남시 전체 인구 91만 6615명의 약 6.8%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