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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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8년에 진정 국사(眞靜國師) 천책(天頙)이 당시 영암 태수로 재직하고 있던 김서(金㥠)에게 보낸 편지. 고려 시대 백련 결사(白蓮結社) 제4세 사주(社主)였던 진정 국사 천책은 승려로 출가하기 이전 국자감에서 유학을 수학하고 과거에 합격하였으며, 출가한 후에도 유학자 및 관료들과 많은 편지와 시를 주고받았다. 「답 영암수 김 낭중 서서」도 그러한 편지들 중 하나로, 출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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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덕진리 교번 마을 덕진교에 얽힌 이야기. 주막을 운영하는 덕진이라는 여인이 죽어서 새로 부임한 원님의 꿈에 나타나 자신이 모은 돈으로 다리를 놓아 달라 부탁하는 이야기이다. 원님은 덕진의 부탁대로 다리를 놓고 다리에 덕진의 이름을 붙였다. 변남주가 덕진면 덕진리 교변 마을 주민 서동열에게서 2012년 12월 11일 인터뷰 채록하였다. 덕진면 덕진리에 있는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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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용당리에서 전해 오는 승려 원도에 대한 이야기. 「원도 도사와 쌀 나오는 구멍」은 절 주변의 바위에 있는 구멍에서 쌀이 나왔는데, 상좌(上佐)의 욕심 때문에 아무것도 나오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아무리 좋은 것도 욕심을 부리면 모두 잃게 된다는 교훈담이다. 1994년 영암 문화원에서 발행한 『영암의 전설집』에 수록되어 있다. 영암군 삼호읍 용당리(龍塘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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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에 제작된 『1872년 지방 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영암군 이진진의 지도. 조선 후기 흥선 대원군은 집권과 더불어 과감한 개혁을 추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관제 개정, 군제의 개편, 군사 시설의 확충과 경비의 강화, 군기(軍器)의 정비와 실험이 이어졌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의 실정 파악이 필요하였고, 이의 일환으로 1871년 전국적인 읍지 편찬과 1872년 전국적인 차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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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도기와 분청사기, 백자 등을 구웠던 가마터. 가마는 점력을 가지고 있는 바탕흙으로 형태를 만든 후 이것을 높은 온도로 구워 내는 생산 시설을 말한다. 가마에서 구워 내는 그릇은 바탕흙의 종류와 만드는 과정, 굽는 온도, 유약 종류, 무늬와 장식 기법, 제작지, 용도 등에 의하여 다양하게 나누어지는데, 일반적으로 도자기를 굽는 온도와 유약의 유무 등으로 토기(土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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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와 해남군 계곡면 당산리의 경계에 있는 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영암]에 “가학현(駕鶴峴)은 영암군의 서쪽 30리에 있으며", [해남]에 "가학산은 현의 북쪽 25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었다.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19첩 5면]에는 영암군 월출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가 전라남도 강진군을 거쳐 해남군 북서쪽에서 가학산을 이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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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영암 지역 사자봉에 있던 봉수대. 갈두산 봉수(葛頭山 烽燧)는 조선 시대 영암군에 속하였는데 1906년 행정 개편으로 해남군에 편입됨으로서 이후부터는 해남군에 속하게 되었다. 갈두산 봉수는 서남 해안 지역의 해로 상의 요충지에 위치한 입지 조건으로 보아, 수군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갈두산 봉수가 운영되고 있던 시기에는 동쪽으로부터 ‘강진현 좌곡산 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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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을 포함해 영산강, 서남 해안 도서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에 걸쳐 전승해 오는 민속놀이. 강강술래는 영산강을 중심으로 전승·발전해 온 놀이 겸 노래를 말한다. 인근 전라남도 진도, 해남 지역에 전승되던 강강술래가 1966년 2월 15일 국가 무형 문화재 제8호로 지정됨에 따라 강강술래의 중심이 진도, 해남 쪽으로 급속하게 쏠리게 되었다. 이 때문만은 아니지만 영암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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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독교의 한 분파. 개신교는 프로테스탄트를 일컫는 말로서 루터가 독일에서 일으킨 종교 개혁을 시발로 기독교에서 분리된 교파이다. 로마 교황청 중심의 구교[가톨릭]에 대하여 회의감을 느낀 루터가 본연의 신앙을 회복코자 종교 개혁을 일으켰으며, 이에 동참하는 교회들이 하나둘 늘어나 초기 프로테스탄트를 형성하였다. 국내 개신교는 1885년에 언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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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부터 1910년까지 전라남도 영암 지역의 역사. 개항기는 일반적으로 1876년 조일 수호 조규(朝日修好條規)가 일본의 강압에 의해 체결된 이후 1910년 식민 통치 체제로 전환되는 시기까지를 통칭한다. 사회적으로는 근대문물의 유입과 수용을 통해 기존의 봉건적인 지배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근대체제로 변화되어 가는 상황이다. 1876년 부산항이 개항된 이후 각 나라와도 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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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지역에 있는 산등성이 사이에 통행로로 활용되는 낮은 부분. 고개는 산으로 막힌 두 지역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는 길목으로서, 교통이 좋지 않았던 과거에는 산지를 통과하여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 비교적 통행이 쉬운 곳을 고개로 하여 주로 이용하였다. 하지만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대부분의 고개에 도로나 터널이 개설되고 일부 고개들은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다. 다른 말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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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건국에서부터 멸망[918~1392년]에 이르기까지 전라남도 영암군의 역사와 문화. 현재의 영암군 지역에는 고려 시대에 영암군[영암읍·군서면·덕진면 지역], 곤미현(昆湄縣)[미암면·학산면·삼호면 지역], 야로현(野老縣)[금정면과 나주 세지면 지역], 반남현(潘南縣)[시종면과 나주 반남면 지역]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중 영암군은 지금의 전라남도 서남부 지역의 거점으로 성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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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사회의 기본 사상 중 하나인 풍수지리 이론을 체계화한 영암 출신의 승려. 우리나라 풍수지리의 시조인 옥룡자(玉龍子) 도선(道詵)의 생애는 신비에 가득 싸여 있다. 전국 곳곳에 그와 관련된 신비한 전설이 전해져 오고, 그의 출생 시기나 활동 지역에 대해서도 다양한 전승이 전한다. 하지만 현재 공식적으로 도선의 고향은 영암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즉, 도선의 행적에 대해 구체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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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분포하고 있는 고대의 무덤 또는 과거 및 현재의 무덤 중에서 역사적 또는 고고학적 자료가 될 수 있는 분묘. 고분(古墳)이란 글자 그대로 오래된 옛 무덤을 뜻하며 과거 죽은 이를 위한 매장 의례 행위[무덤, 부장품, 제사 등]가 물질적인 증거로 남아 있는 산물을 말한다. 고고학적으로는 특정한 시기를 지칭하기도 하는데 고분의 의미와 개념에서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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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공도정책으로 지금의 영암군 시종면으로 이거되었던 진도군의 행정구역. 고려 말 왜구의 창궐로 인하여 공도 정책(空島政策)[섬에 살던 주민을 육지로 이주시키는 정책]이 시행되었다. 서남 해안에서는 흑산도, 압해군, 장산현, 진도군이 해당되었다. 진도군의 경우는 1350년(충정왕 2)에 당시 나주 땅이었던 종남면의 월량지(月良只)[지금의 영암군 월악리]로 이거되었다. 『신증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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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남도 일대에서 활동한 의병. 김성재(金聖載)[1877~1942]는 전라북도 순창(淳昌) 출신으로, 1907년부터 1910년 시기 전라남도 일대에서 심남일(沈南一) 의병 부대의 후군장(後軍將)으로 항일 투쟁에 앞장섰다. 김학선(金學善), 김학호(金鶴鎬)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였다. 김성재는 1907년 11월 1일 전남 함평군 신광면에서 심남일이 의병을 일으키자 이에 참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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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중반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 속한 나불도의 주민들이 영산호 국민 관광지 조성 계획에 따라 삶의 터전을 다른 지역으로 옮긴 일. 나불도는 외도·문도·구와도·고마도·서도 등과 함께 영암군에 딸린 여섯 개의 섬 가운데 가장 큰 섬으로, 1981년 영산강 하굿둑이 준공되면서 육지가 된 곳이다. 1970년대까지 이 섬에는 두 개 마을에 53가구[농가 23가구, 반농반어(半農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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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군이 속했던 행정 구역. 나주목은 983년(성종 2) 전국에 설치된 12개의 목(牧) 중 하나이다. 1018년(현종 9)에 지방 제도를 완비하면서 12목을 8목으로 조정할 때에도 주목(主牧)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영암군은 나주목의 영군(領郡)이었다. 영암은 지방 제도가 재정비되던 성종 때에 낭주 안남 도호부(郎州安南都護府)로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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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에 전승되고 있는 대표적인 논일 노래.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에서 전승되어 온 「영암 갈곡리 들소리」는 영산강 유역인 나주 지역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 농요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나주 루트를 통해서 동쪽 화순 지역의 세화자 소리 및 북쪽 장성군의 장원질 소리와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으며, ‘우야 헤헤야’ 소리라는 풍장소리를 창출해 낸 영산강 하류 문화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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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나라에서 제사를 올렸던 전라남도 영암군의 사당. 전라남도 영암군 남해신사(南海神祠)는 우리나라 3대 해신제 중 하나인 남해신사 해신제를 올렸던 곳이며, 나라의 안녕과 비를 바라는 기우제를 올렸던 곳이기도 하다. 남해신사라는 이름은 『고려사(高麗史)』·『동국 여지지(東國輿地志)』·『여지도서(輿地圖書)』에 나오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남해신 사당(南海神祠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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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을 포함하여 전라남도 서부권 8개 축협에서 생산하는 한우 브랜드. 녹색 한우는 전라남도 서부권의 신안·완도·광주·나주·영암·장성·해남·화순 축협 등 8개 축협과 1,250여 농가가 참여하는 전국 최대 규모 청정 한우 브랜드다. 전라남도에서는 2007년 ‘서부권 한우 광역 브랜드 개발 동의 협약’을 체결하여 참여 조합장 협의회를 개최하고, 광역 브랜드 개발 소위원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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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했던 달량진으로 왜구가 상륙하여 침탈했던 여러 사건. 달량진은 현재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 있으며 해남군과 완도군 달도(達島) 사이의 물목에 설치되었던 조선 시대의 수군진으로, 1406년(태종 6)에 이미 기록에 보이는 것으로 보아 빠른 시기에 설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달량의 원래 지명은 달도였는데 완도의 달도와 구분하려고 ‘고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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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 달마산에 있었던 조선 시대의 봉수. 달마산 봉수(達摩山 烽燧)는 조선 시대 영암군에 속했으나, 1906년 해남군에 편입된 뒤로 계속 해남군에 속하게 되었다. 달마산 봉수는 『여지도서(輿地圖書)』[1757~1765]에 처음 기록을 보이고 있는데 완도(莞島) 봉수[전라남도 완도군 군외면 숙승봉]로부터 연락을 받아 관두산 봉수[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관동리 성좌동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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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승려. 대우(大愚)[1676~1763]는 어머니 이씨(李氏)가 임신하였을 때 푸른 새가 어깨 위로 날아와 앉는 태몽을 꾸었다고 한다. 태어났을 때부터 미간에 하얀 털이 있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성장하면서 모든 일을 슬기롭게 해결하여 신동 소리를 들었다. 소년 시절에 우는 새소리를 듣고 발심하여 출가를 하였다. 대흥사에 기거하며 불도를 닦았는데,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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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있었던 덕진 다리에 얽힌 이야기.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과 덕진면 경계에는 영암천이 흐르는데, 옛 이름은 덕진천이다. 덕진천에는 덕진교가 놓여 있었고, 덕진교의 서쪽은 바닷물이 드나드는 덕진포 포구였다. 덕진교는 덕진면 덕진리 교변 마을과 영암읍의 역리 마을 사이에 있어 나주에서 영암읍에 이르기 위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반드시 통과하여야 한다. 그런데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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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덕진리에서 매년 단오절에 덕진의 공덕을 기리고자 지내는 추모제. 덕진(德津)은 통일 신라 때 사람으로, 지금의 영암읍과 덕진면을 경계로 하는 영암천 냇가에서 주막집을 하면서 영암천을 건너는 행인들이 불편을 피할 수 있도록 하려고, 땅속에 항아리를 묻어두고 푼푼이 모아 온 개인 재산으로 돌다리인 대석교(大石橋)를 창건하게 하였다고 한다. 이 공덕을 기리고자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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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영암 지방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를 반대한 개인과 단체의 저항 운동. 전통적으로 영암은 전라도 지역 교통의 요지이며 물산이 풍부한 지역이었다. 그만큼 일본 제국주의 자본의 주요한 침투 대상으로, 강한 경제적 침략의 위협 아래 놓여 있었다. 여기에다 일찍부터 사족의 문화가 발달하고 일제 침략에 저항하는 의병활동이 활발한 고장이었던 만큼 항일 운동의 전통도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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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에 있는 정기 시장. 독천장은 세칭 ‘독내장’이라고도 하며 4일과 9일에 서는 오일장이다. 영암군 학산면 면소재지인 독천리 1237-2 일원에 있으며, 영암읍장과 함께 오래된 재래시장이다. 1964년에 장옥이 건설되었다. 목포~독천~강진과 해남으로 연결되는 국도가 독천장을 통과하여 육상 교통의 요충지에 있다. 독천장은 독천 정류소와 연결되어 있으며 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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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일대에 서식·분포하고 있는 동물의 종류. 전라남도 영암군은 동쪽은 월출산 국립 공원으로 대표되는 산악 지역이며, 서쪽은 농경지와 하천이 분포하고 영산강과 접해 있다. 또한 옛날부터 농경이 발달하여 크고 작은 저수지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한편 영암군의 산림 생태의 중심은 월출산이며, 월출산은 북동쪽으로 호남 산맥과 연결되어 있고 남쪽으로는 두륜산을 거쳐 해남 땅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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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에 있는 전문 대학. 동아 보건 대학교의 건학 이념은 애향(愛鄕)·애국(愛國)을 위하여 기술 인재 교육을 통한 국가와 지역 사회에 이바지할 전문 직업인을 양성하는 데 있다. 설립 목적은 대한민국의 교육 이념에 입각한 최고의 전문 교육을 하는 것이다. 교훈은 ‘하늘을 공경하며 사람을 사랑하는 동아 인재인[경천애인(敬天愛人)]’이다. 교육 목표는 산업체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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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남산리에서 해남군 계곡면 잠두리로 넘어가는 고개. 마치는 『만기요람(萬機要覽)』에 보면 “가학치(加鶴峙), 마치(馬峙), 우슬치(牛膝峙)는 모두 해남 통로이다.”라고 기록이 되어 있다. 이후에는 『대동지지(大東地志)』와 『여지도(輿地圖)』에도 마치가 영암과 해남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기록되어 있다. 또 『청구도(靑邱圖)』에도 흑성산 서쪽, 맹포 동쪽의 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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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암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함양(咸陽)이고, 자는 이경(而經), 호는 고광(孤狂)이다. 아버지는 전적(典籍)[성균관에 속하여 성균관 학생을 지도하던 일을 맡아 보던 정육품 벼슬]을 지낸 박성건(朴成乾)[1414~1487], 할아버지는 박언(朴彦)이다. 박권(朴權)은 1486년(성종 17) 생원시에 합격하고, 1492년(성종 23)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이 정언(正言)[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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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남도 일대에서 활동한 의병장. 박사화(朴士化)[1880~1912]의 본적은 전라남도 나주 지량(知良) 기촌(基村)이고, 의병 활동 당시 주소지는 나주 전왕(田旺)이었다. 전라남도 함평에서 의거한 심남일(沈南一) 의병 부대에 합류하여 의병 활동을 벌이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1912년 순국하였다. 박사과(朴士過), 박사홍(朴士弘)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였다. 박사화는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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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전라도 영암군에 속했던 서남해 지역의 섬. 현재 보길도는 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면에 속해 있으며, 북쪽으로는 전라남도 남단의 장흥군·강진군·해남군과 접하고 동쪽으로 고흥군, 서쪽으로는 진도군과 가깝다. 보길도는 고려 시대 현종 이래로 영암군에 소속되어 있던 섬이다. 윤선도(尹善道) 관련 유적과 송시열(宋時烈)이 글을 쓴 바위 등의 문화 유적이 있으며, 다도해 해상 국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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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운재에 있었던, 공무상 여행하는 관리들에게 국가에서 지원하는 조선 전기의 숙박처. 공무상 여행하는 관리가 이용할 수 있는 숙식처는 객사(客舍)와 원(院)이 있었다. 원(院)은 요로(要路)에 설치한 여관이라 할 수 있다. 조선 전기에 영암의 보현원(普賢院)은 덕진면 영보리 보동 마을 영원재에 설치되어 있었으나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 폐원되었다. 역참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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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전라남도 영암군 해안 지역에서 긴급한 상황을 중앙에 전달하던 군사 통신 시설. 봉수는 밤에는 횃불[烽]을 올리고 낮에는 연기[燧]로써 변경의 위급을 중앙에 전달하던 통신 수단으로 이를 봉화, 봉수대, 봉화대 등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 봉수제는 기록상 12세기 중반의 1149년(의종 3) 서북면 병마사(西北面兵馬使) 조진약(曹晉若)이 임금에게 올린 글에 나타난다.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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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활동하는 석가모니를 교조로 하는 종교. 1. 백제 시대 영암 지역의 불교는 삼국 시대 백제로부터 시작되었다. 『속고승전』과 『삼국유사(三國遺事)』에 7세기 초 백제 수도 지역에서 활동하던 혜현(慧顯[惠現])이 달나산(達拏山) 즉 월출산으로 옮겨와 수행하다 입적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혜현 이후 월출산을 중심으로 하여 영암 지역에 불교가 전파되었을 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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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불상을 모시고 공적으로 불교 신앙을 행하는 장소. 사찰은 부처의 불상이나 불화 등을 모시고 있는 곳으로, 중들이 수행을 하거나 불교 신자들이 찾아가서 수행과 부처의 법음을 듣는 곳이다. 영암 지역에는 백제 시대에 처음 사찰이 생겨나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영암에 사찰의 존재가 확인되는 것은 고려 시대부터이지만 월출산의 여러 절터에서 백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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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양저를 시조로 하고 임만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선산 임씨는 전라남도 영암군에 세거하는 성씨 가운데 하나이다. 입향조는 선산 임씨 중시조인 임만(林蔓)으로, 1388년에 영암에 입향한 이래 후손들이 대대로 세거하였다. 선산 임씨는 신라 경순왕의 손주 사위인 태사공(太師公) 임양저(林良貯)를 시조로 하고 있다. 경순왕이 고려에 귀부하려 하자 그 부당함을 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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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전라남도 영암 지역에 남아 있는 흙이나 돌로 축조한 방어 시설. 성곽은 국가가 군사적인 목적을 갖고 국방이나 교통의 요지에 설치했던 군사 시설물이다. 본래 성곽이란 성(城)과 곽(郭)의 합성어로서 성은 내성(內城)을 말하고, 곽은 성 주위를 에워싼 외성(外城)[羅城]을 가리킨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한 겹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성곽 또는 성이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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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발이 가는 세발낙지로 만든 향토 음식. 세발낙지는 발이 가는 낙지를 말하는 것으로 영암군에서는 미암면에서 나는 것을 제일로 친다. 세발낙지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크기도 작고 부드러워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다. 영암군에서는 세발낙지로 다양한 요리를 해 먹었다. 낙지는 타우린이 많이 함유되어 피로 회복에 좋은 식품이다.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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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승려. 세영(世英)[1855~?]의 속성(俗姓)은 박씨(朴氏)이고, 법호는 청봉(淸峯)이다. 영암 출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해남 두륜산에 있는 대둔사(大芚寺)에서 출가하였다. 세영은 해남 대둔사에서 천게(千偈)를 스승으로 삼아 삭발하였고, 구족계(具足戒)는 지연(智演)에게 받았다. 영암 출신의 승려인 화월(化月) 숙홍(淑葒)의 법맥을 이었다. 대둔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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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전라남도 영암 지역 부선 마을 지역에 있었던, 공무상 여행하는 관리들에게 국가에서 지원하는 조선 시대의 숙박처. 공무상 여행하는 관리가 이용할 수 있는 숙식처는 객사(客舍)와 원(院)이 있었다. 원(院)은 요로(要路)에 설치한 여관이라 할 수 있다. 영암의 수원(燧院)은 신북면 부선 마을에 설치된 원이다.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는 대부분의 원은 폐원되고 꼭 필요한 곳에서만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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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생육하고 있는 식물의 종류와 분포. 영암의 식물상은 100~800m 정도의 높이를 가진 산지와 저지대의 평야 지대, 하천, 호수 및 해안 등으로 구분된다. 소백산지의 서변부를 따라 순창에서 남서쪽으로 뻗어나가 무등산을 거쳐 해남 두륜산으로 이어지는 산지 계열에 속하는 높이가 높은 월출산을 제외하고는 영암은 비교적 낮은 산지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산촌의 취락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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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월평리에 있는 정기 시장. 신북장은 신북 시장·월평장이라고도 하며, 3일과 8일에 서는 오일장이다. 일제 강점기 후기에 시종장과 함께 등장한 재래시장이다. 신북장은 삼포천의 상류 남쪽, 신북면 소재지인 월평리 126-3 일원에 있다. 주변은 바다와 상관없는 구릉 지대로 밭과 논이 거의 반반인데, 구릉지 밭에서는 배와 감이 많이 난다.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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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의병장. 신예교(辛禮敎)[?~1908]는 영암군 덕진면 운암리 출신으로, 구국 결사대를 조직한 뒤 의병장으로 활약하다가 일본군과 교전 중에 순국하였다. 본관은 영산(靈山), 호는 남시(南市)이고, 본명은 신재빈(辛在彬)이다. 신석황(辛錫璜)의 3남으로 태어났다. 신예교는 1902년 영암에 온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의 구국 강론(救國講論)을 듣고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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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여성 의병. 양방매(梁芳梅)[1890~1986]는 영암군 금정면(金井面) 남송리(南松里) 출신이다. 의병장 강무경(姜武景)의 부인으로, 남편을 따라 의병 활동에 투신하였다. 양방매는 전라북도 무주 출신의 강무경이 심남일(沈南一)과 함께 전라남도 함평에서 의병을 일으킨 뒤 1908년 영암으로 이동했을 때 금정면의 선비 양덕관(梁德寬)의 집에 유숙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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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숭어의 알을 소금이나 간장에 절여 햇볕에 말려 먹던 향토 음식. 어란은 영암군에서 숭어의 알을 채취해 참기름과 소금에 오랫동안 절여 만든 음식으로 고소하고 깊은 맛이 있어 술안주로 애용되었다. 어란은 바다에서 잡은 숭어의 알을 채취해 만든 음식으로 임금님께 올리던 진상품 중의 하나이다. 예로부터 영산강과 바다가 만나는 영암 지역에서 잡히는 숭어는 살이 기름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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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영암군에 속하였던 지금의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 등에 있었던 수군진. 한반도의 서남 끝단에 위치해 있는 송지 어란은 고대부터 한중일 국제 해상로뿐만 아니라 제주도 해로와 조운로의 중간 기착지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어란포진은 조선 시대 수군 만호진이 머물렀던 곳인데, 두 차례 이동되어 현재의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 정착하였다. 첫 번째는 해남현 화산면 연곡리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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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쓰이는 언어 체계와 특이한 언어 현상. 영암 지역에서 쓰이는 영암 지역어는 서남 방언 중에서 전라남도 방언에 속한다. 전라남도 방언은 크게 동부 방언권과 서부 방언권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들 지역은 다시 남북으로 하위 구획된다. 이러한 하위 구획을 기준으로 본다면 영암 지역어는 무안, 신안, 진도, 완도, 해남, 강진, 장흥, 보성 서부와 함께 남서부 방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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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라남도 영암군의 역사 서남해 지역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영암은 바다와 강, 산이 어우러진 풍요로운 자연 환경과 내륙과 도서·해안 지역을 연결하는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고대부터 이 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고대에는 옹관 고분 문화권의 중심지였고, 고려 시대에는 주변의 8개 군현을 아우르는 지역 거점이었다. 조선 시대 이후 주변 지역이 분리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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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낙지에 각종 양념을 넣어 탕으로 끓여 먹는 향토 음식. 낙지를 통째로 삶아 먹기 좋은 크기로 썰고, 소금으로 간을 한 후 마늘과 쪽파 등을 썰어 넣고 참기름과 깨소금을 뿌려 끓인 탕을 연포탕이라고 한다. 낙지를 그대로 조리해 담백한 맛을 느낄 수 있으며, 국물 맛이 일품이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10월 조에는 “두부를 가늘게 썰고 꼬챙이에 꿰어 기름에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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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이후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와 영암읍 역리에 설치되었던 교통 통신 기관. 고려 성종 대에 전국을 12목으로 나눈 군현제의 확립과 더불어 구체화된 역참제는 현종 대에 와서 전국 22도(道)에 525개소의 역(驛)으로 완성되었다. 이때 영암 영보역의 경우는 승라주도(昇羅州道)에 속한 30개 역 중의 하나로 나주의 청암도역 관할에 속하였다. 각 역에는 말과 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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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나불리에 있는 국민 관광지. 영산호 국민 관광지는 인공 호수인 영산호를 중심으로 조성된 휴양지다. 관광지가 위치한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나불리(羅佛里)는 본래 영암군에 딸린 여섯 개의 섬[나불도·외도·문도·구와도·고마도·서도] 가운데 가장 큰 섬이었다. 면적은 0.34㎢, 해안선 길이 3㎞로 전국적으로는 408번째 순위의 섬이었으나 1981년 1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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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생산되는 고추. 영암 고추는 붉은 황토에서 충분한 일조량과 맑은 맥반석 지하수를 이용해 재배하여 표피가 매끈하고 빛깔이 고운 것이 특징이다. 2011년 기준으로 고추의 국내 주요 산지는 영암, 해남, 고창, 안동, 괴산, 음성 등이다. 2010년에 고추는 전국적으로 9만 5391톤이 생산되었고, 총 소비량은 약 18만 5000톤이었다. 영암 고추는 붉은 황토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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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남송정 마을에 있는 통일 신라 때의 도기 가마터. 영암 구림리 요지(靈巖 鳩林里 窯址)는 통일 신라 말에 운영되었던 대단위의 도기 생산 유적이다. 학술적 조사는 일제 강점기부터 간헐적으로 실시되었으나 1987년과 1996년에 본격적인 발굴 조사가 시행되었다.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남송정 마을의 돌정 고개로 불리는 구릉 상에 있다. 이곳은 월출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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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사에 있는 조선 전기 동자형 문수상과 보현상. 도갑사(道岬寺) 해탈문의 좌우 칸 뒤쪽에 영암 도갑사 목조 문수·보현 동자상(靈巖 道岬寺 木造文殊·普賢童子像)이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과 함께 배치되어 있었다. 해탈문은 1473년(성종 4)에 건립되었으며 영암 도갑사 목조 문수·보현 동자상 역시 그때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두 동자상의 전체 높이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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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남풍리에 있는 버스 운행을 위한 대중 교통 시설. 영암에 버스 터미널이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1970년에 한 번의 이전이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영암 여객 자동차 터미널은 원래는 영암읍 동무리, 현재의 농업 중앙회 협동조합 영암군 지부 주변에 있었으며, 당시에는 영암 정류소라 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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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동무리에 있는 정기 시장. 영암 오일장은 5일과 10일에 서는 오일장으로, 공식 명칭은 ‘영암 5일 시장’이다. 세칭 ‘읍내장’이라고도 한다. 영암군 영암읍 동무리 333-1번지 장터 마을에 있는데, 조선 시대에 영암읍성의 동문 밖에 형성되어, 독천장과 함께 오래된 재래시장이다. 조선 시대의 역로가 나주~영암읍성 동문~강진~해남을 연결하였으므로 영암 오일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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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의 서남부에 위치한 군(郡). 영암군은 전라남도의 서남해안 지역의 최남단에 위치한 군으로 중국의 주요 항구인 상해, 청도 등과 최단 거리에 있어 중국 대륙 및 동남아시아, 태평양으로의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서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곳이다. 그리고 대불 국가 산업 단지[영암 테크노폴리스]를 비롯한 현대 삼호 중공업, 삼호 산업 단지, 대불항 등의 산업 기반 시설을 갖추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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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동무리에 있는 관광 레저 도시 개발 사업을 위한 지원 행정 기관. 영암군 기업 도시 지원 사업소는 서남권 관광 레저 도시를 이끌어갈 포뮬러 원 코리아 그랑프리[F1 국제 자동차 경주 대회]와 영암·해남 관광 레저 형 기업 도시 개발 사업을 지원할 목적으로 2006년 1월 12일 설립되었다. 2006년~2025년에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과 전라남도 영암군 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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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금계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영암·나주·함평·무안·해남 일대의 영산강 하류 지역에는 다른 지방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묘제(墓制)인 대형 독무덤[대형 옹관 고분(大形甕棺古墳)] 330여 기가 집중 분포하고 있다. 그중에서 영암에는 시종을 중심으로 한 도포면·신북면·영암읍 등지에 140여 기, 학산면·미암면·서호면 등지에 30여 기 등, 160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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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면 용당리 축성암에 있는 조선 후기 목조 나반존자상. 축성암(祝聖庵)은 1927년경 목포항을 바라보는 해안가에 처음 세워졌고 1990년대 초 삼호 조선소 조성 단지로 편입되면서 1994년에 남쪽으로 1.5㎞ 떨어진 현재의 장소로 이전되었다. 영암 축성암 나반존자상(靈巖 祝聖庵 木造 那畔尊者像)은 한지에 묵서한 발원문[가로 118㎝×세로 26㎝]에 따라 17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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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사용한 질그릇과 오지그릇의 총칭. 옹기그릇은 질그릇과 오지그릇의 총칭이다. 질그릇은 진흙만으로 초벌구이를 한 그릇으로 잿물을 입히지 않아 윤기가 없고 겉이 테석테석한 그릇이고, 오지그릇은 질그릇에 오짓물을 입혀 다시 구운 그릇으로 윤이 나고 단단하다. 그런데 근대 이후 질그릇의 사용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옹기는 주로 오짓물이 입혀진 오지그릇을 지칭하는 말로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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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까지 영암의 연안 및 내륙에 출몰하였던 일본 해적. 왜구는 13세기 “왜구금주(倭寇金州)”라는 구절과 함께 역사 속에 등장하였다. 고려로 침입한 왜구는 미곡을 실은 조운선 약탈과 인명 살상 등을 일삼았다. 이로 인해 섬, 연안에 사는 사람들은 연해 및 육지로 이주하여 섬에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을 정도였다. 영암도 1350년(고려 충정왕 2)에 순천부에 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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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용당리에 있었던 포구. 용당리 포구는 조선 후기에 지금의 전라남도 목포시 만호동에 있었던 목포진과 영암군 삼호읍 용당리를 연결하는 포구였다. 용당진(龍塘津), 용당 나루, 용댕이 나리라고도 하였다. 전라남도 삼호읍 용당리 마을에서 유래한다. 『대동지지(大東地志)』에서는 “용당진은 무안 목포진과 통한다.”라고 하였으며, 『1872년 지방 지도(1872年地方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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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있는 영암 구림리 요지에서 확인된 국내 최초의 시유 도기. 시유 도기(施釉陶器)는 유약을 바른 도기를 뜻한다. 국내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시유 도기는 사적 제338호인 영암 구림리 요지(窯址)[가마터]에서 확인되었다. 이 가마터는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남송정 마을에서 ‘돌정 고개’라고 불리는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구릉은 월출산을 남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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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우(李申佑)를 시조로 하고 해남에 정착한 이영화의 후손들이 전라남도 영암군에 분거하여 기반을 마련한 세거 성씨. 원주 이씨(原州李氏)는 조선 시대 해남 지역의 유력한 세거 사족으로, 1445년 이영화의 해남 입향으로 해남 인근 지역에서 활발한 향촌 활동을 하였다. 다수의 인물이 중앙 관료로 진출하였고, 영암 옥천면에 살았던 옥봉 백광훈의 아들 백흥남을 사위로 맞이하는 등 해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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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여러 마을을 합하면서 원목(元木)의 원(元) 자와 항동(項洞)의 항(項) 자를 따서 원항리(元項里)라 부르게 되었다. 원목 마을은 마을 길가에 원목점이라는 주막이 있다 하여 원목점이라고 부르다가 행정 개편 이후 원목 마을이라고 개명하여 부르고 있다. 항동 마을은 마을 남쪽에 있는 개[浦]의 지형이 구부정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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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 원항리에 있는 현풍 곽씨 집성 마을. 현풍 곽씨(玄風郭氏)의 시조는 중국 송나라에서 고려로 귀화한 곽경(郭鏡)[1117~1179]이다. 곽경은 중국 관서(關西)의 홍농인(弘農人)으로 고려에 귀화한 후, 1138년(인종 16) 과거에 급제하여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를 지냈고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에 올랐으며, 포산군(苞山君)에 봉해졌다. 이후 곽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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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시대 전라남도 영암군의 영암읍, 군서면, 덕진면, 도포면 일대에 있었던 행정구역. 영암군은 고대 국가 성립기에는 대형 독무덤의 분포로 보아 마한 54국 중 하나로 중심권이라 할 수 있다. 4세기 후반에 이르러서 백제에 복속되어 월내군(月奈郡)이라 불렀다. 4세기 후반에 백제에 복속되어 월내군(月奈郡)이라 불렀다. 남북국 시대에 이르러 757년(경덕왕 16)에 영암군이라 개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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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에 있는 영암의 대표적 관광 명소. 영암 월출산 기찬랜드는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월출산 국립 공원의 왕성한 기(氣)와 천황봉 자락 계곡의 맥반석에서 흘러나오는 청정수를 활용하여 영암읍 회문리 94번지 일원 6만 7000㎡ 부지에 조성된 영암의 대표적 관광 명소이다. 이곳은 월출산의 정기를 받아 불후의 민족 음악을 창시한 악성 김창조를 비롯하여 제헌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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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영암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해남(海南)으로, 감사(監司)를 지낸 윤복(尹復)의 증손자이다. 윤선술(尹善述)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자 더할 수 없이 애통했으나, 슬퍼하는 어머니가 염려되어 자신의 슬픔을 억누르고 밖으로 크게 표현하지 않았다. 가난한 집안이었으나 항상 어머니를 위해 필요한 물건을 갖추어 놓았으며, 어머니가 병이 나 겨울에 생선을 드시고 싶어 하니 노복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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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5년 왜구가 달량진으로 상륙하여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을 비롯한 해남, 진도, 장흥 일대를 침탈한 사건. 을묘왜변(乙卯倭變)은 달량진 사변(達梁鎭事變)이라고도 하는데, 1555년(명종 10) 5월 11일에 시작되었다. 서남해안 지역으로 한정되었으나 거의 전쟁 수준으로 전개되었다. 왜선이 70여 척, 왜구가 6천 명에 이르렀고, 달량을 침범한 후 강진·장흥·완도·진도·영암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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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의병장. 이덕삼(李德三)은 영암 출신으로, 본명은 김덕중(金德仲)이다, 1908년부터 1909년 사이 전라남도 일대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생몰년은 미상이다. 이덕삼은 호남 지역의 의병으로 활동하면서 1908년 9월 11일부터 1909년 3월 1일까지 일본인 26명을 피살하고, 36호의 가옥을 불태웠다. 1909년 3월에서 7월 사이에 각지에서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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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무신·의병장. 이유길(李有吉)[1576~1619]은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서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웠으며, 명나라 원군으로 출정하여 후금과 싸우다 요동백(遼東伯) 김응하(金應河)와 함께 전사하였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유지(有之)이다. 할아버지는 종계변무(宗系辨誣)의 공으로 광국공신(光國功臣)에 책봉된 이후백(李後白),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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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영암군에 속했던 현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 있었던 수군 만호진. 이진진(梨津鎭)은 지금은 해남군 북평면 지역이나 조선 시대에는 영암군에 속한 지역에 있던 수군진이다. 지금의 해남군 남창인 달량에서 남쪽으로 800여m 떨어진 수군진이다. 이진진은 1555년(명종 10) 달량진 왜변 후인 1597년(선조 30) 종9품의 권관진이 설치되었다가 1627년(인조 5)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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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 있었던 조선 시대 영암군 북평종면 지역의 정부 세곡 창고. 이진창(梨津倉)이 있었던 지금의 해남군 북평면은 조선 시대에 영암군 북평종면 지역이었으나 1906년 해남군에 편입되었다. 이진창은 지금의 해남군 북일면, 북평면 일대에서 거두어들인 정부 세곡을 저장하는 창고였다. 『대동지지(大東地志)』 창고 조에 의하면 “이진창은 영암에서 남쪽으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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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국악인. 이창윤(李昌允)은 전라남도 영암에서 태어났으며, 생몰년은 미상이다. 명창 이날치(李捺致)에게 서편제(西便制)의 법통을 이어받아, 조선 후기와 일제 강점기에 걸쳐 활동하였다. 특히 「심청가(沈淸歌)」를 가장 잘 불렀는데, 심청이 밥 빌러 가는 대목과 심청이 공양미 300석에 뱃사람에게 팔려가게 되자 심 봉사가 통곡하는 대목을 잘하였다. 특히 슬프고 원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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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주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행정 구역, 인구, 교통, 관광, 산업 등의 분포와 특성. 영암군은 전라남도 남서부의 영산강 하류와 탐진강 상류에 위치한다. 동쪽 끝은 금정면 청용리 산29번지[동경 126°52′, 북위 34°52′]로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서쪽 끝은 삼호읍 용당리 2172-5번지[동경 126°21′, 북위 34°44′]로 전라남도 목포시 충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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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이 침입하여 영암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일반적으로 임진왜란은 정유재란까지 포함하지만, 때로는 1차와 2차를 나누어 1차는 임진년에 일어났으므로 임진왜란(壬辰倭亂)이라 부르며 2차는 정유년에 일어나 정유재란(丁酉再亂)이라 칭하기도 한다. 1591년 3월 일본이 조선에 전달하였던 요구는 가도입명(假道入明), 곧 ‘명으로 가려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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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사회주의자들이 농민의 계급 의식 고취와 사회주의 운동의 활성화를 위하여 조직하고자 한 혁명적 농민 조합 운동. 1928년 12월 코민테른 집행 위원회 정치 서기국은 「조선 공산당 재조직에 관한 결정서」, 곧 12월 테제를 채택하였다. 이 12월 테제의 주된 내용은 ‘지식인을 중심으로 조직하려던 이전 방법을 버리고 공장·농촌으로 파고들어 가 노동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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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결성된 사회주의 운동 협의체. 혁명적 농민 조합을 결성하여 계급 의식을 고취하고 지역 전위 정치 조직의 기반을 만들고자 한 사회주의자들의 협의체이다. 1933년 5월, 해남과 완도의 대표적인 사회주의 활동가인 김홍배와 황동윤이 각자 자기 지역에서 활동하다 농민 운동을 중심으로 한 대중 운동을 지도할 기관의 필요성에 대해 인식을 같이 하고 전남 운동 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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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지역에서 대형 항아리로 주검을 매장한 3~6세기의 묘제 형식. 옹관묘(甕棺墓)[독무덤]는 신석기 시대부터 근래에 이르기까지 널리 사용되어 온 묘제이다. 영암 지역의 옹관묘는 삼국 시대에 이르러서야 묘제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는데 대표적으로 내동리, 만수리, 신연리, 와우리 등 11개 유적에 56여 기의 옹관묘가 조사되었다. 영암 내동리 고분군은 7기의 고분이 구릉부에 자리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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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의병. 정관오(鄭官五)[1883~1921]는 영암 출신으로, 본적 및 활동 당시 주소는 영암군 신북면(新北面) 유곡리(酉谷里)이다. 1907년 심남일 의병 부대에 합류하여 전라남도 각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정순용(鄭淳龍)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정관오는 1907년 11월 1일에 전라남도 함평군 신광면(新光面)에서 의거한 심남일(沈南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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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 왕조 시기의 전라남도 영암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전환은 단순한 왕조 교체의 의미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사상 등 모든 면에서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이는 중세 사회에서 근세 사회로의 전환을 뜻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행정 편제, 인구와 성씨, 교통·통신, 경제 등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조선 초기 영암 지역의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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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영암에서 수도까지 세곡을 배로 운반하던 국가 제도. 고려 시대 영암에는 12대 조창으로 장흥창(長興倉)이 설치되었다. 영암군의 관할 아래 있는 영암, 해남, 강진 일대의 세곡을 모아 조운선에 실어 개경에 납입하였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 영암군은 나주 영산창에 세곡을 납부하였다가, 1512년(중종 7) 영산창의 기능이 영광 법성포창으로 이관되자 법성포창으로 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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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같은 성(姓)과 본관(本貫)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 집성촌은 한 성씨가 주도하는 동족 마을을 포함해 나타나는 여러 성씨들이 모인 이성 잡거(異姓雜居) 형태의 촌락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동족 촌락, 동족 부락, 동성 촌락, 동성 마을, 동족 마을이라고도 한다. 영암 지역의 집성촌에 대한 기록은 일제 강점기인 1920년 식민지 지배를 목적으로 조사된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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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짱뚱어를 탕으로 끓여 먹는 향토 음식. 영암군에는 질 좋은 갯벌을 많이 있어 이곳에 서식하는 어패류로 다양한 요리를 해 먹었다. 그중에서 갯벌에서만 서식하는 짱뚱어를 탕으로 끓여 먹는 음식이 짱뚱어탕이다. 짱뚱어를 통째로 삶아 시래기, 호박 등을 넣고 끓여 낸 것으로 독특한 맛을 내는 별미이다.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짱뚱어를 “빛깔은 검고 눈이 튀어나와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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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승려. 책활(策活)[1781~1862]의 속성은 장씨(張氏)이고, 법호는 자행(慈行)이다. 1781년 영암에서 출생하여 17세에 해남 두륜산(頭輪山) 대흥사(大興寺)로 출가하였다. 외모는 왜소하였으나 학덕(學德)은 뛰어났으며, 호훈(好訓)에게 전수받은 범패(梵唄)가 매우 뛰어났다. 해남 두륜산(頭輪山) 대흥사(大興寺)로 출가하여 대흥사 13대 강사 주 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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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전라남도 영암군 학송리 지역에 있었던, 공무상 여행하는 관리들에게 국가에서 지원하는 조선 전기의 숙박처. 공무상 여행하는 관리가 이용할 수 있는 숙식처는 객사(客舍)와 원(院)이 있었다. 원(院)은 요로(要路)에 설치한 여관이다. 영암의 청풍원(淸風院)은 조선 전기에 지금의 영암읍 학송리 개신리 미륵동 마을 지역에 설치되었으나 조선 후기에 들어와 폐원되었다. 역참 제도와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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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기섭(崔琪燮)[1912~2002]은 전라남도 영암 출신으로,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영암군 군서면(郡西面) 동구림리(東鳩林里)이다. 1930년대 영암에서 야학과 농민 조합 건설 준비 위원회 활동을 통해 항일 의식을 고취하는 등의 독립운동을 펼치다 옥고를 치렀다. 1912년 10월 16일에 태어난 최기섭은 1927년 3월 영암군 구림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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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남도 일대에서 활동한 의병장. 최우평(崔羽平)[1878~1908]은 나주(羅州) 출신으로, 1907년 12월부터 의병 활동을 전개하여 주로 영암 등 전라남도 일대의 전투에 참여하였다. 나주 노안(老安)에서 일본군의 총탄에 맞아 순국하였다. 최우평은 1908년 3월에 심남일(沈南一) 의병 부대가 600여 명의 의병을 추가로 모집할 때 부대에 합류해 후군장(後軍將)이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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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남도 영암 일대에서 활동한 의병장. 추기엽(秋琪燁)[879~1909]은 전라남도 담양 출신이다. 1907년부터 전라북도 지방에서 의병 활동을 시작하였고, 1908년에는 전라남도 해남·영암 등지에 의병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추기홍(秋淇弘), 추기엽(秋琪曄)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였다. 추기엽은 1907년 전라북도 익산(益山) 지역에서 윤현보(尹賢甫)·이봉오(李奉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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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존부를 시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영암에 세거하는 성씨 가운데 하나인 해남 윤씨는 1832년에 발행된 『영암읍지(靈巖邑誌)』에 지역의 성씨로 기록되어 있으나 영암 입향조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일제 강점기 때인 1930~1940년경에 윤용하(尹龍河)가 외가가 있는 덕진면 영보리로 이주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해남은 현재 전라남도 해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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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영암군 에 예속된 특수 지방 행정구역. 군현의 하부 조직으로 존재한 특수 지방 행정 구획인 향(鄕)·소(所)·부곡(部曲)은 종래에 천민 집단 거주지로 알려졌으나, 근래에 들어서는 수공업이나 광업 등 특수한 기능을 담당한 전문 기능 집단의 역할을 하였을 뿐 주민들의 신분적 지위는 일반 군현민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향·소·부곡은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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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의 역사와 지리, 유래, 전설, 풍속, 산업 등을 조사·연구하여 기록한 책. 향토지는 중앙의 자료집과 달리 해당 지역사[지방사] 연구의 기초 자료로서 그 중요도가 매우 높다. 향토애(鄕土愛)를 근간으로 지역의 역사와 전통에 대해 저술한 책이 바로 향토지(鄕土誌)이다. 향토지 발간의 초기 단계에서는 단순히 지역의 출신인물이나 유적 소개에 머물던 것이 점차 그 영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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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경을 시조로 하고 곽호인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현풍 곽씨는 영암군에 세거하는 성씨 중 하나로 입향조는 곽호인이다. 1555년(명종 10)에 을묘왜변이 일어나자 원래 있던 해남을 떠나 영암군 도포면 원항리에 정착하였다. 현풍 곽씨는 곽경(郭鏡)[1117~1179]을 시조로 한다. 곽경은 원래 중국 송(宋)나라 사람이지만 1133년(고려 인종 11)에 귀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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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승려. 혜오(慧悟)[1866~1894]의 속성(俗姓)은 백씨(白氏)이고, 법호는 취운(翠雲)이다. 영암 출신으로, 고종 때 활동했던 승려이다. 혜오는 해남 두륜산 대흥사의 응허 선사(應虛禪師) 문하에서 삭발하고 출가하였다. 복암 선사(福庵禪師)에게서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각안 선사(覺岸禪師)에게서 비구 250계 및 대승보살 58계를 받았다. 이후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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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3대 명촌으로 손꼽히는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의 마을. 구림 마을이 호남의 3대 명촌 중 하나가 된 배경에는 구림 마을의 풍수지리와 지명 유래가 관련되어 있다. 곧, 구림 마을의 입지가 풍수지리상 명당 중의 명당으로 꼽히며 지명의 유래에서 마을의 역사와 전통이 깊음이 드러나기에 호남 3대 명촌으로 꼽힌다는 것이다. 조선 후기의 지리서 『택리지(擇里志)』에는 “월출산 남쪽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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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와 해남군 계곡면 가학리 경계에 있는 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해남]에 “현 북쪽 30리에 흑산(黑山) 옛 성이 있다. 돌로 쌓았으며 둘레가 580자, 높이가 7자인데 지금은 절반이 무너졌다.”라는 기록이 있다. 『해동 지도(海東地圖)』[해남]에도 지명이 표기되어 있다.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흑석산(黑石山)[653m]이 고성 터...