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천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에 있는 자연마을.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울진현의 고산성(古山城)을 공격하기 위하여 이 마을에서 가무단으로 하여금 노래와 춤판을 벌이게 하였다. 고산성을 방어하던 조선군의 시선이 가무단에 쏠린 틈을 노려 왜군은 산성 반대편의 북문을 공략하기 위함이었다. 이 때부터 마을을 가무원(歌舞原)이라 하였고, 그 뒤 마을을 둘러싼 산세와 지세가 아름다워...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에 있는 조선 전기 산성. 고산성 일대에는 산성이 위치해 있는 고성리의 지명과 더불어 산성의 북쪽에 있는 ‘산성교’, 성 아래 마을인 ‘성밑’, ‘성저동’, ‘성안’ 등 산성과 관련된 지명이 많이 전한다. 고산성에 관한 문헌 자료를 보면, 지금의 울진읍내에 있었던 고읍성이 왜구의 침입으로 불타버리자, 한성판윤 장순열(張巡...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에 속하는 법정리. 이곳에 있는 고산성(古山城)의 이름을 따서 지금의 이름으로 되었다. 1431년 경에 울진장씨(蔚珍張氏)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본다. 본래 울진군 상군면의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구만동(九萬洞)·청고동(靑皐洞)·성저동(城底洞)·가원동(可原洞)의 일부 지역이 통합되어 고성리로 개편되었다. 고성리는 고성1...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고려 후기의 읍성지. 고읍성에 관한 문헌 사료의 기록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재현동오리(在縣東五里)’라 하여 당시 시점을 고산성(古山城)에 읍치를 두고 구 읍지로서 울진읍성[고읍성]을 바라보았다. 둘째, 고읍성의 둘레는 1,210척으로 기재되어 있다. 1,210척을 당시의 교정 척도로 환산하면 약 377m이다...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1리에 있는 고파현의 유래를 담은 이야기. 고파현의 동쪽은 국도 7호선 너머에 울진읍 읍내리가 있고, 서쪽은 청고동이 있으며, 남쪽은 남대천 건너에 월변동이 있다. 북쪽에는 산성이 있으며 성저동과 접해 있다. 고파현은 고파목[古坡峴]·구만리(九萬里)·청고개[靑皐峴]라고도 한다. 2001년에 울진군청에서 간행한 『울진군지』에 채록 내용...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을 흐르는 내[川]가 넓어 보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1650년 경에 김녕김씨(金寧金氏)가 들어와 마을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본다. 본래 평해군 근서면 지역으로서, 1916년 4월 1일 도계리(陶溪里)와 광곡리(廣谷里)가 통합되어 광품리로 개편되었다. 광품리는 광품1리와 광품2리 두 개의 행정리로 분리되어 있다....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삼달리에 있는 산. 조선시대 중엽 충주지씨가 이곳에 처음으로 정착하여 살고 있을 때는 지명이 없었으나 그 후 광맥 조사차 이곳을 왕래한 지질학자들이 쇠가 많이 매장되어 있다고 하여 금곡(金谷)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으며, 광산은 근래에 폐광되었다. 평해읍의 서쪽으로 200m 정도의 낮은 구릉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로 삼달1리의 주산이다....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금천리에 있는 삼국시대 유물산포지. 평해읍에서 국도 7호선을 따라 가다 남대천을 건너 지방도 924호선을 따라 백암온천으로 가는 국도 88호선으로 가기 직전에 군도를 따라 직진하면 금천리로 가게 된다. 금천리 유물산포지는 금천3리 노느실마을에 조금 못 미쳐 동쪽에 있는 해발 156m 정상에서 남서로 뻗은 구릉에 위치한다. 구릉의 앞으로는...
-
통일신라시대 울진 지역을 식읍으로 받아 지배권을 행사한 진골 귀족. 원성왕(元聖王)의 즉위와 김주원의 명주 퇴거는 무열왕계에서 부활 내물왕계로 왕권이 실질적으로 넘어가는 시점으로, 이때부터 사실상 신라 하대가 전개되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명주로 퇴거한 김주원은 명주군왕(溟州郡王)에 봉하여지고 아울러 강릉 등 인근 지역을 식읍으로 받아 지방의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함으로...
-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누각과 정자.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누정조」에서는 누정을 누(樓)·정(亭)·당(堂)·대(臺)·각(閣)·헌(軒) 등을 총칭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흔히 누각과 정자를 총칭하는 누정은 누관(樓觀)이라고도 하며, 대개 높은 언덕이나 돌 혹은 흙으로 쌓아올린 대 위에 세우기 때문에 대각(臺閣) 또는 누대(樓臺)라고도 한다...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 산성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유교 사당. 도통사는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에서 남대천을 따라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불목이골로 접어들어 고산성의 옛 터에 못 미쳐 위치하고 있다. 1924년 신안주씨(新安朱氏) 울진 문중에서 선조인 문공(文公) 주희(朱熹)의 성덕을 기리고자 영당(影堂) 봉안(奉安) 문제를 논의하였다. 1932...
-
1975년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에 건립된 조선 중기 주세창이 세운 독송정을 기념하는 비.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 청고동 독송정 터에 있는 유허비이다 비석을 세운 이는 종손인 주장환(朱章煥)과 외손인 손등구(孫䓁鳩)이며, 비문을 지은이와 글씨를 쓴 이는 전원식(田元植)과 정문석(鄭文錫)이다. 1973년에 비문이 완성되고, 1975년 4월에 건립되었다. 조선...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두천리를 흘러 하당리에서 남대천으로 유입하는 하천. 두천리를 흐르는 하천이라서 두천천이라 한다. 두천천은 두천리와 금강송면 소광리의 경계가 되는 산지에서 발원하여 안말래를 지나 북류하여 말래를 거쳐 동류하여 하당리에서 남대천에 유입되는 남대천의 상류 지천이다. 두천천 유역은 산간 지역이며 하류 하천변에 약간의 농경지를 이룬다....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온정리에 있는 산. 영봉에 흰바위로 이루고 있어 밝맡이란 영암(靈岩)의 뜻으로 백암산이라 하며, 천혜의 보고로 많은 전설이 전해지는 명산이다. 울진군 온정면 온정리 백암온천의 서쪽에 자리잡은 백암산은 백두대간의 낙동정맥에 속한 산으로 산체가 크고 넉넉하며 계곡 또한 깊어 낙동강으로 흐르는 반변천과 동해에 유입되는 평해 남대천의 수원지이기...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온정리에 있는 온천. 울진군 온정면 온정리에서는 백암온천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하고 있다. 신라시대 한 사냥꾼이 창에 맞은 사슴을 쫓다가 날이 저물어 포기하였다. 그 이튿날 다시 사슴의 행방을 찾아 근처를 헤매던 중 사냥꾼은 상처를 치유한 사슴이 도망가는 것을 보았다. 이를 이상히 여긴 사냥꾼은 사슴이 누워 있던 자리에서 뜨거...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에 속하는 법정리. 상달·중달·하달의 세 마을을 합쳐 불러 지금의 이름으로 되었다. 본래 평해군 상리면(上里面)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4년 4월 1일 울진군 평해면에 편입되고, 1916년 하달리·상달리·중달리의 각 일부 지역이 통합되어 삼달리로 개편되었다. 1944년에는 삼달리가 삼달1리와 삼달2리로 분리되었고, 1980년 12월 1일...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소태리에 있는 시대 미상의 각석문. 마애각석(磨崖刻石)으로도 불리는 각석문(刻石文)은 바위나 절벽에 새겨진 글씨로 금석문의 일종이다. 각석문은 대부분 지명이나 건축물 등과 관련된 것이 많다. 주로 마을 입구의 큰 바위에 새겨져 지명을 알리거나 명승지에 그 경치와 어울리는 이름을 새기기도 하고, 불경과 관련된 구절을 적어 두기도 한다. 또한 어떤 일...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사계리와 상당리에 있는 봉우리. 가마솥의 발 같이 분수령이 3개가 있으므로 ‘쇠치봉’이라 하였다. 또한, 뾰족하고 높다고 하여 시치봉·정치봉(鼎峙峰)으로도 일컬어지는데, 쇠치봉 아래에 물맛이 좋은 샘이 있어 선질꾼들이 돌을 괴어 놓고 밥을 해 먹고 가기도 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서쪽에는 구수곡자연휴양림이 있고, 남쪽은 남대천이 흐르고 있으며...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에 있는 산. 북쪽은 평해리, 동쪽은 월송리와 바다가 보이며, 서쪽은 학곡리와 멀리 광품리가 접하고 있다. 청학산 사이에는 평해평야가 있으며, 남대천이 동쪽의 동해로 흐르고 있다. 청학산과 남대천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산으로 평해읍의 시가지 건설로 대부분의 산이 크게 훼손된 상태이다....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학곡리에 있는 동굴. 청학산에 있는 동굴로서 울진 성류굴과 상통되어 있다는 전설이 있다. 영치굴이라고도 한다. 동쪽으로 바깥멋질과 인접해 있으며, 북쪽으로는 멀리 평해리가 있고 그 사이에 남대천이 동쪽으로 흐르고 있다. 청학산에 위치한 자연 동굴로 아직까지 탐사된 바가 없다. 인근에서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현재 동...
-
경상북도 양산시 온정면 온정리에 있는 조선시대 산신제를 지내던 신당. 온정리 양남아에서 서쪽 독점골로 올라가는 길 옆 개천변에 있다. 온정리 양남아 산신당은 당목, 선돌, 제단, 담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느티나무 네 그루 앞에 이단으로 시멘트 제단을 조성하였고, 제단 위편에 작은 선돌을 세웠다. 장방형의 화강암인 선돌에는 접은 한지를 금줄로 묶어두었...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직산1리 저장리마을에 있는 바위와 연못의 이름과 관련하여 전해지는 이야기. 용과 관련된 이야기는 전국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다. 용이라는 상상의 동물이 지니는 신비함과 경이로움을 마을에 있는 바위나 연못에 투영시키고자 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응봉산 남쪽에서 발원하여 울진읍을 남동류하여 동해로 유입하는 하천. 평해읍에도 남대천이 있어 울진 남대천이라 부른다. 남대천은 응봉산 남쪽에서 발원하여 남동류하여 북면 하당리를 지난 후 울진읍으로 들어와 비래봉산 부근에서 동해로 유입한다. 남대천은 왕피천과 광천 다음으로 큰 하천이다. 남대천의 길이는 25㎞이며, 하곡은 감입곡류...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의 남대천 위에 있는 다리. 울진(蔚珍)은 신라의 김유신(金庾信)[595~673] 장군이 산림이 울창하고 금은보화가 많이 나는 곳이라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울진교는 울진군에 건립되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길이 205m, 총 폭 11.7m, 높이 3.5m이다. 차도의 폭은 10.2m이고, 차선 수는 총 2차선이다. 경간(徑間)...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수산리에 있는 분뇨 수거 처리장. 경상북도 울진군 내에서 나오는 분뇨를 수거하여 분뇨에서 나는 악취 제거 및 환경 오염을 예방하기 위해 총 사업비 3,211백만 원을 들여 준공하였다. 울진군 위생처리장의 부지 면적은 6,959㎡[2,105평]이며 1986년 12월 31일부터 1988년 11월 7일까지 약 2년간의 사업 기간을...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거일리에 있는 울진대게의 유래를 알리기 위해 세운 기념비. 울진대게유래비가 있는 거일마을은 과거 대게잡이 배들이 출항하는 항구로서의 역할을 하였다고 알려졌다. 거일마을은 게 알에서 지명이 유래하였다고 전해지며, 거일마을에서 25㎞ 떨어진 왕돌잠 등으로 말미암아 과거부터 대게의 집산지로 알려진 곳이다. 대게의 원산지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 남쪽의 남대천과 북쪽의 황보천 사이에 형성된 평해읍 월송리 일대는 동쪽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며, 서쪽은 해발 90m의 산에서 동해로 뻗은 낮은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월송리 민무늬토기산포지는 월송1리 달효마을에 있는 월송초등학교의 남쪽 밭 일대에 있다. 현재 밭으로 경작되고 있는 곳에 민무늬토기편들이 흩어져...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에 속하는 법정리. 울진 읍내 남쪽이 되므로 읍남리라 하였다. 본래 울진군 하군면(下郡面)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상토동(上吐洞)·하토동(下吐洞)·지로동(旨老洞)·공세동(貢稅洞)과 상군면의 일부 지역이 통합되어 읍남리로 개편되었다. 읍남리는 읍남1리, 읍남2리, 읍남3리, 읍남4리 네 개의 행정리로 분리되어 있다....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남리에 있는 삼국시대 유물산포지. 국도 7호선을 따라 울진 읍내로 가다 보면 왕피천을 건너고 다시 남대천이 나온다. 남대천을 건너면 바로 동쪽 말루동마을 뒤에 바다와 인접한 해발 67m의 능선이 남북 방향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다. 읍남리 유물산포지는 이 구릉 일대에 위치한다. 해안과 인접한 해발 67m의 구릉 정상부를 중심으로 소나무와...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남리에 있는 조선 말기 상류 주택. 울진읍 동남쪽 600m 지점의 뒷산골에 남아 있는 ㅁ자형 주택이다. 뒷산골은 서쪽 산 너머로는 남대천, 동쪽 산 너머로는 동해와 접해 있는 산간 마을이며, 남쪽으로는 남대천과 동해까지 이어지는 곡간 경작지가 있다. 울진 지역의 상류 주택의 면모를 파악할 수 있는 ㅁ자형 정침을 비롯해 두지,...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남리 샛골에 있는 겹집. 읍남리 뒷산골은 울진읍에서 1.0㎞ 가량 떨어진 지점으로, 이곳은 남대천과 동해 사이에 형성된 나지막한 야산 골짜기이다. 민가는 이 골짜기를 따라가면서 드문드문 민가가 들어서 있다. 읍남리 유영숙 가옥 서쪽에는 읍남리 유상욱 가옥이 있고, 남쪽으로 조금 내려간 지점에 샛골이 있다. 읍남리 유영숙 가옥...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남리에 있는 조선시대 ㅁ자형 상류 주택. 울진읍 읍내리 남동쪽의 포장길로 남대천변 동쪽 산을 넘어가면, 남북으로 길쭉하게 뻗어내린 야산 사이로 뒷산골이 있다. 뒷산골은 곡간 경작지로 뒷산골 남단 산록에 읍남리 유한우 가옥이 있다. ㅁ자형 정침 전방에 아래채를 비롯한 건물 2동이 더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유한우는 유상욱의 6...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에 속하는 법정리. 울진군청이 있으므로 읍내라 하였다. 본래 울진군 상군면의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구만동(九萬洞)·청고동(靑皐洞)·성저동(城底洞)·가원동(可原洞)의 일부 지역이 통합되어 고성리로 개편되었다. 본래 울진군 하군면(下郡面)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옥계동, 홍시동, 월변동과 선제동 일부 지역이 통합...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성황신을 모셔놓은 신당.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속한 주요 자연마을은 옥숙동·옥계동·홍시동이다. 옥계동은 읍내리 중앙으로 흐르는 남대천 물이 구슬처럼 맑다 하여 부르게 된 이름이란 설과, 옥계서원(玉溪書院)이 있었기에 부르는 이름이라는 설이 전해 오고 있다. 읍내리 홍시동은 옛날 이 마을에 정려(旌閭)의 홍살문이...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2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읍내리 홍시동 동제는 읍내리의 홍시동(紅矢洞)[읍내2리]에 있는 성황사에서 매년 정월 15일 자시(子時)에 주민들이 지내는 성황 제사이다. 홍시동은 옛날 이 마을에 정려(旌閭)의 홍살문이 세워졌던 곳이라 하여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울진교(蔚珍橋) 일대 지역의...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호월리에 있는 1901년 장주신이 세운 정자.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호월리 무월동 왜고개[瓦峴] 못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일우정 아래로 남대천 맑은 물이 흐르고, 서쪽은 단풍산, 북쪽은 고두박대, 동쪽은 들판 위쪽으로 산성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1901년(고종 38) 의관(議官) 장주신(張柱臣)이 세웠으며, 풍광이 좋아 예로부터...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건립된 조선 말기 전병모·전술모 형제의 효자비. 전씨형제 효자비는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 화구마을의 전병모·전술모 형제의 효자비이다. 전술모의 자(字)는 문칙(文則)이며, 호는 송은(松隱)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사서(沙西) 전식(全湜)의 후예이며, 아버지는 가선대부 전종복(全宗復)이다. 전술모는 경전과 역사책에 능하고 글을 잘...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에 속하는 법정리. 정림사가 있었으므로 정림동 또는 정촌이라 하였다. 본래 울진군 상군면(上郡面)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장사동(長沙洞)·박금동(拍琴洞)과 원북면의 당가동(唐街洞)·두정동(斗井洞)의 일부 지역이 통합되어 정림리로 개편되었다. 정림리는 정림1리, 정림2리, 정림3리 세 개의 행정리로 분리되어 있다....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조금리에 있는 조선시대 각석문. 마애각석(磨崖刻石)으로도 불리는 각석문(刻石文)은 바위나 절벽에 새겨진 글씨로 금석문의 일종이다. 각석문은 대부분 지명이나 건축물 등과 관련된 것이 많다. 주로 마을 입구의 큰 바위에 새겨져 지명을 알리거나 명승지에 그 경치와 어울리는 이름을 새기기도 하고, 불경과 관련된 구절을 적어 두기도 한다. 또한 어떤 일을...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조금2리 상조금마을에서 마을 수호신에게 지내는 동제. 조금리는 마을이 옥녀가 북과 가야금으로 노래를 부르는 형상이라는 데에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금2리 상조금마을은 백암산에서 발원한 평해 남대천의 상류에 위치한 산간촌락이다. 이 마을은 ‘황씨 터전에 박씨 배판에 손씨 골맥이’라 하는데, 현재에도 평해황씨, 영해박씨, 밀양손씨가 주민의...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조금리에 있는 조선시대 유물산포지. 평해읍에서 국도 7호선에서 남대천을 건너 지방도 924호선을 따라 백암온천 입구에서 남쪽으로 남대천의 상류를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온정면 조금리 하조금마을이 나온다. 여기서 좀더 내려가면 서쪽으로 조금리 상조금마을이 나온다. 상조금마을에서 하조금마을까지는 매우 긴 충적대지가 형성되어 있다. 조금리 유물...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조금리에 있는 조선 말기 온돌 중심형 6칸 겹집. 백암온천지구가 있는 소태리에서 남대천변의 남쪽 포장길로 3.5㎞ 가량 들어간 천변 산록에 하조금마을이 있다. 이곳은 남대천을 따라 소태리, 온정리, 조금리를 거쳐야만 들어갈 수 있는 산간 오지이다. 하조금마을은 천변, 또는 골짜기 입구나 산록에 띄엄띄엄 작게는 서너 채, 많게는 20여 호...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조금리 하조금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온돌 중심형 10칸 겹집. 울진군 온정면을 관통하는 남대천을 따라 크고 작은 마을들이 띄엄띄엄 산촌을 이룬다. 조금리 이원재 가옥은 온정면에서도 산간 오지로 알려진 조금리 하조금마을 남단의 뒤쪽에 위치한다. 백암온천지구가 있는 소태리에서 남대천을 따라 3.5㎞ 가량 들어간 천변 산록에 하조금...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조금1리 하조금마을에서 마을 수호신에게 지내는 동제. 남대천의 하류에 위치한 조금1리 하조금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10월 15일에 마을 제사를 지내고 있다. 하조금마을은 ‘장씨 터전에 황씨 골맥’이라 하여 이 두 설촌조를 수호신으로 모시고 있다. 하조금마을의 신당은 당목인 느티나무 숲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은 여러 그루의 느티...
-
조선 왕실은 자녀가 태어나면 태실(胎室)을 조성하여 태(胎)를 땅속에 묻었다. 이때 땅 속에 뚜껑을 갖춘 돌로 만든 태함(胎函)을 마련하고 그 안에 태를 담은 백자 항아리와 생년월일 및 태를 묻는 날을 새긴 태지석(胎誌石) 등도 함께 묻었다. 태실 앞에는 태비(胎碑)를 새웠으며, 태봉산을 지키는 사람을 두었고, 태봉의 둘레 일정 구역을 함부로 범하지 못하도록 금표(禁標)...
-
경상북도 울진군 지역에서 나타나는 지표면의 기복 및 모양이나 형태. 1. 하구 충적평야 울진군 내에는 태백산맥의 서사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넓은 충적평야는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일부 하천[왕피천·남대천] 하구 부근에서 소규모 충적평야가 발견될 뿐이다. 이 충적평야들은 약 6,000년 전부터 현재까지 해면이 지금 높이에서 비교적 안정되었을 동안에...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에 있는 산. 한 군수가 평해의 안산인 이 산의 산세를 보고 학처럼 보인다고하여 그 뒤부터 청학산(靑鶴山)이라고 부르고, 체학산(滯鶴山)이란 이름은 항상 학이 머물러 있는 듯하다고 하여 유래한 명칭이다. 청학산 앞쪽인 북쪽은 평해성터의 자리가 보이고, 바로 앞은 남대천이 흐르며, 평해평야가 펼쳐져 있다. 동쪽은 직산리와 접하고 서쪽...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에 있는 주경안과 관련한 석단(石壇) 터. 충효당(忠孝堂) 주경안(朱景顔)이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산봉우리에 돌로 단(壇)을 만들고 7년 동안 매일 새벽 닭이 울 때 그 위에서 아군이 승리하기를 하늘에 기원하였던 데서 축천대(祝天臺)라 하였다. 동쪽으로는 국도 7호선이 뻗어 있고, 남쪽으로는 남대천(南大川)이 흐른다....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삼달리에 있는 봉우리. 태봉에 조선 선조 때 왕실 아지(阿只)[신생아를 높여 부르는 말]의 태반을 묻은 태실이 있었다 하여 태봉이라고 불렸다. 1979년 경주이씨 문중에서 제단을 세우기 위하여 굴토 작업을 하던 중 발견된 석극(石亟)이 사방 20㎝ 정도이고 석판에 “대명○○년 ○월 ○일의 태”라고 음각한 석판이 발견되었다. 1608년(선...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광품리에서 팔선대와 광품폭포에 관련되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팔선대와 광품폭포는 온정면 광품리의 남대천 중류에 위치하고 있는데, 물이 맑고 산세가 매우 빼어난 곳이다. 이곳에 선녀 8명이 내려와 목욕을 하였다 하여 ‘팔선대’라 하고, 이를 시기한 용이 꼬리로 치자 바위가 두 동강 나면서 생긴 자연 폭포를 ‘광품폭포’로 명명했다고 전해지...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지표면이 평평하고 넓은 들. 울진군 내에는 태백산맥 서사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넓은 충적평야는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일부 하천인 왕피천과 남대천 하구 부근에서 소규모의 충적평야가 발견될 뿐이다. 울진군은 방사성탄소(C14) 약 6,000B.P[연대측정 결과를 현재로부터 기산(起算)한 연대로 나타낼 때 사용하는 Before Pr...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백암산[1,003m] 남쪽에 있는 삼승령[747.3m] 등에서 발원하여 평해읍 동해로 흘러드는 하천. 평해 남대천은 울진군의 다른 하천처럼 감입곡류를 하고 있는데, 특히 온정면 도계리에서 평해읍 삼달리 사이가 전형적인 감입곡류의 하천이다. 온정면 광품리에 있는 광품폭포는 곡류하던 유로가 절단되면서 형성된 천이점(遷移点)이다. 하류 구간은...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의 남대천 둔치에서 매년 음력 5월 5일 단오에 열리는 민속축제. 단오는 예부터 설, 한식, 추석과 함께 우리 민족의 4대 명절에 해당하여 지역마다 다양한 행사를 하였다. 특히 이즈음이 모내기 등을 마친 시점이라 마을 단위의 행사는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기풍제의 성격이 컸다. 평해 남대천 단오제는 1984년부터 울진군 평해읍청년회가 주관하는 행사로...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 남대천 위에 있는 다리. 평해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옛 지명으로 757년(경덕왕 16)부터 사용되었다. 평해교는 평해리(平海里)에 건립되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길이 230.9m, 총 폭 12.3m, 높이 2.3m이다. 차도의 폭은 10.3m이고 총 차선 수는 2차선이다. 경간(徑間) 수는 9개, 최대 경간 폭은 25.6m이다. 설...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에 있는 삼국시대 유물산포지. 유물산포지는 유물 조각들이 흩어져 있는 곳으로 일정한 시기에 사람이 살았을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는 곳을 가리키는 고고학적 용어다. 남대천을 앞쪽에 둔 평해읍 평해리는 남쪽에 넓은 충적대지인 평해들을 두고 서쪽과 북쪽에는 해발 50~70m의 산에서 동쪽 남대천으로 뻗은 낮은 구릉들이 형성되어 있다. 평...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에 있는 고려 후기 석축 읍성. 『관동읍지(關東邑誌)』와 『울진군지(蔚珍郡誌)』에서는 선덕왕 갑인(甲寅)에 석성(石城)으로 시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선덕왕 때에는 갑인이라는 간지가 없어 정확히 연대를 알 수 않다. 『여도비지(輿圖備志)』와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축성 연대를 고려 말로 기록하고 있다. 1357년(공민왕 6)...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하당리에 있는 고려시대 자기 가마 터. 북면 하당리에서 자기 가마 터가 지표 조사됨에 따라 하당리 요지라고 하였으며, 하당리 요지의 조성 시기와 수급에 관하여 전하는 문헌 기록은 없다. 단지, 지표 조사 당시 채집된 상감청자 편과 자기 편을 근거로 볼 때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조업하였던 유적으로 추정된다. 하당리 요...
-
경상북도 울진군 지역에서 육지 표면의 자연 수계를 따라 물이 흘러 형성된 물길과 계류. 울진군 하천의 대부분은 감입곡류 내지 감입 하천의 형태를 띠고 있다. 감입곡류 하천(嵌入曲流 河川)이란 기반암을 하각하면서 곡 사이를 곡류하는 하천을 지칭하며, 지반 융기와 관련하여 발달한 하천이다. 감입곡류 하천은 다시 하곡의 형태적 특성에 따라 굴삭곡류(堀削曲流)와 생육...
-
불영계곡과 왕피천은 천혜의 비경과 자연을 지닌 울진군이 그 중에서도 가장 자랑하는 청정 지역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이 일대는 곳곳에 협곡과 유려한 지형 경관을 갖추고 있으며 오랜 세월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멸종위기종·보호종 등 야생 동물들이 서식할 수 있었는데, 특히 1~2급수에서만 사는 멸종위기종인 한둑중개가 서식하고 있다. 또한 울진의 대표적인 금강...
-
1945년 8월 15일 이후의 경상북도 울진군의 역사. 울진군은 1945년 해방 이후 강원도에 소속되어 있었다. 울진군은 6·25전쟁 과정에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였으며, 1959년 9월 11일 사라(Sarah)호 태풍의 영향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 1962년 11월 21일 강원도에서 경상북도로 관할도가 이전되었다. 1968년 11월 2일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호월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정자. 울진군 울진읍 용저동 호미봉 서쪽 산자락에 아래의 남대천변에 자리 잡은 산촌마을인 장예마을에 있는 정자이다. 호계정은 남대천을 따라 난 지방 도로변의 산록 경사지에 있다. 울진장씨 직장공파(直長公派) 문중에서 조상을 숭배하고, 종중(宗中)의 친목을 도모하며, 학문을 강의하기 위하여 1932년에...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호월리에 있는 산. 용저리마을 앞산이 범의 꼬리와 흡사하다 하여 호미산이라 한다. 또한, 범의 형상을 한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이 나올 수 있는 산이라 하여 호명산(虎明山)이라고도 한다. 호미산의 동쪽은 명도리가 있으며, 서쪽은 정림리가 접해 있고 남쪽에는 호월1리와 남대천이 흐르고 있으며, 북쪽은 화성리와 인접하고 있다....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에 속하는 법정리. 1396년(공민왕 19)경에 울진장씨(蔚珍張氏)가 들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본래 울진군 상군면(上郡面)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무월동·와현동·고원동과 용당동 일부 지역이 통합되어 호월리로 개편되었다. 호월리는 호월1리, 호월2리, 호월3리 세 개의 행정리로 분리되어 있다. 호월리에는 전동산(全...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호월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호월리 고인돌은 세천이 남대천으로 흘러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한다. 호월교를 지나면 바로 오른쪽에 장니골교가 있다. 고인돌은 장니골교 입구 왼쪽에 자리한 북쪽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린 산 구릉의 기슭에 위치한다. 고인돌은 기반식으로 덮개돌은 크기가 300×230×70㎝이며, 형태는 평면이 타원형이고 단면은 우산...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호월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옹기 가마 터. 울진읍 호월리에서 옹기 가마 터가 지표 조사됨에 따라 호월리 요지라고 하였다. 호월리 요지의 조성 시기와 수급에 관하여 전하는 기록 문헌은 없으나, 지표 조사 당시 채집된 옹기 편을 근거로 일제강점기에 조업하였던 유적으로 추정하고 있다. 호월리 요지는 울진읍 호월리 와현마을 내에 있는데...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호월리에 있는 조선시대 유물산포지. 포항에서 국도 7호선을 타고 울진으로 가다가 울진 읍내에 들어가기 전 남대천 위에 만들어진 울진교에서 내려 남대천의 북안을 따라 상류쪽으로 가다보면 남대천이 심하게 곡류하는 곳의 북쪽에 호월1리가 나온다. 호월리 유물산포지는 호월1리 무월마을의 서쪽에서 남대천쪽으로 길게 뻗어내린 해발 40m 전후의 얕...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호월리에 있는 조선 말기 가옥. 울진읍에서 북쪽으로 3㎞ 가량 떨어진 호월리 무월동 안쪽에 있다. 무월동은 남쪽으로 남대천과 인접해 있고, 서쪽과 북쪽은 나지막한 마을 뒷산을 등지고 천변 평야인 무월들을 바라보며 집들이 들어서 있다. 정침은 60여 년 전에 내부 수리를 했고, 월호당도 67년 전에 부분적으로 구조를 변경했다....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화방동(花坊洞)과 성내동(城內洞)에서 ‘화(花)’자와 ‘성(城)’자를 따 ‘화성(花城)’이 되었다. 1515년(중종 10)경에 영양인(英陽人) 남수정(南守貞)이 들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울진군 근북면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용장동(龍場洞)·감대동(甘大洞)·범상동(凡祥洞)·성내동·...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황보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 국도 7호선을 따라 남대천을 건너서 평해읍에서 기성면으로 가다 보면 황보천이 나온다. 황보교를 건너 서쪽으로 하천을 따라가면 금강들과 메기들 사이로 해발 60m 정도의 얕은 구릉이 두 갈래로 갈라져서 황보천으로 뻗어 있다. 동쪽의 구릉은 공동묘지로 이용되고 있다. 황보리 유물산포지는 구릉이 두 갈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